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 말, 생어연구소는 세계에서 가장 큰 게놈연구소로서 세계 게놈학문을 주도하고 있었다. 100대가 넘는 생어식 DNA해독기를 설치하고, 당시에는 상상하기 어려운 엄청난 양의 컴퓨터 저장장치를 확보하고 있었다. 내 친구 알렉스 베이트만이 그 시설을 보여줘 내부를 볼 수 있었다. 또, 당시에 계속해서 생어에서는 시대의 획을 긋는 중요한 게놈 논문들을 발표하고 있었다.
내가 케임브리지에 있을 때인 2000년 6월 25일,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와 미국 대통령 빌 클린턴이 인간게놈프로젝트의 완료를 선언했다.
실제로 인간게놈에 가장 큰 역할을 한 나라는 영국이고, 가장 큰 역할을 한 연구소는 케임브리지 MRC센터와 생어연구소이다.
이 프로젝트를 이끌었던 대부분의 주요인물은 MRC센터를 거처간 사람들이었다. 인간 게놈프로젝트를 미국에서 제안한 핵심인물인 제임스 왓슨도 MRC센터의 연구원이었다. 게놈의 지도를 만드는 기술도 MRC 센터의 사람들이 개발했고, 최초의 DNA분석 프로그램도 MRC센터에서 개발됐다.
최초의 인간 염색체도 MRC센터에서 유래된 생어연구소 사람들이 해독을 했다. 나는 두 나라의 정상이 게놈관련 발표를 한 게놈프로젝트의 핵심 장소에 있었다.
2012년 현재 세상에서 가장 많이 쓰이는 일루미나사의 솔렉사 DNA 해독기는 케임브리지의 화학과에서 만든 것이었다. 어릴 때부터 내가 하겠다고 결심한 연구를 내가 굳이 찾지 않아도, 이래저래 어떻게 그것을 하고 있었다. 단지 내가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연구주제를 쫓아 다녔을 뿐인데, 꿈들이 나도 모르는 사이에 이뤄지고 있었다. 그 당시만 해도 그런 게놈관련 연구와 관련되는 일이 내 주위에 생기는 것이 당연하게 여겨졌다. 지금 한국에서 보면, 억세게 운이 좋았다는 생각이 든다.
DNA 해독법 가운데 생어의 DNA해독법(Sanger’s DNA sequencing)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다. 생어는 2가지의 염기 해독 방법을 만들었는데, 첫 번째 것이 음양(+/-) 방법이었다.
그 뒤 이것보다 더 효율적인 사슬막기(chain termination) 방법을 만들었다. 원리는 간단하다. DNA 사슬을 이어가는 중합효소에게 고장난 dideoxy NTP(ddNTP) 염기조각을 줘서, 더 이상 사슬이 못 만들어지게 하면 된다. 그러면, 잘 나가다가 막힌 수많은 DNA서열들이 생기는데, 각자가 조금씩 다른 분자량을 가지게 된다.
이것을 반 고체의 젤에다 넣어서 질량에 맞게 정렬시켜보면 된다. 이것을 실험실에서는 보통 ‘젤에다 건다’라고 한다. 걸 때는 양쪽에 플러스와 마이너스 극을 연결시키고 전기를 흘리면 된다.
DNA는 전하를 갖고 있기 때문에, 한쪽에서 천천히 다른 쪽으로 젤 상에서 이동을 한다. 무거우면 천천히, 가벼우면 빨리 간다. 이대로 약 2시간 뒤에 보면, 사다리처럼 DNA 같은 분자들이 질량에 따라 분리돼 선이 생기게 되고 이를 이용해 서열 해독을 하게 된다. 이런 실험을 영어로는 electrophoresis라고 하고, 한글로는 전기영동이라 한다.
<본 칼럼은 2023년 10월 10일 울산매일신문 “[박종화의 게놈이야기(28)] 인간 게놈 프로젝트 완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