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이 알파고와 이세돌 9단으로 난리다. AI와 인간의 대결이란 그럴듯한 설정은 호사가들에게 참 좋은 이슈가 아닌가? 대국의 결과를 저마다의 틀에 넣어 낙관과 비관으로, 견해와 갑론을박으로 기사가 넘쳐난다.
분명한 것은, 지적 영역에서 인공지능의 통계분석 역량은 이미 인간을 추월했다는 지극히 당연한 사실이다. IBM컴퓨터 딥블루의 체스챔피언 등극이 20여년 전인데, 우리는 까맣게 잊고 있었나? 그 때도 인공지능이 인간을 초월하는 시대라 해놓고 새삼 재탕, 삼탕이다. 신경망과 정책체계의 알파고건 베타고건 인공지능은 어쨌든 인간을 넘어서게 되어 있다. 다시말해 인간보다 똑똑한 인공지능이 모든 곳에 쓰이는 미래가 곧 온다.
중요한 것은, 미래가 밝으냐 어두우냐는 감성문제가 아니라 미래라는 변화를 빨리 인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필자는 이 글을 제네바 모터쇼를 참관하고 오는 길에 쓰고 있다. 제네바에는 벌써 미래가 와 있다. 기술변화가 어떻게 이동수단으로서의 자동차와 그에 기반한 우리 삶에 영향을 주는지 나타나 있기 때문이다. 자율주행과 전기차는 이제 흥미조차 끌 수 없을 만큼 보편화된 이슈다. 특이한 것은 완성차 기업들보다 신생 전기차 기업들의 이야기가 더 많다는 점인데, 사실 이를 캐치하는 우리 관계자나 미디어가 없는 것같아 안타깝다. 완성차 부스 사이사이 공간을 차지한 국적도 종류도 다양한 신생전기차 기업들은 저마다 실제 모델을 뽐내며 그들의 밝은 미래를 자신하고 있었다.
새로 도전하는 기업의 입장에서 전기차로의 패러다임 변화는 100% 긍정이다. 엔진과 변속기, 흡기배기시스템이 모터 하나로 대체되는 파워트레인 간결화가 첫째 이유다. 누구든 쉽게 모터와 배터리를 사용하여 성능을 갖는 기술평준화는 둘째다. 셋째는 자율주행기능에 의해 차간 충돌이 없어짐으로써 복잡한 충돌안전장치나 구조가 사라진다는 점이다. 넷째는 모듈결합 방식이나 3D프린터를 이용함으로써 소기업에 유리한 다품종 소량생산 방식으로 체제가 전환되는 이유에서다.
이런 변화에 대해 우리 기업이나 기관관계자들은 신생중소업체가 어떻게 자율주행기술과 안전기술을 개발하고 거대 완성차업체와 경쟁하느냐며 가능성을 비관한다. 심지어 모터쇼에 즐비한 낯선 기업들과 그 전기차들을 직접 보고도 고개를 젓는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그것은 대세와 현상을 짧은 지식과 판단으로 애써 외면한 오판이다.
앞서 이야기한 네가지 이유만으로도 새로운 전기차 산업은 새 먹거리로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 다만 비관론의 근거인 ‘신기술개발경쟁’은 지양하고 ‘적정기술을 활용’하는데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모터와 배터리 성능, 안전한 자율주행시스템, 충전시간 단축 같은 연구개발에 매진중인 완성차기업, 전자기업, 기술특화기업이나 대학연구소와 경쟁할 이유가 없다. 필요하면 다양한 방식으로 해당기술을 도입해서 쓰면 된다. 사업자 관점에서 기술자체가 중요한 게 아니라 기술들을 활용하여 어떤 콘셉트로 제품을 개발하고 상품화할 것인가가 중요하다.
이렇듯 명확한데, 우리 관계자들은 직접 경쟁에 뛰어들어야 속이 풀리는 엔지니어마인드인가 보다. 다시 잘 생각해보시라. 수년 전 전국을 휩쓸었다 사라진 저속 전기차기업들은 특별한 제품 콘셉트 없이 그저 주행 가능거리와 충전시간 단축만 외쳐대지 않았던가? 제네바모터쇼 구석구석을 가득 채운 전기차들은 저마다 아름다운 디자인, 특별한 사용자 경험과 인터페이스를 뽐내고 있었다. 최초, 최대, 최고 같은 수식어가 붙은 기술표는 찾아볼 수가 없었다.
‘백주부’ 세프가 근사한 요리에 쓰는 것은 시장에서 잘 골라온 질 좋은 재료다. ‘삼시세끼’ 사람들처럼 밭에 가서 직접 키운 어설픈 채소도, 바다에 가서 직접 잡아온 복불복 생선도 아니다. 장밋빛 창조경제와 신성장동력은 현상을 이해하고 조합하는 통찰력으로부터 나온다. 유행따라 몰려다니거나 A부터 Z까지 자급자족하려고 낑낑대봐야 죽도 밥도 안된다.
정연우 유니스트 교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6년 3월 15일 경상일보 18면에 ‘미래는 먼 훗날의 이야기가 아니다, 오늘이다’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