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르게 말하면, 보편적인 과학적 지식에 대한 본질과 철학까지 알면서, 치밀한 과학적 방법론으로 학문을 하는 사람 자체가 소수라는 것이다. 이것은 당연했다. 고등학교, 대학교 다닐 때 학문을 왜 해야 하는지를 고찰하고 그 목적에 부합되도록 하는 학생이 소수이기 때문에, 교수직이 무엇이고, 어떤 것이 교수로서 학문을 잘 하는 것인지, 깊게 고찰하고 연구와 수업을 하는 교수도 소수일 수 밖에 없다.
이 경험이 나를 치밀한 학생으로 만들었다. 우리가 아는 노벨상 받은 케임브리지나 하바드의 연구자들이 그런 과학적 방법론과 철학에 통달해서 큰 업적을 이루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다.
그에 반해 나는 과학 연구 프로세스 자체를 중요시하는 생명과학의 ‘꾼’이었다. 나는 시험 준비 공부를 하지 않는 대신에 교과목에서 나오는 원천 논문들을 도서관에 가서 직접 읽고, 교수들에게 많은 질문과 그 답에 대한 다음 질문을 했다.
3학년부터는 학과의 허락을 받아 강력한 SGI(Silicon Graphics) 수퍼 컴퓨터를 이용해, DNA구조의 3차원 모델링을 하고, 관련된다고 생각되면 대학원생이나 연구자들의 세미나를 알아서 좇아 다녔다.
특히, DNA구조를 더 많이 연구를 하면 할수록, 그 구조에 많은 이슈들이 있음을 알게돼 놀랐다. 그래서, 크릭과 왓슨이 1953년 발표한 논문 이전에 이미, 상당수의 논문들이 DNA는 나선 구조이며, 한 노르웨이의 학자는 1949년과 1952년, 상당히 정확한 구조를 제시 했다는 것도 알았다.
뿐만 아니라 실제로 DNA구조를 밝혀내고, 그것이 2중 나선이란 것을 안 사람들이 있었다는 것이다. 내가 그때 수집하고 읽은 논문은 수십편이었다.
그리고 Charm 에너지 함수를 이용해 SGI 컴퓨터에서 모사한 결과, DNA는 굳이 이중 나선이 아니라도, 상당히 안정적일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됐다. 물론, 이중 나선도 DNA가 가지는 하나의 형태(conformation)이지만, DNA자체를 이중 나선이라고 부르는 것은 마치 인간을 설명할 때, 항상 두발로 서 있는 동물로 묘사하는 것과 같다는 추론을 하게 됐다.
3학년 때, 존 포더길 교수와 앤 글로버 교수의 도움으로 DNA구조에 대해 항상 2중으로 꼬인 나선일 필요가 없고, 오히려 납작한 안 꼬인 구조도 가능하고, 그것을 지지하는 2차원 영동 실험결과를 넣어 2중 나선은 한 개의 안정적인 DNA 형태라는 취지의 논문을 작성해 영국의 네이쳐 잡지에 투고를 했다. 그때 2중 나선을 가진 플라즈미드 DNA의 전기영동실험도 했었다.
약 2주 뒤에 거절당하는 답을 받았다. 1994년에는 미국 산디에고의 쏠크 (Salk) 연구소에 있던 프란시스 크릭에게 편지를 보내서, 나의 의견을 제시했는데, 크릭은 미국에서 내 편지에 친히 답을 해서 왜 나의 모델이 틀린지에 대한 객관적 의견을 제시하고 “사이언티픽 어메리칸” 기고글도 내게 보내왔다. 이런 과정들을 통해 나는 가설, 실험, 토론, 논문 제출 등에 관한 방법을 터득했다.
스코틀랜드는 영국에 속한 독립 국가인데, 학교 시스템이 잉글랜드와 다르다. 4년제로 돼있고, 3년이 되면 학사를 받을 수 있다. 4년째가 일종의 석사인데, 아너즈코스라고 한다. 자신의 최종 전공 학과는 3학년 때 정한다.
예를 들면 들어갈 때는 어떤 학과에 들어가도 되고 3학년이 지나면서 자신에게 맞는 과목을 정하고, 그것에 맞는 시험점수를 받고 졸업을 한다. 영국은 성적이 ABC로 매겨지는 것이 아니라, 일등급, 이등급상, 이등급하, 삼등급으로 나뉜다. 1등급 받는 학생 수는 학교마다 다른데 절대평가로 한다. 그래서 어떤 해에는 어떤 학과목에는 일등급 받은 학생이 없을 수도 있고, 40명 중 5명이 나올 수도 있다. 그리고 나라 전체에 평준화가 돼있어서 애버딘대학의 1등급이나, 런던대학의 1등급은 같은 학업수준이다. 그래서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가 중요하지 않고, 몇 등급을 받았는가가 중요하다.
<본 칼럼은 2023년 3월 28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7)] 휴학과 스코틀랜드 유학 Ⅱ”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