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 이후 이효정 동문은 새벽 3~4시에 퇴근하는 일이 다반사다.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부산의료수학센터에서 감염병 확산을 예측하고 정책을 분석하는 일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의료수학’이라는 색다른 분야에서 맹활약 중인 이효정 동문이 소중한 시간을 내주었다.
지난 2월 말, 글로벌 투자회사 JP모건은 한국의 코로나19 확진자 수가 3월 20일쯤 1만 명에 이를 것으로 예측했다. 이러한 예측은 수학적 모델링 기법에 근거한 것으로, 감염병 확산 예측모델을 이용하면 다양한 환경과 조건에서 감염병이 언제, 얼마나, 어떻게 확산할지 추정할 수 있다. 지난 4월 문을 연 국가수리과학연구소 부산의료수학센터의 센터장을 맡고있는 이효정 동문도 개소하자마자 수학적 모델과 통계 시뮬레이션으로 코로나19 확산을 예측하고, 쇄도하는 미디어 인터뷰에 응하느라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다.
“확진일, 증상 발현일, 접촉일, 격리일, 접촉 가능자 수 등 다양한 데이터를 통해 기초 감염 재생산 지수를 구하면 코로나19의 전파 속도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이를 근거로 관련 부처에서 정책을 수립하는 거죠.”
지난 4월 초 이효정 동문의 KBS와의 인터뷰를 보면 당시 수도권 지역의 환자 수는 900명, 향후 해외유입 환자를 차단하고 자가격리를 잘 지켜 집단 발생이 발발하지 않을 경우 5월 말 1,200명, 그렇지 않을 경우 2,000명까지 증가할 것으로 예측했다. 실제 환자 수를 살펴보면 이태원 클럽발 확대로 5월 31일 1,907명을 기록했으니 오차범위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은 셈이다. 긴급 시에는 이틀에 한 번꼴로 범부처감염병관리사업지원단 회의에 참석했다는 이효정 동문. 건강에 이상은 없는지 물으니 다행히 체력은 타고났다고 한다.
누구도 막을 수 없는 불도저급 열정
타고난 것은 체력만이 아니다. 열정과 추진력, 그리고 도전정신은 우주 최강이다. 2011년 학부보다 앞서 대학원 신입생을 받은 UNIST 수리과학과의 1호 대학원생이었던 이 동문은 졸업 후 수학도와 전혀 관련이 없어 보이는 일본홋카이도대학 의과대학의 박사후과정 연구원에 유례없이 자원하고, 그곳에서 1년 후 이례적으로 조교수로 임명됐다. 그리고 2019년 10월 국가수리과학연구소의 선임연구원으로 자리를 옮긴 지 3개월 만에 부산의료수학센터의 센터장으로 전격 발탁됐다.
이 동문의 이력서에는 이렇게 ‘유례없는’, ‘이례적인’, ‘전격’이라는 수식어가 따라붙는다. 아무도 걷지 않은 길에 길을 내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길목마다 이 동문의 열정에 감흥을 받아 기꺼이 그 길을 열어주고 있다.
UNIST에 입학했을 때만 해도 그렇다. 당시 응용수학 분야에서는 금융수학이 한창 유행이었다. 하지만 수학과 생물학을 좋아하는 이 동문은 ‘생물수학(Biomathematics)’라는 분야에 눈을 뜨게 됐다. 미국에서는 인기가 많았지만 아직 국내에서는 생소한 분야였다. 그러던 중 이창형 자연과학부 교수가 감염병 수리 모형 연구를 한다는 말에 무조건 UNIST에 지원했다. 입학 후에는 처음 접하는 컴퓨터 프로그래밍 수업에 애를 많이 먹었지만 주눅 들지 않고 오히려 조금만 기다려줄 것을 요청했다.
“그때 교수님께 6개월만 기다려달라고 했죠. 어떻게든 해내겠다고요. 자체 동기부여 능력이 뛰어난 편이거든요.”
일본 홋카이도대학 의과대학에 지원해 주변을 놀라게 했던 이야기를 들으면, 그 속에 담긴 그녀의 열정을 느낄 수 있다. 대학원 시절 꾸준히 국제학회에 참여했던 이 동문은 현재 일본 후생노동성 산하 집단감염대책반 일원인 일본홋카이도대학의 히로시 니시우라 교수의 여름학교에 10일간 참여한 적이 있다. 일본 최고의 역학학자로 꼽히는 히로시 니시우라 교수의 강의를 들으며 이번에는 히로시 니시우라 교수 연구실의 연구원이 되는 길을 정 조준했다.
“일본어는 한 마디도 못하면서 무조건 교수님의 랩에 들어가고 싶다고 했죠. 저의 열정이 마음에 드셨는지 영어로 소통하면 되니까 일본어는 못해도 된다고 하셨어요. 그렇지만 전 혼자 매일 밤 일본어도 열심히 공부했습니다. 당시 주변에서는 수학자가 웬 의과대학이냐며 우려도 많았는데 문을 두드려보니 오히려 반겨주더군요. 알고 보면 수학자들을 필요로 하는 곳은 많습니다.”
수학도들의 희망 아이콘
이효정 동문의 마지막 발언은 이 땅의 수학도들에게 용기를 북돋워 줄만 하다. 사실 이 동문도 수학을 좋아해 전공했지만 사회에 어떻게 쓰일 수 있을지 진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UNIST에 진학해 가장 좋았던 점은 국내외 학회나 세미나에 참석하며 다양한 경험을 쌓고, 여러 기관들과 협업할 기회가 많아 수학이 우리 사회에 어떻게 활용될 수 있는지 수학의 가능성을 확인할 수 있었던 점입니다. 그 결과 수학으로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갖게 됐죠.”
하지만 사회가 알아서 수학자들을 받아주는 것은 아니다. 적극적으로 수학의 쓰임새를 발굴하고 스스로 효용성을 입증해야 한다. 여태껏 이 동문이 걸어온 길처럼 말이다. 부산 및 동남권의 의료·산업계의 수학적 문제해결과 공동 R&D 수행을 위해 문을 연 부산의료수학센터도 그러한 일을 하는 곳이다.
“사회에 이바지할 방법을 찾아 수학이 많은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요. 자체적으로 전문성을 더욱 연마하는 한편, 병원이나 기업들과 공동 연구를 실시해 성공사례를 많이 만들어 나가겠습니다. 수학이 얼마나 필요한 학문인지 알려야 후배들에게도 많은 기회를 열어줄 수 있겠죠?”
감염병 확산 예측모델을 연구하는 이효정 동문은 이렇듯 스스로 수학의 쓸모를 확산시키는 모델이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