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구촌 여기저기가 가뭄이다. 올해 발생하고 있는 전 지구적인 가뭄은 극심한 수준이다. 양쯔강에서는 연이은 폭염과 가뭄으로 수위가 내려가 바닥에서 600년 전 불상이 드러났고, 메마른 다뉴브강에서는 2차대전 때 침몰했던 나치 전함이 발견되었다. 아주 오래된 것들도 있다. 스페인서는 무려 5천년 전 선사시대 스톤헨지 유적이 드러났다. 가뭄 덕분에 전혀 기대하지 않았던 유적을 찾았지만 마냥 반길 수만은 없다. 세계적인 곡창지대인 우크라이나가 전쟁으로 가뜩이나 곡물 수급이 비상이었는데, 이제 전 지구적인 가뭄으로 작황이 악화되며 멀리 떨어진 우리나라의 식탁까지 위협받고 있다.
비단 농사 만의 문제가 아니라, 가뭄은 식용수 공급이나 수력발전이 필요한 곳의 에너지 문제까지 영향을 준다. 세계 최강인 미국도 올 여름은 속수무책이다. 수년 전부터 미국에서는 메가드라우트(megadrought)의 발생 가능성으로 비상이었다. 메가드라우트는 수 십년 이상 장기간 지속되는 극심한 가뭄을 뜻한다. 후버댐 공사를 통해 만든 미국에서 저장량이 최대인 미드호는 2021년에 관측 역사상 수위가 최저 수준으로 떨어졌다. 7월4일이 독립기념일인데 오죽하면 푹죽 행사를 취소한다고 할까.
많은 지구인에게 가뭄은 이제 상존하는 자연재해가 되어 버렸다. 올해와 같이 심각한 가뭄은 왜 발생하고 있을까? 일부에서는 열대 태평양의 해수면 온도가 비정상적으로 낮아지는 라니냐현상이 문제라고 하지만 단순히 라니냐로 설명하기에는 강도가 쎄도 너무 쎄다. 다수의 기후과학자들은 장기간 가뭄이 지속되는 원인으로 지구온난화를 들고 있다. 또 문제만 생기면 기후변화인가? 기후변화와 가뭄은 어떠한 관련성이 있는가? 데이터를 들여다 보면 짐작은 간다. 지구평균 기온은 화석연료를 본격적으로 사용하기 시작한 산업혁명 이후 현재까지 1.1도 이상 상승했다. 특히 최근 7년간은 매년 어김없이 산업혁명 이전 대비 1도 이상을 넘겼다. 한편 가뭄 발생 빈도 또한 최근 기간 급증하고 있다. 그렇다면 최근에 빈발하는 가뭄이 지구온난화 때문인가? 통계는 두 현상간의 높은 상관성을 알려주지만, 두 현상 간의 인과관계를 입증하지는 않는다. 골프장에서 여름에 맥주가 잘 팔리는 것이 사람들이 맥주를 마시러 골프장에 가기 때문은 아닌 것이다. 복잡할 수 있는 인과관계는 설명 가능해야 한다.
가뭄이 발생하는 원인은 한두 가지로 특정할 수 없고 복합적이지만 지구온난화의 영향을 즉각적으로 받는다. 물론 사막이나 준건조한 지역에서 가뭄의 위험은 상존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심각해 짐에 따라 가뭄 지역은 더욱 확장될 수 있다. 지표에 머물고 있는 물은 공기 중의 온도가 상승할수록 더욱 빨리, 그리고 더욱 효과적으로 증발한다. 장기간 폭염이 지속되면 땅이 더 빨리 메마르는 것이다. 기온이 올라가면 식물 또한 기공을 활짝 열어 증발량을 높이게 되는데, 이때 토양의 수분은 대기 중 수증기로 전환된다. 토양이 더욱 건조해지는 이유이다. 결국 지구 온난화로 폭염이 일상화되면 가뭄도 일상화된다. 한가지 중요한 부분은 한 지역의 가뭄이 역설적으로 다른 지역의 집중호우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가뭄으로 토양에서 증발해 버린 수증기는 대기 중으로 이동하다 결국에는 비로 다시 돌아오는 순환과정을 겪는다. 가뭄으로 늘어난 대기 중의 수증기는 다른 지역에 더욱 강력한 집중호우를 뿌릴 수 있다.
올 여름 미국 텍사스에서는 대부분 지역에서 심각한 가뭄을 겪었지만 북부에서는 집중호우로 심각한 인명피해가 발생했다. 우리나라도 지난 겨울과 봄철에는 역대 최소 강수량으로 가뭄과 산불을 겪었지만, 가뭄이 끝나자마자 서울에서는 기록적인 집중호우가 발생했다. 지구온난화는 이렇듯 양면적인 자연재해를 동시에 가져올 수 있다. 지구온난화는 겨울철 적설량을 감소시켜 가뭄 발생 가능성을 더욱 높인다. 북반구 20억에 가까운 인구가 겨울에 쌓인 적설량으로부터 대부분의 물을 공급받는다. 겨울에 내린 눈은 물을 가두어 두는 창고 역할을 하는데, 덥고 건조한 시기에 물이 필요할 때 나누어 주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지구온난화가 심화될수록 눈보다는 비로 내리며 적설량이 감소하는 것도 메가드라우트 같은 심각한 가뭄 발생 가능성을 높이는 주요 원인이 된다. 이 외에도 지구온난화는 중위도 저기압들의 주요 이동 경로를 바꾸어 내리던 비를 줄일 수 있다. 중위도 저기압의 주요 이동경로는 지구온난화로 인해 고위도 쪽으로 편향될 수 있다. 컴퓨터로 예측한 미래 기후에는 가뭄 발생 지역이 증가하고 더욱 심각해 질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과학자들은 21세기 중반 이후에 가뭄이 더욱 강해질 것이라는 것에 대부분 동의하고 있다.
우리나라는 이제 집중호우 뿐만 아니라 가뭄에도 적극적으로 대응해야 한다. 심각한 가뭄은 농작물 피해, 산불, 에너지 위기 등을 심각하게 만들 수 있다. 기후변화로 빨라진 물순환을 늦추기 위해서는 도시 녹화가 중요하다. 또한 가뭄에 더 잘 견디는 식물로 대체하게 되면, 물소비를 줄일 수 있다. 도시 배관의 누수를 정비해야 하며,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와 같이 비가 한번 내리면 바로 급류로 배수되는 것이 아니라 천천히 흡수되고 방출되게 해야 한다. 가뭄 시기에 수력발전을 위해 에너지 효율을 높이고, 물소비를 감소하려는 노력은 기본이다. 가뭄 시기에 대비하여 저수지나 물 저장량을 높여야 한다.
2018년 불과 15세였던 그레타 툰베리가 스웨덴에서 등교를 거부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느꼈던 생소함은 이제 그 다급함이 실감 난다. 자연재해로 우리의 기후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는 때에 한가하게 미래를 준비할 수 없을 것 같다. 어른들이 다음 세대를 위해서 책임을 지고 실천해야 한다.
이명인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폭염연구센터장
<본 칼럼은 2022년 8월 26일 경상일보 15면 ‘[이명인의 기후와 환경(8)]상존하는 자연재해가 돼버린 가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