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연구진이 다운증후군에서 지적장애를 일으키는 요인 유전자와 그 작동 원리를 세계 최초로 규명했다. UNIST 생명과학부 민경태 교수팀이 그 주인공. 다운증후군의 지적 장애 치료제 개발에 희망을 안겨준 민 교수를 만났다.
오늘날 만연한 심혈관계질환이나 암, 알츠하이머병에는 유전적 요인이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그런데도 발병 위험성이 높다는 뜻이지 특정 유전형일 때 100% 병에 걸리는 것은 아니다. 반면 몇몇 질환은 유전의 영향력이 절대적이다. 다운증후군이 대표적인 예다.
다운증후군은 개별 유전자의 변이가 아니라 감수분열 오류로 21번 염색체를 세 개 지닌 수정란이 발생했을 때 보이는 증상이다. 특징적인 얼굴 생김새와 작은 키, 면역 결함, 지적 장애 등이 나타난다. 이 경우 특정 유전자의 돌연변이가 아니라 21번 염색체에 있는 유전자의 산물, 즉 단백질의 양이 정상보다 많아(단순 비례일 경우 1.5배) 일어나는 현상으로 추정됐다. 그러나 21번 염색체에 있는 200개가 넘는 유전자 가운데 정확히 어떤 유전자가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지는 미스터리였다.
민경태 교수는 2000년대 초 미국립과학원(NIH)에 있을 때 초파리를 동물 모델로 써서 다운증후군의 지적 장애를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아냈다. 최근에는 생쥐의 해당 유전자가 성체 신경생성에 영향을 미치는 메커니즘을 규명했다.
야구선수에서 과학자로
“비전이 안 보였죠. 당시는 프로야구가 없었거든요.”
인터뷰 시작부터 민 교수의 대답은 예상을 벗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과학자가 되는 게 꿈이었느냐는 질문에 초등학교 4학년부터 중학교 2학년 때까지 야구선수를 했다며 3학년에 올라가며 그만둔 이유를 이렇게 설명했다. 실력이 없어서가 아니라는 말이다. 초등학교 때는 리틀야구 국가대표로 외국에 나가 경기를 하기도 했다. 그의 포지션은 유격수였다. 만일 프로야구가 1982년보다 몇 년 앞서 출범했다면 현재 민 교수의 직업은 야구 감독 아닐까.
당시 중고교 운동부 선수들은 수업을 제대로 듣지 않았다. 중학생 민경태도 4교시가 끝나면 교실을 빠져나왔다. 그런데도 공부는 꽤 잘했다. 필기한 노트를 빌려준 마음 좋은 짝을 만난 덕도 있다. 고등학교에서는 우등생이 됐고 특히 영어, 수학을 잘했다.
1979년 대입제도는 예비고사(국,영,수 외의 다른 과목들, 객관식 시험)와 본고사(영어, 수학, 국어 시험, 주관식)로 구성되었다. 하지만 다른 과목들에 별 관심이 없었던 그는 전기에 낙방했고, 후기로 한양대 이과에 들어갔다. 의욕이 없다 보니 수업도 빼먹고 성적은 바닥이었다. 결국 2학년에 올라가 학과를 정할 때 1지망(물리학과)은 물론 2지망(화학과)도 안 됐고 별생각 없이 쓴 3지망 생물학과로 정해졌다.
“그때만 해도 생물학은 인기가 없었어요. 그런데 3학년 때부터 유전공학 붐이 일더군요. 뜻밖에 무척 재밌었습니다.”
떠오르는 학문이 마치 자신을 위해 준비된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은 민경태는 유전공학자가 되는 꿈을 키웠고, 졸업 뒤 카이스트 대학원으로 진학했다.
“당시 카이스트는 국내 최고 대학원이었지만 외국에 비하면 연구기반이 약했죠. 그래도 최대한 아이디어를 내서 열심히 실험했습니다.”
그는 전령RNA의 염기에 임의의 돌연변이를 일으켜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이 인식하는 서열을 찾는 연구를 진행했다. 그 결과는 학술지 ‘핵산연구(NAR)’에 실렸다. 당시 우리나라에서 석사과정 학생의 연구결과가 이런 저명한 학술지에 실리는 건 드문 일이었다.
졸업 뒤 3년 동안 KIST에서 근무하고 1990년 영국 옥스퍼드대로 유학을 떠났다. 이미 5년의 연구경력이 있는 민경태는 지도교수가 건넨 과제를 반년 만에 끝내고 박테리아인 바실러스의 포자 형성에 관한 분자생물학 연구를 해보겠다고 제안했다. 특정 유전자의 인산화가 포자를 만드는 타이밍을 결정함을 밝힌 그의 연구결과는 저명한 학술지 ‘셀’에 실렸다.
전설적인 노과학자와 7년 함께 해
불과 3년 만에 학위를 받은 민경태 박사는 미국 칼텍의 시모어 벤저 교수 실험실에서 박사후 연구원 생활을 했다. 1971년 대학원생 로널드 코놉카와 함께 초파리에서 일주리듬 유전자를 발견해 생체시계 분야를 연 벤저 교수는 학계에서 전설적인 존재로 칠순이 넘은 나이였지만 여전히 호기심이 왕성한 타고난 과학자였다.
“돌이켜보면 이때가 제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시기였습니다. 벤저 교수님을 보면서 과학자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배웠습니다.”
미생물(박테리아)에서 동물(초파리)로 연구 대상을 바꾸면서 처음에는 마음고생을 했다. 벤저 교수와는 6개월 동안 대화도 하지 못했다. 딱히 할 말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곧 적응했고 당시 막 시작되던 뇌과학에 관심이 컸던 민 박사는 돌연변이 초파리 가운데 뇌 손상이 보이는 돌연변이 개체를 찾았다. 그 결과 사람으로 치면 크로이츠펠트야콥병에 해당하는 신경질환을 보이는 초파리를 얻었고 변이 유전자를 규명했다.
이어서 사람에서 치명적인 유전성 대사질환인 부신백질이영양증에 해당하는 증상을 보이는 돌연변이 초파리를 찾았고 유전자도 규명했다. 1999년 ‘사이언스’에 발표한 논문은 민 박사가 주저자, 벤저 교수가 교신저자로 이름을 올렸다. 두 사람의 공동작품인 셈이다. 두 사람은 벤저 교수가 2007년 86세로 타계할 때까지 친밀한 관계를 이어갔다.
“진화적으로 거리가 먼 초파리를 동물 모델로 써서 사람의 질병을 일으키는 유전자를 찾고 메커니즘을 규명한다는 아이디어는 워낙 파격적이라서 그 당시 학계에서 선뜻 받아들이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사람에서도 해당 유전자가 존재하고 변이가 생겼을 때 비슷한 증상이 나타난다는 게 밝혀지면서 제 연구결과가 점차 인정을 받았죠.”
치료제 개발로 이어지는 연구 하고 싶어
2000년 미국립과학원(NIH)에 자리를 잡은 민 박사는 다운증후군의 분자 차원의 발병 메커니즘이 여전히 밝혀져 있지 않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신생아 700명 가운데 1명이라는, 결코 낮지 않은 빈도로 발생함에도 아직 치료제가 없는 질환임을 생각하면 안타까운 일이었다.
민 박사는 초파리를 모델로 써서 다운증후군의 정신지체 메커니즘을 밝히는 연구에 착수했다. 다운증후군인 태아에서 21번 염색체에 있는 DSCR1 유전자가 과발현된다는 게 알려져 있었지만 이게 정신지체를 유발하는지는 불확실했다. 민 박사팀은 초파리에서 DSCR1에 해당하는 네불라(nebula) 유전자가 과발현됐을 때 학습과 기억에 문제가 생긴다는 사실을 밝혀 사람에서도 DSCR1 유전자의 과발현이 중요한 역할을 함을 시사했다.
2007년 인디애나대로 옮긴 민 교수는 초파리를 모델로 다운증후군을 비롯한 여러 신경질환 연구를 계속했다. 그리고 사람에 좀 더 가까운 생쥐를 동물 모델로 하는 연구로 옮겨갔다. 2012년 민 교수는 23년 가까운 외국생활을 접고 신생 대학이지만 발전 가능성이 큰 UNIST를 선택했다.
“나이가 들면서 제가 시모어 벤저 같은 대가를 만나 배웠듯이 한국 학생들에게 과학 하는 재미를 알려주고 싶다는 열망이 생기더군요.”
민 교수는 UNIST에서 본격적으로 생쥐를 동물 모델로 해서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이 가운데 지난 6월 ‘엠보 저널’에 발표된 다운증후군과 관련된 연구결과를 좀 더 자세히 들여다보자. 다운증후군 환자처럼 다운증후군 모델 생쥐는 기억과 학습 수행 능력이 떨어진다. 뇌에서 기억에 관여하는 해마를 들여다본 결과 성체 신경생성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동물 모델에서 해마의 성체 신경생성에 결함이 있으면 정신분열증과 알츠하이머병, 다운증후군 등 신경계 관련 질환이 발생한다.
이번에 민 교수팀은 다운증후군 모델 생쥐에서 DSCR1 단백질의 양을 유전학적 방법으로 정상으로 돌리자, 생쥐의 기억 학습 수행 능력뿐 아니라 성체 신경 발생도 정상으로 돌아왔다. 또한 이들은 DSCR1 단백질이 정상보다 많으면 신경생성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는 구체적인 메커니즘을 밝혔다. 즉 DSCR1 단백질은 신경생성에 관여하는 TET1 유전자의 발현을 억제하는데, DSCR1 단백질이 과도하면 억제가 지나쳐 신경생성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았다. 간섭RNA기술로 DSCR1 유전자 발현을 낮춰 단백질 농도를 정상 수준으로 낮추자 신경생성 결함이 사라졌다.
민 교수는 이번 연구결과가 치료제 개발로 이어져 다운증후군 환자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기를 희망했다. 앞으로 다른 신경계 질환 관련 연구도 가능한 사람에게 적용할 수 있게 실험을 설계할 계획이다.
무슨 분야든지 오래 하다 보면 초심을 잃고 염불보다 잿밥에 관심이 더 가게 되기 쉽다. 과학의 경우 유명한 학술지에 논문을 게재하는 게 목표가 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호기심에 이끌려 평생을 산 벤저 교수의 영향 때문인지 민 교수는 여전히 초심을 유지하고 있다.
“과학 연구에서는 좋은 질문만 가지면 누구에게나 발견의 기회가 있죠. 세계에서 나만 알고 있는 퍼즐을 푸는 것이라고 할까요”
그가 유학을 떠나던 한 세대 전과는 달리 오늘날 우리나라는 잘 사는 어떤 나라에도 뒤지지 않는 연구 인프라를 갖추고 있다. 굳이 먼 곳으로 유학을 떠나지 않아도 열정만 있으면 좋은 환경에서 연구를 마음껏 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의 실험실에도 대학원생들이 열심히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가정을 세우고 실험으로 확인하는 과정이 너무 재미있습니다. 이런 과학 하는 맛을 학생들도 함께 음미하면 좋겠습니다.”
글_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며 <강석기의 과학카페>,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를 저술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