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 때 우리 형제들은 선친께서 해주시는 이야기를 듣는 것을 즐겼다. 개중에는 직접 겪으신 일화들도 있었다. 예를 들어, 한번은 한밤중에 장례식장에 갔다가 걸어서 집으로 돌아오는 산길에서 빨간 불이 날아다니는 것을 보셨다고 한다. 그날 밤 몇 시간을 걸어도 나갈 길을 찾을 수가 없었는데, 알고 보니 무덤 근처를 계속 뱅뱅 돌고 있었다는 것이다.
아무리 무서워도 그런 이야기는 늘 흥미로웠다. 이미 ‘전설의 고향’과 같은 TV 프로그램에서 ‘납량특집’ 이야기들이 흔했지만, (허구가 다소 섞인) 경험담만큼 실감 나고 손에 땀을 쥐게 하는 것은 없었다. 학교나 군대에서 겪은 기묘한 이야기, 그리고 산에서 길을 잃은 이야기들은 항상 ‘알고 보니 OO이었다’로 반전이 있는 이야기인 경우가 많았다. 중고등학교 때 많이 알려진 무서운 이야기 중에는 조곤조곤 이야기하다가 마지막에 가서 갑자기 ‘왁!’하고 소리를 질러 듣는 이로 하여금 비명을 지르게 하는 것도 있었는데, 때로는 내가 이야기꾼이 되어 친구들에게 전달하기도 했던 것 같다.
인류학자들은 인류의 진화에 있어서 이야기가 큰 역할을 한 것으로 간주한다. 이야기를 통해 정보를 체계화하고 전달해 인류가 적응하고 생존하는 데 유리하게 작용했다는 것이다. 인간은 아마도 알타미라 벽화, 그리고 반구대 암각화를 통해 이야기를 전달하기도 했을 것이다. 존 나일스라는 학자가 쓴 용어인 ‘호모 나란스(Homo Narrans)’, 즉 ‘이야기하는 인간’은 이야기를 통해 자신과 타인을 이해하며, 더 나아가 세상을 이해해 왔다.
이야기는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의 반영이다. 이야기를 통해 우리는 과거로 여행을 하기도 하고, 미래를 꿈꾸기도 한다. 인간의 언어가 여타 동물의 소통 체계와 차별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지금 여기 존재하지 않는 것을 상상해서 지어낸다는 점이다. 이야기들을 흥미롭게 만드는 것들 중 하나는 ‘만약 OO이라면 (what if)?’다.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간다면? 낮과 밤에 서로 다른 존재라면? 꿈속 세계를 유영한다면? 다른 모습으로 변신할 수 있고 더 나아가 초인적 힘까지 가진다면? 이처럼 이야기 속에서라도 다른 사람이 되어보고 다른 세상을 살아보는 것은 인간의 근본적인 욕망을 반영한다.
흥미롭게도 이야기하는 인간이 가장 잘하는 것 중 하나가 바로 ‘가십’(gossip)이다. 원래 남의 집 불구경, 그리고 남 이야기가 제일 재미있는 법이다. 사람들은 모여서 가십을 하면서 피아(彼我)를 구별하기도 한다. 가십은 보통 ‘너 그거 알어?’ ‘너한테만 하는 이야기야.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마’로 시작된다. 진화인류학자 로빈 던바가 설명하듯, 가십은 유인원이 흔히 하는 털 솎아주기에서 그 근원을 찾을 수 있으며, 가십도 그와 마찬가지로 서로 주고받으며 상호 유대감을 형성함으로써 진화에 순기능을 할 수 있다. 그런데 가십은 타인에 대한 험담이 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는 사실이든 허위이든 타인에 대한 비방을 하고 이를 유포할 경우 명예훼손죄로 간주될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그러한 행위를 멈추지 않는다.
험담의 대상은 보통 남의 부러움을 사는 사람일 경우가 많다. 사마천의 <사기>에 따르면 사람들은 자신보다 열 배 잘나면 헐뜯고, 백 배 잘나면 두려워한다고 한다. 열 배도 잘나기 어려운데 백 배나 잘나기는 또 얼마나 어렵겠는가? 누구나 언제든 험담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 그저 그러거니 하고 살 수밖에 없겠다. 낮 기온 35℃에 육박하는 무더위가 지속되는 가운데, 남 이야기 듣는 것에 시간 낭비할 게 아니라 차라리 등골이 오싹해지는 무서운 이야기를 들으며 8월의 이 혹독한 더위를 식히면 어떨까.
<본 칼럼은 2024년 8월 21일 경상일보 “[최진숙의 문화모퉁이(15)]이야기하는 인간’”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