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초와 3년. 2017년 처음 보도된 UNIST 연구 성과에 관한 시간이다. KBS 뉴스에 20초 소개된 이 연구는 3년이 걸렸다. 그 긴 시간을 꼬박 같은 주제에 매달리기란 말처럼 쉽지 않다. 짧게 흘려보내기엔 아까운 사연이 많아 저자인 이지영 대학원생에게 글을 부탁했다. 하나부터 열까지 모든 작업을 혼자서 해낸 장한 UNISTAR가 차근차근 걸어온 길을 들여다보자. <편집자 주>
고등학생 시절부터 화학과 생물학이 흥미로웠다. 특히 새로운 물질을 개발하는 기술에 관심이 많았다. 누군가 필자가 만든 물질을 유용하게 쓰는 모습을 본다면 이루 말할 수 없이 뿌듯할 것 같았다. 이런 막연한 꿈을 구체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첫 선택이 UNIST 진학이었다.
솔직히 UNIST를 고른 표면적인 이유는 입학과 동시에 지원되는 장학금이었다. 그런데 장학금보다 더 큰 매력은 바로 ‘융합전공’으로 공부할 수 있다는 점이었다. 화학과 생물학 중 어느 하나도 포기할 수 없었던 필자에게 두 가지 전공을 의무적으로 이수하는 UNIST는 최적의 대학교였다.
2학년부터 화학공학과 생물공학, 두 전공의 수업을 모두 들었다. 또 여러 연구실을 찾아 학부생 인턴십을 경험했다. 이 과정을 거치면서 ‘원하는 물질을 만들려면 원자나 분자 단위의 이해가 먼저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다. 이 분야의 전문가인 화학과 최원영 교수님이 꾸린 지속가능미래 연구실을 찾았고, 졸업하면서 화학과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구멍 송송 뚫린 나노 물질의 합성법 찾다
필자가 속한 연구실에서는 주로 ‘금속-유기 골격체’라는 다공성 물질을 합성하고 그 구조를 분석한 다음, 이 물질의 응용 분야를 찾는다. 연구를 통해 우리가 원하는 형태의 구멍이나 표면적을 갖는 구조로 설계하고, 거기에 알맞은 금속과 유기물질 종류를 선택해 합성할 수 있다. 이런 특성 덕분에 이산화탄소 같은 기체를 붙잡고 저장하는 그릇으로 쓰거나, 화학반응을 돕는 촉매, 약물을 전달하는 도구 등 다양한 영역에 활용할 수 있다.
연구실에서 필자가 처음 맡은 프로젝트는 ‘0차원 물질인 금속-유기 다면체에서 3차원 물질인 금속-유기 골격체의 구조적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이었다. 새로운 합성법을 생각하고, 찾아내는 걸 좋아하는 필자에게는 이런저런 시도를 하는 과정 자체가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동료 연구원도 없이 3년간 같은 주제를 파고들게 됐다.
그 결과 다양한 형태의 다공성 물질을 손쉽게 만드는 새로운 합성법을 개발했다. 완성된 논문은 세계적인 저널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에 실렸다. 저자 명단에는 최원영 교수님과 곽자훈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님, 두 분의 교신저자와 필자의 이름이 실렸다. 필자는 제1저자이자 교신저자를 제외한 유일한 연구자였다.
이 연구를 기획하고, 계획을 세우고, 실험을 진행하던 모든 순간이 뜻 깊었다. 새로운 구조를 합성한 순간, 처음에 세운 목표를 성공했던 순간, 더 나아가 새로운 아이디어를 도출한 순간, 그 아이디어가 실험적으로 구현된 순간들 모든 경험이 지금도 생생하게 떠오른다. 이렇게 쌓인 값진 경험들은 앞으로도 즐겁게 연구할 수 있는 든든한 밑바탕이 되리라 믿는다.
새로운 시작, 도전은 끝나지 않는다
사실 대학원 초반에는 물질 합성부터 구조 분석을 위한 장비와 프로그램을 배우는 과정이 낯설었고, 배워야 할 것도 많았다. 모두가 서툴렀기에 연구실 동료끼리 더 크게 응원했고, 각자의 연구 목표를 꾸준히 이어나갔다. 그러니 필자의 이번 논문에도 동료들이 숨은 조력자로 참여한 셈이다.
석・박사통합과정에서 필자는 원자와 분자의 세계를 이해하고 공부해왔다. 앞으로는 박사 후 연구원이 되면 실생활에 쓰일 수 있는 촉매와 약물 전달에 쓰일 신물질을 만들어 내고 싶다. 막연하기만 했던 필자의 꿈이 조금씩, 천천히 이뤄지는 걸 보면 가슴이 뛴다.
이런 감동을 느껴보고 싶다면 UNIST를 추천한다. 이곳은 마음만 먹으면 하고 싶은 연구를 원 없이 할 수 있는 연구자들의 천국이기 때문이다.
글 이지영 자연과학부 석ㆍ박사통합과정
이지영 학생은 2009년 UNIST 개교 멤버다. 학부 전공으로 화학공학과 생물공학을 융합해 이수하고, 자연과학부 화학과로 진학했다. 소속은 학부 4학년부터 몸담았던 최원영 자연과학부 교수의 지속가능미래 연구실(Laboratory of Sustainable Future)이다. 새로운 물질을 만드는 데 관심이 많고, 자신이 개발한 물질이 사람들에게 유용하게 쓰이길 꿈꾸는 연구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