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디자인 관련 일로 이탈리아 모처에 들렀다. 한 세미나가 흥미를 끌었는데, 모터쇼 즉 콩쿠르델레강스(Concourse d‘ elegance 우아함의 경연)의 의미가 재미있었다. 100여년전 자동차 전시회가 시작되었는데, 당시 출품된 자동차들은 하나같이 꽃으로 뒤덮여 있었다. 아름다움에 대한 인식의 혼란이 원인이었다고 한다. 낯설고 생소한 자동차라는 신문물의 아름다움을 파악하기보다, 익숙하고 보편적인 아름다움이 더 친근했기 때문이란다.
화려한 문양조각으로 장식된 중세·근대 마차의 연장선상에 자동차가 있었다. 자동차 고유의 형태나 구조는 아랑곳하지 않고, 치장할 수 있는 모든 표면을 꽃으로 장식했다. 바퀴살과 헤드램프, 라디에이터 그릴까지 꽃으로 뒤덮어 어느 브랜드 어떤 모델인지 알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 1차세계대전 이후 비로소 사람들이 자동차를 마차와 구분해 독립된 대상으로 보기 시작하며 꽃장식이 사라졌다.
대신 패션, 의상과 모자가 생겨났다. 모터쇼에 모델이 등장했다. 라이프 스타일이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견주는 평가항목이 된 것이다. 날씬하고 예쁜 여성과 멋진 외모 남성이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부각시키는 조연이 되었다. 이 현상은 지금까지도 모터쇼에 으레 따라붙는 ‘레이싱 걸’ 이미지를 구축했다. 다만 ‘여성 상품화’라는 사회적 인식 변화가 생겨 이젠 모델 외 다양한 무대장치와 발표가 자동차의 아름다움을 설명하는 시대가 됐다. 하지만 아직도 자동차문화가 덜 성숙한 개발도상국이나 저개발국가의 모터쇼에는 레이싱걸이 등장한다. 모든 시스템에는 이유가 있다. 스토리는 저절로 만들어지는 것 같지만 필요에 따라 변화한 형태의 축적이다.
지난 주말, ‘투마로우랜드’라는 세계 최대급 음악축제가 벨기에 붐에서 열렸다. 필자도 갔다. 18만명부터 100명까지, 실내와 실외, 숲속 등 10개가 넘는 다양한 음악 무대가 놀이공원처럼 넓은 행사장 곳곳에 차려졌다. 저마다 좋아하는 DJ와 음악을 찾아 무대를 오가며 즐거워했다. 나라도 인종도 나이도 성별도 ‘오직 음악’이라는 공통 매개 앞에서 무의미해지는 곳. 모두가 즐거워하고 춤추고 행복한 세상이었다.
2005년 시작된 투마로우랜드는 20년도 안됐지만, 세계 최대 음악행사가 됐다. 이유는 시스템 세팅이다. 장소는 벨기에 붐, 영국 프랑스 독일까지 유럽에서 가장 접근성이 높으면서, 도심 아닌 교외지역에 무대를 설정한 것은 수십만명 수용을 고려한 물리적 배경이다. 정부의 홍보로 벨기에 남녀노소 모두가 다 아는 점, Live·Love·Unite라는 어떤 나라 그 누구도 수용하는 콘셉트는 모든 장르를 포괄하는 음악과 함께 휠체어 탄 사람, 80넘은 노인까지 축제에 나타나게 한다. 말다툼, 자리다툼 새치기도 없고, 누가 넘어지면 일으켜 세워주고 함께 껴안고 춤추는 광경은 황홀했다.
무대 장식과 배경, 스크린 콘텐츠 장르 모두 탄탄한 스토리와 이유가 있다. 겉으로 그럴듯한 상업 축제는 수가 얕다. 의미를 알 수 없고 난데없는 조형물과 무대, 주제를 공유하지 않는 사람들의 충돌, 신경 날카로운 현장은 너무 다르다. 마치 ‘헬조선’이라 일컫는 우리 모습 같다. 뭐든 좋다 하면 겉모습부터 따라한다. 벤치마킹이라는 허울좋은 핑계를 대지만 정작 시스템이 아닌 표피 일부만 들여오는 모습은. 우리에겐 건축도 자동차도 제품도 아직까지 이유가 부족한 채 만들어진 대상이 많다. 그리고 그런 카피가 롱런할 리 만무하다.
좋으면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이것하라는 행태는 가짜만 만든다. ‘형태는 기능을 따른다’(Form follows Function)고 했다. ‘스토리는 이유를 따른다.’(Story follows Reason) 속을 볼 줄 알고, 반문할 때 진짜를 마주할 수 있다. 우리 존재의 스토리와 이유는 무엇인가.
정연우 UNIST 디자인학과 교수
<본 칼럼은 2022년 7월 19일 경상일보 15면 ‘[정연우칼럼 아웃사이트(7)]스토리는 이유를 따른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