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틀그라운드를 개발한 게임회사 크래프톤이 지난해 상장하면서 우리사주에 35만주를 배정했을 때 직원들은 환호성을 울렸을 것이다. 작년까지만 해도 공모주 투자는 대박이라는 믿음이 공식처럼 자리 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주가는 곤두박질쳤고, 대출까지 받아 우리사주를 신청했던 직원들은 땅을 치고 후회할 판이다. 49만8000원에 1인당 평균 264주씩 받았던 주가가 지금 22만원대이니 각자 7100만원쯤 손해 보고 있는 셈이다. 앞으로 주가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으나, 당장은 1년치 연봉을 날린 셈이니 속이 쓰리지 않을 도리가 없다.
부동산 활황을 타고 프로젝트파이낸싱(PF) 사업에 참여했던 많은 금융사들과 건설사들도 요즘 속이 타들어 간다. 지난해까지 부동산 시장이 호황이었을 때 건설사들은 높은 토지 대금을 제시하고서라도 사업권을 따낸 뒤 고가에 분양해 큰돈을 벌었다. 증권사들도 프로젝트파이낸싱(PF)과 자산유동화기업어음(ABCP)에 참여해 쉽게 돈을 벌었다. 하지만 상황이 달라져 금리가 오르고 부동산 시장이 얼어붙자 건설업체는 분양도 못 해 난감하고, 금융기관은 PF 대출 부실화 우려로 전전긍긍한다.
이런 일들은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승자의 저주’다. 무리하게 다른 기업을 인수합병(M&A)했다가 소화하지 못하고 망한 기업들, 거액 대출을 받아 경매로 집을 샀다가 이자도 감당 못 하는 투자자들, 괜히 분에 넘치는 자리를 욕심냈다가 과거 흑역사가 까발려져 망신만 당하고 낙마한 숱한 정치인들도 이런 범주에 들어간다.
승자의 저주는 흔히 과열 경쟁으로 인한 불안 심리, 자기 과신, 투자에서의 쏠림 현상, 주인-대리인 문제로 발생한다. 용어 자체는 1950년대 미국 텍사스주의 해양 석유채굴권 경매에서 달아오른 경매 분위기로 낙찰가가 실제 가치보다 과도하게 결정된 사례에서 왔다. 하지만 인류 역사에서 숱한 승자의 저주가 되풀이된 것을 보면 인간에게 떼려야 뗄 수 없는 숙명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도 승자의 저주를 최소화하려면 늘 경계심을 유지하고, 분위기에 휩쓸리지 않고, 보상과 위험을 냉철하게 따지려고 노력하는 수밖에 없다. 워런 버핏은 기업을 인수할 때 나름대로 기업가치를 평가한 다음 그보다 20% 낮은 금액을 제시한다. 여기서 1센트라도 높으면 아무리 탐나는 기업이라도 과감히 인수를 포기한다. 이런 신중함이 있었기에 수십 년째 세계 최고의 투자자라는 명성을 유지할 수 있었다. 에드 브린 듀폰 최고경영자(CEO)는 “21년간 CEO로 일하는 동안 진짜 중요한 결정은 20번밖에 하지 않았지만, 그런 결정을 할 때는 최악의 경우를 상정해 모든 위험을 걱정하고 대비했다”고 했다.
중국 북송 시대 학자 정이(程頤)는 인생의 세 가지 불행이 어린 시절 출세하는 것, 권세 좋은 부모형제를 두는 것, 뛰어난 재주와 문장력을 타고나는 것이라고 했다. 성공했을 때가 가장 위험한 순간이라는 사실을 새긴다면 승자의 저주에서 조금은 자유로워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