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면 #1: 미국이 대통령 선거로 뜨거웠던 2016년 9월 어느 날, 대선후보 TV토론에서 힐러리 클린턴이 상대 후보를 앞에 두고 이야기한다. “기후변화가 중국인들이 만들어낸 사기라고 하셨는데….” “난 그런 말 한 적 없는데? 난 그렇게 주장하지 않아요.” 도널드 트럼프가 말을 끊으며 맞받아친다. 정말인지 아닌지 팩트체크를 해보자. 트위터로 대중들과 소통하는 트럼프는 4년 전인 2012년 11월6일에 분명히 이렇게 글을 남겼다. ‘지구온난화는 중국인들이 중국인들을 위해서 만든 거짓말이다.’ 2014년 1월25일에는 또 이렇게 트위터에 글을 남겼다. ‘뉴스에서 몇 년 만에 강추위가 왔다고 하는데, 지구온난화는 지금 어디서 뭐하고 있니?’
장면 #2: TV를 켜니 눈발 날리는 설악산 대청봉이 장관이다. 뉴스에서는 강원 산지에 지난 24일 올가을 첫 대설주의보가 내려졌다고 한다. 절기상 단풍이 절정인 10월에 대설주의보가 발효된 것은 2005년 10월22일 이후 17년 만이라고 한다. 지난해에는 11월9일, 2020년에는 12월13일에 대설주의보가 처음 발령됐다고도 한다.
앞에 말한 두 장면은 묘하게 중첩된다. 아마도 트럼프가 한국에서 엊그제 뉴스를 봤다면 한번 더 이야기 했을 것 같다. ‘지구온난화 어디로 갔니!’ 사실 트럼프는 기후변화 회의론자를 꼽을 때 제일 먼저 떠오른다. 트럼프는 당시 TV토론 후에 언론에서 팩트체크를 당하고는 그 때 한말이 농담이었다고 해명했다. 그렇지만, 대통령 당선 후에는 온실가스 감축을 위해 전임 대통령이 서명했던 파리국제협약에서 과감하게 탈퇴했다.
일부 사람들은 트럼프가 똑똑하지 않아서, 기후변화를 이해하지 못해서, 못 믿는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이건 잘못된 생각이다. 트럼프는 반대로 매우 영리하다. 파리협약에 따라 미국이 국제사회에서 온실가스를 앞장서서 감축한다면 중국과 경쟁해야 하는 자국의 제조업 근간이 흔들리고 대규모 도산과 실업이 덮친다면? 어찌보면 트럼프의 중국 때리기와 기후변화 때리기는 치밀한 계산을 통하여 미국 우선주위를 표방하며 자신의 정치적 지지 기반을 지키고 탈탄소 경제로의 전환을 위한 시간을 벌기 위한 고도의 선동이라고 볼 수 있다. 선동은 이렇게 단순 무식 과감해야 먹히는 것 같다.
트럼프의 트윗을 되돌아 보면 지구온난화 회의론은 주로 추운 계절에 고개를 들고 나타난다. 사람들은 극심한 폭염과 초강력 태풍으로 기후변화를 이야기하다가도, 겨울이 다가와 한파와 폭설이 제대로 찾아오면 트럼프와 비슷한 생각을 갖는다. 이럴 때 트럼프와 같은 영향력 있는 인물이 한번 더 트윗을 날린다면, 사람들은 아직까지 지구온난화라는 것이 과학적으로 충분히 검증되지 않은 불확실한 이론에 블과하다고 더 믿을 수 있다. 사실 트럼프가 누구인가? 다음 대통령 선거에 또 나올 수 있는 유력한 정치인 아니던가? 미국인들은 전세계가 노력하고 있는 기후변화 대응의 시계를 4년 이상 더 늦출 수 있는 중요한 선택을 곧 해야할 것이다.
지구온난화와 관련하여 과학자들이 말하는 진실은 무엇이고, 때 이른 폭설과 한파는 기후변화와 어떤 관계가 있는가? 과학자들은 사실과 이론을 명백히 구분한다. 지난 100년간 전지구 평균기온이 1도 가까이 올라간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이것은 지난 100년 이상 축적된 방대한 지구 관측자료를 최신 과학기술을 이용하여 처리했을 때 명백히 밝혀진다.
반면에 이것이 산업혁명 이후로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 때문이라는 것은 과학적 이론에서 출발했다. 대다수의 기후 과학자들이 참여하고 있는 IPCC 기후변화 보고서가 맨 처음 발간된 1990년에는 인류가 배출한 온실가스 증가가 지구온난화를 유발할 수 있다는 가능성 정도가 제시됐다. 당시로는 한정된 관측자료로 인해 기후 변동에 대한 과학적 이해가 충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후로 5~8년 주기로 보완되고 있는 기후변화 보고서들은 발간 당시까지의 가장 신뢰할 수 있는 최신 과학정보를 바탕으로 하고 있다.
가장 최근에 발표된 2021년 보고서의 결론은 30년 이전과 비교하면 매우 단정적이다. 지금까지의 기온상승이 인위적인 영향이라는 것이 명백하다고 제시한다. 매우 적은 가능성도 열어두어야 하는 과학자들이 이렇게 강력히 주장하는 것은 매우 이례적이며, 그만큼 지구온난화가 인간활동 증가에 의한 인위적인 현상이라는 이론에 대한 과학적 근거가 차고 넘친다는 것이다. 아울러 보고서에서는 지난 70년간 전 지구적으로 폭염과 같은 여름철의 이상 고온 현상이 증가하고 한파와 같은 이상저온 현상이 눈에 띄게 감소했다고 제시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기후변화와 한파가 혼동되는 것은 왜일까? 이것은 날씨와 기후를 혼동하기 때문이다.
날씨는 매일매일 변하지만 기후는 날씨를 장기간 평균했을 때 나타나는 통계적인 상태다. 따라서 기후변화를 이야기할 때에는 단기간의 날씨 변화로 설명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고 장기간의 통계에 근거해야 한다. 지난 100년간의 기온상승이 1도에 가깝다고는 하지만, 이러한 기온 상승으로 겨울이 여름이 되고 밤이 낮이 될 만큼 날씨를 통째로 바뀔 수는 없다. 지구온난화는 과학적으로 충분히 입증되었으나 일부의 극단적인 부정과 또 다른 일부의 급진적인 기후위기론 속에서 여전히 불편한 진실로 머물러 있다.
이명인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폭염연구센터장
<본 칼럼은 2022년 10월 28일 경상일보 15면 ‘[이명인의 기후와 환경(10)]한파와 지구온난화’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