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재 동문은 MBC 드라마PD이다. UNIST 동문의 방송계 진출도 극히 드문 일이지만 MBC에서도 공채로 입사한 공대 출신 드라마PD는 김영재 동문이 최초이다. 그는 학창시절 연극, 마케팅, 창업 등 다양한 일을 경험했다. 김영재 동문의 갈지(之)자 행보는 ‘진짜 하고 싶은 일’을 찾아가는 여정이었고, 지금은 드라마 만드는 일에 푹 빠져있다.
문과생이 UNIST에 입학한 이유부터 물었더니 “수능성적에 맞추었다”라는 싱거운 대답이 돌아왔다.
“성적이 만족스럽지 않아 선택의 폭이 그리 넓지 않았죠. 그런데 우리 학교는 1학년 자율전공이라 나중에 전공을 선택할 수 있겠다 싶었어요.”
동기들과 달리 콕 집어 ‘무엇이 되겠다’는 목표는 없었지만 8년 내내 새로운 것에 도전하며 보냈다. 학창시절 꾸준히 활동한 것은 연극이 유일했다.
“연극은 공부보다 더 열심히 했어요. 밤늦게까지 연극 연습하고 새벽에 뒤풀이하고 아침에야 기숙사에 돌아와 잠들면 다시 연극 연습할 시간에 맞춰 일어났어요.”
연극에 빠져 공부에는 통 재미를 붙이지 못했던 김영재 동문은 C를 간신히 넘기는 학점을 받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고 한다.
새로운 도전으로 가득했던 학창시절
김영재 동문은 UNIST 2기이다. 2010년 입학한 그는 휴학과 복학을 반복한 끝에 8년 만의 졸업했다. 남들보다 긴 대학생활을 한 덕분에 경험한 일도 참 많았다.
제대 후에는 공부하겠다고 마음을 다잡고 교수님 연구실에 들어간 적도 있었다. 그러다가 다시 휴학하고 외국계 양주회사에 취직했다. 브랜드이미지 마케팅을 해보고 싶었으나 한계에 부딪혀 결국 그만두고 다시 학교로 돌아왔다. 졸업을 한 학기 남겨놓고는 창업을 위해 또다시 휴학했다. 인디뮤지션 매니지먼트 플랫폼 서비스 회사를 1년간 운영했지만, 한 달 수익이 10만 원을 넘지 못해서 접었다. 김영재 동문은 무엇이든 시작할 때는 열정을 다하지만 떠날 때는 미련을 두지 않았다고 한다.
일찍 졸업한 여자 동기들은 벌써 대리를 달았다는 소식이 들려왔지만, 그는 재미있는 일을 찾아다녔다. 졸업을 앞두고도 취업 준비 대신 연극 대본 쓰기에 도전했다.
“저 나름대로는 진로에 대한 고민이 컸어요. 생각도 정리할 겸, 제가 살았던 도시들을 되짚어보는 여행을 시작했어요. 아버지가 군인이라 제주도를 비롯해 전국 각지로 이사 다녔거든요. 여행하며 학창시절 좌충우돌했던 도전들의 교집합이 무엇이었는지 깊이 생각하게 되었어요.”
연극, 마케팅, 뮤직플랫폼, 대본에 대한 도전은 언뜻 맥락이 없어 보였지만 분명한 교집합이 있었다. 그가 궁극적으로 하고 싶은 건 사람들에게 메시지를 전달하는 일임을 깨닫게 된 것이다. 그런 일을 하기에 가장 최적화된 곳이 바로 방송국이었다.
사장님, 왜 저를 뽑으셨나요?
김영재 동문은 MBC가 5년 만에 실시한 신입사원 공개채용에서 드라마 부문 PD로 합격했다. 2016년부터 졸업생을 배출한 UNIST에서 방송계 진출은 극히 드문 사례. 게다가 MBC 공채 사상 공대 출신의 드라마PD는 김영재 동문이 최초이다.
“신입생 연수 기간에 연수원에서 사장님과 술을 마신 적이 있습니다. 그때 왜 저를 뽑았느냐 물어보았어요. 사장님이 웃으면서 ‘요즘 다른 방송국에서는 공대 출신 드라마 PD들이 잘한다는데 MBC도 그런 PD 한 명쯤 있어야 할 것 같아서 뽑았다’고 하시더군요. 저에게 속으신 것 같아요. 제가 엄밀히 말하면 경영학도이지 공대생이 아니거든요.”
사장님의 말은 MBC에도 다양한 경험을 가진 드라마PD가 필요하다는 뜻이 아니었을까. 그렇다면 김영재 동문만한 적임자를 찾기도 어려웠을 것이다. 요즘 김영재 동문은 방송 예정인 드라마의 후반부 작업을 하느라 바쁘다고 한다.
“이번 드라마에 UNIST 캠퍼스가 배경으로 등장해요. 생명공학연구소 장면이 있어서 무작정 학교 홍보실에 연락했는데 고맙게도 적극적으로 촬영에 도움을 주셨어요. 덕분에 연구소 장면이 아주 마음에 들게 나왔어요.”
실패를 두려워 말고, 일단 도전해보자
김영재 동문은 최근 UNIST의 위상이 확 달라진 것을 느끼고 있다고 한다. 학창시절 양주회사에 입사했을 때만 해도 출신 대학을 묻는 사람들에게 UNIST가 어떤 대학인지를 장황하게 설명했다고 한다. 하지만 요즘은 UNIST 출신이라고 하면 ‘아, UNIST 출신이구나. 어쩐지’라는 반응을 보인다고.
“그동안 누군가에게 본보기가 될 만한 삶을 살았다고 말하기는 힘들어요. 그냥 마음 내키는 대로 살아왔거든요. 전공을 살리는 대신 새로운 분야를 개척하고 싶다는 후배들에게 종종 연락이 옵니다. 그럴 때마다 ‘하고 싶으면 일단 도전하고 보자. 안 될 것까지 미리 고민하지 말자’라고 합니다.”
20대에는 진짜 원하는 일이 무엇인지 몰라 방황한 시간이 유난히 길었다는 김영재 동문. 하지만 돌아보면 어느 순간도 쓸모없는 시간은 없었다고 말한다. 수많은 샛길로 빠지며 도전하고 부딪친 경험이 큰 자산이 되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