범아시아 유전 다양성 연구 사업으로 인해 에디슨 류가 싱가포르에서 미팅을 개최하게 됐고, 결국 2009년 12월 그 결과가 컨소시엄 논문으로 발표됐다.
이 프로젝트는 아시아에서 진행된 가장 큰 규모의 생물학 협력 연구였다. 이 프로젝트의 데이터는 방대했다. 2,000명의 아시아 사람의 데이터가 사용됐고 아피메트릭스사의 56K 단염기다형성 DNA 칩이 사용됐다. 10여개국의 나라가 참여했고, 90명 정도의 논문 저자가 등록됐다. 한국의 국립보건원이 참여했고, 인간 이동 관련 데이터의 분석은 중국의 진리 그룹, 싱가포르 게놈연구소 및 코빅이 주로 담당했다.
코빅은 개인 게놈용으로 설치한 수천 개의 CPU core를 이용해서, 2,000여명의 데이터를 약 2년간 계산했다. PASNP 컨소시엄 중, 코빅이 많은 양의 전산 계산을 수행했다.
논문의 내용 역시, 진리 그룹의 순수한 남방 아시아 이주설을 보완해 계속 논쟁의 여지가 되는 북방이주설의 가능성에 대해 확실한 증거가 제시될 때까지 조심스러워야 한다는 의견이 최종적으로 받아들여졌고, 거듭되는 논문 게재 거절을 극복할 수 있었다.
중국 연구자들은 남방에서 모든 북방 아시아인이 유래했다는 논리를 강하게 주장했다. 그것이 사실일지라도 PASNP 논문의 핵심은 그런 이주에 관한 것이 아니라, 방대한 아시아인 유전적 다양성 지도에 초점이 있다고 나는 주장을 했다.
이 컨소시엄 프로젝트는 몇 가지 교훈을 남겼다.
첫째, 게놈 수준의 많은 양의 정보를 분석할 때 중요한 것은 효율적으로 돌아가는 전산장비이다. 둘째 그것을 제대로 운영할 수 있는 전문 전산팀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아무리 많은 실험 데이터가 나와도 그것을 제대로 분석할 수 있는 생정보학 전문가가 없으면, 아무 쓸모 없다는 것이 확실히 증명됐다.
예측했던 대로, 생물학은 데이터가 주도하는 체제로 넘어가는 것을 확실히 보여주는 계기였다. 마지막 교훈은 다른 분야를 포괄적으로 이해하는 전문가가 있어야 하며 또 각기 다른 분야의 전문가들이 모여서 컨소시엄을 잘 운영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더불어 빠질 수 없는 부분은 에디슨 류 박사의 정치력이 상당히 도움 됐다는 것이다.
코빅의 근본 운영은 자동화, 대량화, 고속화로 설명된다. 범아시아 유전 다양성 프로젝트를 통해 훈련된 생정보학 전문 인력들은 2008년 초 가천의대 이길녀 암당뇨연구원과의 최초 한국인 게놈 분석을 수행하게 된다.
안성민 박사는 2007년부터, 단백체학 쪽과 마이크로 RNA 다른 분석 때문에 코빅과 협력하고 있었고, 같은 연구원의 이봉희 박사와도 코빅은 몇 년 전부터 협력해 오고 있었다.
마침 2006~2007년부터 내가 마크로젠사의 회장인 서정선 교수에게 생명정보 공동 벤처회사를 세우자고 제안한 상태였다. 이 회사의 핵심 또한 자동, 대량, 고속화였다. 생정보학 프로젝트는 꼭 이 세 가지가 달성돼야 한다.
“게놈 관련 시장이 2007년쯤부터 올 것이므로, 미리 생명정보회사를 내가 만들고, 그 투자를 한국의 마크로젠, 바이오니어 등 대형 바이오벤처에서 각출해 투자를 해주면, 내가 한국의 게놈·생정보 분야의 수요를 처리해 주겠다”고 서 교수에게 제안했다. “10억원 정도의 투자금이 필요하다”고 했다.
바이오 시장에서 각종 회사들이 생정보학 서비스의 혜택도 받고, 자신들이 투자했으므로 매출을 도와서 이익도 쉽게 난다는 계산이었다. 코빅이 수행하던 것이 공적인 성격이라면, 이 계획은 민간 상업 분야의 새로운 시장을 만들기 위한 것이었다. 나는 민간 상업화를 계획했던 것보다 더 빨리하고자 했다. 2008년경이면, 개인 게놈 시장이 세계적으로 열릴 것으로 예측했었다.
<본 칼럼은 2023년 11월 28일 울산매일신문“[박종화의 게놈이야기(35)] 한국인은 동남아시아에서 왔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