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부터 유니스트 의과학대학원은 미국 UCLA 대학병원과 공동으로 국내에서 의료 AI 경진대회를 개최해 오고 있다. 이 경진대회는 국내 의료 AI 스타트업이나 연구실에서 개발된 우수한 의료 AI 솔루션을 선정해 UCLA 대학병원이 보유한 의료 데이터로 검증을 하는 것을 목표로 추진됐다. 우리나라에는 다수의 의료 AI 스타트업들이 질병 조기진단이나 신약개발을 위한 다양한 솔루션을 개발하고 있다. 국내 병원 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AI 솔루션을 보유한 스타트업들이 해외에 진출하기 위해서는 개발된 솔루션이 현지 병원의 데이터로도 같은 결과가 나오는지 여부를 임상연구나 시험을 통해 반드시 검증돼야 한다.
하지만 개별 스타트업들이 협력할 해외 병원을 찾기가 어렵고, 찾더라도 검증하기 위한 시간과 비용을 감당하기 쉽지 않다. 해외 병원과의 본격적인 협업을 시작하기 전에 비밀유지계약 체결만으로 일년이 넘게 소비하는 경우도 다반사다. 유니스트는 UCLA 대학병원과 꾸준히 협력방안을 논의하던 중 UCLA 대학병원의 제안으로 이 경진대회를 공동으로 주최하게 됐다. 스타트업 모집과 우승팀 선정을 유니스트가, 그리고 미국 병원에서의 검증과정은 UCLA 대학병원이 주도적으로 추진하는 것으로 논의해 2023년 5월에 첫 번째 경진대회가 시작됐다.
2023년 제1회 대회에서는 심전도 데이터로 심정지 위험도를 진단하는 AI 솔루션을 개발한 메디컬에이아이가 우승팀으로 선정됐다. 메디컬에이아이는 국내 최고 심장전문병원인 세종병원에서 스핀 오프한 스타트업으로 본사는 서울 강남에 위치하고 있다. 그 해 8월 말에 선정된 후 UCLA 대학병원과 검증을 시작해 3개월 만에 미국 환자 150여명의 심전도 결과를 기반으로 검증을 성공적으로 마쳤다. 메디컬에이아이의 심전도 AI 솔루션은 UCLA 대학병원의 데이터에서도 진단정확도가 국내와 유사한 결과를 보여줬다.
전 세계 여러 국가와 기관에서 의료 데이터 관련 경진대회들이 많이 있지만, 이 대회의 가장 큰 차별점은 저비용과 짧은 검증기간을 목표로 획기적으로 개선된 검증과정이다. 이 검증 결과를 바탕으로 메디컬에이아이는 정식으로 미국 FDA 인증을 추진하기 위한 투자를 유치했고, 정부의 연구지원사업도 유니스트, UCAL 대학병원 등과 함께 성공적으로 수주하는 성과를 얻게 됐다. 제1회 대회를 개최한 경험을 바탕으로 2024년 제2회 대회를 개최해 프로메디우스를 우승팀으로 선정했다.
프로메디우스도 서울 강남에 본사를 두고 있으며 흉부 X선 영상으로 골다공증을 진단하는 AI 솔루션을 보유한 의료 AI 스타트업이다. 이번 검증은 UCLA 대학병원이 보유한 6000여장의 흉부 X 선 영상을 사용해 3개월 만에 완료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국내와는 다른 검증 결과를 보여줬다. 한국보다는 미국 데이터로 검증한 정확도가 다소 떨어지는 결과를 얻었다. 여러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다. 먼저 환자군의 인종적, 문화적 다양성에서의 차이일 수도 있고, X선 영상을 촬영할 때의 조건이나 방식의 차이일 수도 있을 것이다. 이런 차이를 설명하기 위한 추가적인 연구와 개발이 진행돼야 한다.
UCLA 대학병원과 공동 주최한 경진대회를 통해 의료 데이터의 경쟁력에 대해 두 가지를 알게 됐다. 국내의 차별화된 의료데이터의 중요성과 해외 의료데이터와의 비교검증을 위한 플랫폼이나 네트워크가 우리 의료 AI 산업의 중요한 경쟁력이 된다는 것이다. 지난 두 번의 대회에서 서로 상이한 검증 결과를 통해 보듯이 의료 AI는 국가별로 데이터에 차이가 존재할 수 있기에 반드시 이러한 차이점이 검증을 통해 확인돼야 한다. 해외와 차별화된 국내 의료데이터를 기반으로 개발된 의료 AI 솔루션은 그 자체로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그에 더해 해외 의료데이터와 비교 검증해 차이점을 이해하고 개선된 솔루션을 제공할 수 있으면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산업으로 키워낼 수 있을 것이다. 지금은 UCLA 대학병원에서 세 번째 우승팀의 AI 솔루션 검증이 진행되고 있다.
<본 칼럼은 2025년 5월 7일 경상일보 “[배성철칼럼]의료 AI의 차별성과 확장성”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