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국회의원을 뽑는 선거가 치러졌으니, 이 시론의 앞쪽 페이지들에는 온통 선거 결과와 그에 따른 해석으로 가득할 것이다. 이제 지켜볼 차례가 아닌가? 그 많은 공약과 구호들이 제대로 이행되는 것인지 살펴본 다음, 점수를 매기고 잘 기억해 두었다가 다음 총선에서 표를 던져야 우리나라가 발전할 것이고, 우리의 삶과 환경도 나아질 것이다. 공약과 구호를 지키지 않은 정당과 후보를 기억해두었다가 솎아내야 하는 이유는 그들에게 정치에 관한 ‘진심’이 없기 때문이다.
아이러니하게 디자인도 정치와 똑같다. 진심의 유무라는 점에서 묘하게 그렇다. ‘문제를 해결하는 과정’이라는 디자인 분야의 특성상, 그 문제를 파악하고 해결하는 과정에서 ‘현상의 이해’에 따라 ‘택일’의 순간이나, ‘가치관의 이슈’ 앞에서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경우가 참 많다. 그리고 그 ‘택일’이나 ‘결단’을 잘 내리고 명확하게 처리하기 위해서는 일종의 ‘관록’이 필요한데, 이는 문제해결의 방법을 찾기 위해 자신이 행하는 무한한 고민과 연습, 피와 땀으로 다져진 굳은살 같은 것이다. 디자인의 고수들이 만들어 놓은 작품들은 하나같이 명쾌하고, 간결하며 아름답다. 그 단순함의 미학이 지나칠 정도라서, 우리는 직선만으로 날카롭게 뻗쳐 만든 멋진 B사의 TV를 ‘디자인 안 한 것 같다’라는 표현까지 쓰고, 누군가는 ‘저 정도면 나도 하겠다’고 일갈한다. 우리가 간과하고 있는 것은 디자인 고수의 ‘간결한 안으로의 택일’과 ‘모더니즘으로의 결단’을 이끌어 낸 ‘관록’이다.
그런데, 현실에는 그런 ‘관록’도 없이, 혹은 ‘관록’을 위장하고 디자인을 잘하는 척, 디자인을 제법 아는 척하는 사람들이 많다. 재미있는 것은 그런 종류의 사람들이 하수일수록 더욱 고수인 척한다는 점이다. 위험한 것은 디자인을 막 공부하기 시작한 학생들이 자극적인 영향에 노출될 경우, 디자인에 대한 이해부터 ‘왜곡된 마인드’를 갖춘 디자이너로 성장하기 쉽다는 점이다. 학생들의 디자인 과정을 살펴보면 충분한 고민과 아이디어 제안을 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최선을 다했다는 경우가 종종 있다. 그런 학생들일수록 화려한 프레젠테이션과 잘 꾸민 레이아웃, 미사여구로 무언가를 꽤 많이 한 것처럼 포장은 잘 한다. 하지만 종국에 가서 결과물은 형편없다. 비록 발표는 어수룩하고 무언가 부실해 보여도, 학기 내내 수많은 아이디어스케치를 가져오고 밤낮으로 고민한 흔적이 있던 학생의 결과물은 정반대로 찬란하다. ‘도토리 키 재기’에 다를 바 없는, 같은 수준의 학생들일진대, 전자와 후자의 분명한 결과물 차이가 나는 것은 바로 전자는 ‘하는 척’에 빠진 탓이고, 후자는 ‘진심’을 쏟은 탓이다. 아마도 전자의 학생은 ‘이 정도로 꾸며서 가져가면 욕은 안 먹겠지, 어떻게든 이 시간은 넘어 가겠구나’라는 생각으로 ‘디자인’을 수행하였을 것이고, 후자의 학생은 ‘어떻게 해야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까? 좋은 안을 낼까?’라는 고민으로 ‘디자인’을 대했을 것이다.
필자가 이렇게 글을 정리하다 보니 ‘디자인?’ 이건 완전히 정치를 빼다 박았다.자신의 전문영역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고수를 사칭하며, 누군가가 노력해서 성과를 만들면 그것을 인정하기는커녕 온갖 방법을 동원하여 열매를 뺏고, 시기하고, 끌어내리고, 짓밟거나 추방하고, 편들었다 적이 되고, 사안 따라 뭉치고 흩어지고…. ‘이 정도면 국민이 믿겠지, 욕은 안 하겠지, 이 정도로 빌면 이번에 표는 주겠지’라는 생각으로 ‘정치’를 수행하는 정치인, 정당, 정권의 모습은 우리에게 너무나도 흔하고 낯익은 풍경이지 않은가? 그런데 우리는 자꾸 까먹는다. ‘어떻게 해야 우리나라를 더 발전시킬 수 있을까? 좋은 안을 낼까?’라는 고민으로 ‘정치’를 대하는 진심을 본 지 너무 오래되어서 그런가? 혹은 그런 진심을 본적이 없었던가?
그렇다면 디자인은 다행이다. 그래도 ‘진심의 디자인’을 업으로 삼고, 오늘도 문제를 해결하는 방법을 찾는 진짜 고수들이 제법 많은 세상이 디자인계이기 때문이다. 어제보다 나은 오늘이 아닐지라도, 어제보다 나은 내일을 기대하는 이유다. 필자 역시 디자인으로 허세나 부리는 하수 중의 하수지만 말이다.
정연우 UNIST 교수 디자인 및 인간공학부
<본 칼럼은 2016년 4월 14일 경상일보 18면에 ‘[경상시론]진심의 정치, 진심의 디자인’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