LH의 야음지구 개발 강행에 관한 언론보도를 접하고, 환경정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국어사전에 의하면, 환경정의란 ‘환경의 세대 간, 국가 간, 계층 간, 생물종 간 배분의 형평성을 실현하자는 것’이다. 만약 LH의 개발행위에 따라 사회적 약자가 환경오염 피해를 더 많이 받게 된다면 이것이 바로 환경정의를 정면으로 위배하는 것이다. LH 계획대로 석유화학산단 인근에 대규모 주거단지가 조성되면 입주민의 직접적인 환경피해가 예상되는데, 공기업인 LH가 국민의 건강보다 사업 이익을 우선시하는 이유를 묻고 싶다. 개발행위 자체가 법적으로 문제가 없더라도 환경오염이 심한 지역에 서민을 위한 공동주택을 공급하겠다는 발상 자체가 우리 사회의 기본 가치를 훼손하는 것이다.
사업예정지역은 석유화학산단과 가장 인접한 곳으로 주민들이 수시로 악취와 오염물질에 시달리는 곳이다. 나는 여러 번 국내외 학술 논문을 통해 해당 지역의 대기와 토양 중 유해화학물질 농도가 울산에서 가장 높은 수준이라는 것을 밝혔다. 다수의 환경부 연구사업에서도 야음동과 여천동 일대의 오염 수준이 높았다. 석유화학산단 주변의 환경피해는 주민과 시민단체의 주관적이고 감정적인 주장이 아니라 다수 연구를 통해서 검증된 객관적인 사실이다. 석유화학산단 근처에서는 온갖 미량유해화학물질에 노출될 수밖에 없고, 당장 건강 영향이 나타나지 않더라도 만성노출에 의한 건강피해는 자명하다. 설령 눈에 띄는 질병이 발생하지 않더라도 악취로 인한 신체적·정신적 피해와 민원은 어떻게 할 것인가? 울산의 대기질이 많이 개선된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솔직히 말해보자. 산단 근처에 가면 여전히 냄새가 나고 머리가 아프다. 정말 그런 곳에서 우리 아이들을 키우고 싶은가?
한편, ‘국가산업단지 화학사고 대비를 위한 우선순위 화학물질과 관리지역 선정’ 논문에서는 유해화학물질 배출량, 화학물질별 독성, 화학사고 가능성을 종합 평가한 결과, 사업예정지역이 포함된 여천동이 화학사고에 가장 취약한 지역이었다. 특히, 여천동에서는 계절풍이 화학사고 피해 범위와 정도에 크게 영향을 미칠 것으로 추정되었다. 여름철에 화학사고가 발생하면 가장 큰 영향이 예상되고, 타 계절에도 주간에는 해풍의 영향으로 유해화학물질에 대한 인체 노출이 증가할 수 있다. 울산은 전국에서 크고 작은 화학사고가 가장 많이 발생하는 도시이다. 주거지역과 산단 사이에 차단녹지를 더 많이 만들고 일부 산단 주변 주민들의 이주까지 고려해야 하는 상황인데, 오히려 대규모 공동주택을 짓고 서민들을 입주시켜 이들을 인간 방패로 삼겠다는 것인가?
다시 강조하면, 사업예정지역은 현재 울산에서 대기오염이 가장 심하며 언제라도 대형화학사고가 발생하면 그 피해를 가장 직접적으로 받을 수 있는 위험한 지역이다. LH는 이러한 심각성을 무시하고 개발 논리에 매몰되어 그동안 울산시와 협의한 사항을 일방적으로 파기한 것이다. 이 사안은 울산시민의 건강과 행복에 관한 문제이다. 개발이익을 기대하는 일부 개인이나 기관이 아니라면 보수와 진보, 울산시 당국과 시민단체, 환경전문가와 일반시민의 뜻이 다를 수 없다. 특히, 울산시는 무분별한 개발보다 시민의 안전과 건강이 최우선이라는 것을 보여줄 기회다.
LH가 환경오염과 주민 건강 문제가 발생할 것을 알면서도 울산시와 충분한 협의 없이 사업을 강행한다면, 환경정의를 훼손한 대표적인 사례로 대학 교재에 실릴 수 있는 오점을 남길 것이다. 당장 다음 학기 토론수업 주제로도 좋은 사례가 될 것이다. 나는 이번 사태를 LH의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라 믿고 싶다. 그리고 용서하고 싶다. “아버지, 저들을 용서해 주십시오. 저들은 자기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 모릅니다.” -루카 복음 23장 34절-
최성득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7월 18일 경상일보 14면 ‘[기고] 한국토지주택공사(LH)를 용서해 주십시오’ 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