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의 족보를 완벽하게 구성하면, 수백, 수천만년 전의 한 종류의 조상으로 수렴된다. 단백질도 마찬가지이다. 수십억년 전에 우리가 아는 모든 단백질들은 하나의 조상에서 나왔다. 최초의 단백질은 어떤 서열인지 알 수가 없지만, RNA 서열에서 어떤 과정을 거쳐서 단백질로 나왔을 것으로 본다. RNA는 DNA에서 왔거나, 다른 RNA에서 왔을 것으로 추정한다. DNA는 RNA의 산물일 것이라는 것이 지배적이다. RNA는 DNA보다 덜 안정적이라서, 물속에서 더 많이 떨게(진동) 된다.
이 떠는 것이 에너지적으로 보면, 일을 할 수 있는 능력이 되고, RNA가 단백질이 생성되기 전에 지구의 핵심 분자라고 추측된다. 단백질은 RNA가 만들어낸 기능적 분자로, 컴퓨터의 CPU에 해당하고, DNA는 저장적 분자로, 컴퓨터의 메모리장치에 해당된다고 할 수 있다. 생명체는 물이라는 매우 특별한 환경에서 DNA, RNA, 및 단백질로 일을 하는 컴퓨터이다. 지구에서의 DNA 출현과 지식의 축적 (DNA and Information Growth)DNA는 지구 생명체 (Biome)가 만들어 낸 가장 중요한 화합물이다.
이것은 한 국가가 국립도서관을 만들어서, 세상의 지식을 쌓아 다음 세대에 넘겨주는 것과 같은 것이었다. 다르게 말하면, 생명체가 환경적응에서 생기는 적응 지식을 축적해, 보다 더 지속적으로 새로운 환경에 적응할 수 있게 됐다는 것이다. 지구상에 분자의 역사(기록)가 시작된 것이다. DNA가 중요하다기 보다는 게놈이 중요하다고 하는 것이 더 맞다. 우리가 흔히 말하는 DNA는 게놈을 이루는 화학물이다. 게놈은 단위 구조를 갖은 정보를 함유한 한 개체이다.
내가 졸업한 해의 애버딘 대학의 분자세포생물학 단과대의 학생들을 보고 교수들이 특별하다고 했다. 왜냐하면 학생들이 열정적으로 수업에 참여했고, 숙제, 세미나 준비, 에세이 준비를 진지하게 했기 때문이다. 약 60~70명 정도의 학생들이 있었던 것으로 기억하는데 그 중 말레이시아 출신의 여학생 하나와 나만이 아시아계였다. 교수들이 나를 잘 알고 있었다는 것을 졸업직전에 알게 됐다. 수업시간에 교수들이 하는 말을 통해 생각과 상상을 많이 하는 방식의 공부를 했다.
수업시간에 꼿꼿이 앉아서 50분간 잠시도 눈을 떼지 않고 교수를 쳐다보면서 질문을 하면 대답을 하고 질문도 했다. 외부에서 오는 강사들의 세미나도 자발적으로 놓치지 않고 듣고, 내 학년이 아닌 다른 상급학년에 수업을 듣는 데다가 (이언부스 교수 등 사람들이 높은 학년에 와 있는 나를 보고 불쾌했던 것인지 재미있었는지 쳐다보곤 했다. 하지만 쫓아 내지는 않았다), 수업 중 노트 필기는 하지 않았다. 어느 날, 어떤 교수는 수업 중에 나를 쳐다 보더니 갑자기 역정을 내면서 모든 학생들에 필기하는 것 중단하라고 했다. 나는 내가 뭘 잘못했나하고 잠깐 걱정했었다. 그리고는 ‘제발 자기가 하는 수업을 좀 듣고 무슨 소리인지 그 의미를 생각해달라’는 말을 했다.
나이 많은 생리학 교수였는데 생물학이 얼마나 ‘아름다운지’ 좀 들어보라는 것이었다. 받아 적어서 나중에 시험 잘 치는 것보다 잘 들어서 이해하고 즐기는 것이 더 중요하다는 뜻이었다. 어떤 다른 나이든 교수는 우리 학년 학생들이 너무나 질문을 진지하게 많이 했기 때문에 우스개 흉내를 내기도 했다. 교수인 자신을 칠판에다 십자가에 못박는 듯이 한다는 시늉을 한 것이었다. 그만큼 호전적으로 내 학우들이 수업에 임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공부를 목적주의적으로 하는 나의 방식이 현실적으로 현명한 것이었는지에 대해서는 교수들간에도 말이 있었던 것 같다.
왜냐하면 공부를 나름대로 정직하게 했지만 성적이 1학년에서 3학년까지 중간 정도밖에 안됐기 때문이다. 내가 가진 언어장벽, 문화장벽, 시험공부 부재 등을 생각할 때 내 급우인 쉴라, 질리언, 필립 만큼 성적이 잘 나올 수가 없었다. 난 시험일정이 어떻게 되는지에도 관심이 없었고 시험을 치는 것이 재미있었고, 행복한 내가 배운 지식을 체크해보는 시간으로 이용하기도 했다. (시험칠 때도 항상 새로 배우는 게 있어서 너무 기뻤다. 내가 미처 생각하지 못했던 질문이 나오기 때문이었다.
모든 시험 치는 시간은 즐거움이었다). 내 친구 제이미가 어느 날 내게 말하길, 교수들이 4학년 학생들하고 술집(펍)에서 저녁에 같이 술을 먹었는데 교수 중 한 사람이 공부하는데 있어 ‘종’(내 이름)의 접근법이 더 옳은 것이었다라고 말을 했다는 것이었다. 영국은 문명수준이 높은 사회다.
영국에선 합리적인 평가와 분석이 항상 대세를 이룬다. 내가 간접적으로 들은 그 말은 내가 정직하게 공부하고 순수한 목적에 맞게 하려는 것에 대한 사회적 지원이였다. 역설적으로 내가 결국 1등급을 받았기 때문에 교수와 학생들은 나의 방식을 인정을 해줬다.
<본 칼럼은 2023년 6월 27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15)] 최초의 단백질 조상”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