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달 뒤에 대회의 결과를 발표하는 학회가 캘리포니아의 서부 몬터레이 근처 아실로마에서 있었다. 그런데, 가보니, 팀 허버드와 내가 가장 많이, 가장 정확하게 3차원 구조 인식 예측을 했다. 그래서 1차 CASP대회에서 3가지 세부 분야 중 한군데에서 MRC 센터 팀이 우승을 했다고, 내부에서 소문이 돌았다. 그러나 나도 팀 허버드도 상이나, 등수에 관심이 별로 없었다. 그런 것들이 귀찮았고, 팀은 좋은 성적을 얻은 데에 자부심은 느낀 것 같지만 중요하다고 생각하진 않았다. 그것보다도, 자기가 공을 들여 운영한 국제 대회가 잘 끝나고 그것을 통해 많은 사람들이 많은 것을 새로 알게 된 것에 기뻐했다. 팀은 순수한 마음이 있는 영국식 연구자였다.
팀이 ‘아나 트라몬타노’라는 친구와 함께, 캘리포니아에서 만나기로 되어있었고, 우리는 차를 빌려서, 샌프란시스코에서부터 아실로마까지 내려가 아름다운 해안 드라이브를 즐겼다. 내가 본 최초의 캘리포니아였고, 그곳에 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뒷날 캘리포니아의 샌디에이고 (San Diego)에 살기로 마음을 먹게 되었는데, 이때의 여행이 큰 영향을 끼쳤다.
팀은 내가 1994년 8월 연구실에 들어갔을 때, 나를 위해서, 내 인생에서 가장 훌륭한 선물을 해줬다. ‘Ind5’는 실리콘 그래픽스사 (SGI)의 Indigo 시리즈 중에서 조금 싼, 일종의 개인용 수퍼컴퓨터였다. 그 당시에 제대로 생정보학을 하는 사람들은 SGI 컴퓨터를 많이 썼다. 이 컴퓨터는 irix라는 유닉스계열의 운영시스템을 가지고 있고, 지금의 라이넉스(Linux)와 별차이 없었으나 그래픽스 기능이 뛰어났다. 그래서 팀의 런던 대학교 친구였던 안드레이 살리가 만든 유명한 Modeller라는 소프트웨어를 깔고, 3차원 모델링 작업을 많이 했다. 또 보통 C나 포트란으로 만들어진 많은 서열 연구 프로그램들을 연구에 썼다. 아마 그 당시에 나처럼 강력한 컴퓨터로 생정보학을 한 학생은 별로 없었을 것이다. Ind5에는 웹서버가 이미 깔려 있어서 나는 홈페이지를 연구소에서 운영할 수가 있었다. 이것이 미래에 생정보학을 할 때, 각종 서버들을 운영하는데 필요한 많은 경험을 줬다. SGI의 인디 서버는 32MB의 메모리, 1GB의 하드디스크, R4600 CPU를 탑재하고 있었다.
1994년부터 케임브리지의 키즈 대학의 기숙사 방에 들어온 10Mbps짜리 이더넷(Ethernet)을 이용해 바이오정보 웹서버를 운영하고 있었다. 그 당시에 자신의 방에서 웹서버를 운영한다는 것은 대단한 행운이었다. 케임브리지였기에 가능했다. 내가 쓰는 인터넷이 중견 기업들이 쓰는 것보다 더 좋았다.
라이넉스를 깔고 각종 웹서버를 돌려보고, MRC 센터의 연구실 대형서버에 연결해 일했다. 그래서 연구소에 가지 않아도 됐다. 지도교수인 팀은 집에서 전화 모뎀으로 아주 느리게 연구소와 접속을 하면서, 나를 무척이나 부러워했다. 연구실에는 강력한 나만을 위한 ind5라는 서버가 있었고, 혼자 쓰는 커다란 기숙사방에는 내가 자체적으로 돌리는 웹서버가 있었다. 이때, 사람들은 FTP를 활용해서 생명정보 데이터를 많이 공유하고 있었다. 게놈을 제대로 연구하려면, 이런 전산인프라가 잘 깔려져야만 한다. 게놈이나 단백질 3차원 구조는 무한대의 전산 용량을 쓰는 분야이기 때문이다.
<본 칼럼은 2023년 8월 1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 19] 캘리포니아 아실로마”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