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NIST(총장 조무제)가 행정고시 기술직(5급 공채) 합격자를 배출했다. 2009년 개교 이래 처음이다. 주인공은 나노생명화학공학부 3학년에 재학 중인 박현철 학생(10학번, 24세)이다.
박현철 학생은 작년 12월 22일 발표된 2014년도 5급(기술) 공무원 공개경쟁채용시험 최종합격자 명단에 이름을 올렸다. 올해 합격자는 전체 92명이며, 박 씨가 응시한 공업(화공) 분야 합격자는 7명이다.
박 씨는 내년 2월 졸업한 뒤 4월경부터 공무원연수원에 들어가 교육을 받게 된다. 그는 “앞으로 과학기술의 성장 동력을 높일 수 있는 정책을 고민하고 미래산업을 중점적으로 다룰 수 있는 분야에서 일하고 싶다”며 “다수가 행복할 수 있는, 그리고 소수도 만족할 수 정책을 펴는 사무관이 되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이어 “UNIST는 기본적으로 우수한 과학기술자를 길러내는 게 목표이지만 이공계 학문을 기반으로 다른 진로를 개척하는 것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며 “과학기술자는 아니더라도 이공계 출신이라는 전문성을 살려 우리나라를 위해 기여할 수 있는 좋은 인재가 되겠다”고 말했다.
다음은 박현철 학생과 일문일답
Q. 행정고시에 합격한 걸 축하드립니다. 간단하게 자기소개를 해주세요.
A. UNIST 나노생명화학공학부에 재학 중인 박현철입니다. 대구 출신이고, 대건고를 졸업했어요. 1990년 2월생이라 원래는 08학번인데 UNIST 입학은 2010년에 했습니다. 서울에 있는 다른 대학교를 다니다가 다시 수능을 봤거든요.
Q. 행정고시에 도전하게 된 계기가 있을까요?
A. 2010년부터 대한적십자사에서 여러 활동을 했습니다. 교내에서 RCY 동아리 봉사부장도 맡았고요. 2011년 1월에는 인도네시아로 해외봉사를 다녀오게 됐는데요. 그 때 보고 들은 게 행정고시에 도전하는 결정적인 계기가 됐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위해 일하면서 세상을 더 나은 곳으로 만드는 직업을 찾다보니 국가직 공무원이 떠올랐거든요.
국가직 공무원은 나라 전반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을 입안하고 행정업무를 보는 만큼 책임감도 크고 중요한 역할이라고 생각합니다. 개인적으로도 돈보다 명예와 보람을 찾을 수 있는 삶을 추구하는데요. 그런 일을 하기 위해 국가 공무원에 도전하기로 마음을 굳혔습니다.
Q. 한국화학공학회에서 주최한 ‘제25회 전국대학생 화학공학 학력 경시대회(이동현상)’에서 금상도 수상했던데, 이것도 행정고시 준비와 관련이 있었나요?
A. 이동현상이 2차 필기시험 과목 중 하나였습니다. 사실 시험은 지난 8월에 이미 치룬 상태였는데요. 혹시 이번에 불합격하면 내년에도 행정고시에 도전해야 하니까 잊지 않으려고 이번 경시대회에 나가게 됐습니다. 에너지 및 화공학부의 백충기 교수님을 찾아가 대회 전반과 출제 경향에 대해 조언도 구했습니다. 금상을 받아서 돌아오니 교수님께서 크게 칭찬해주셨어요.
Q. 행정고시를 준비하는 게 만만치 않다고 알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도전은 언제부터 하게 됐나요?
A. 생명공학자를 목표로 입학했기 때문에 2학년 겨울방학 때는 연구실에 들어가 인턴십 활동도 해봤습니다. 그런데 실험실에서 뭔가에 집중하는 것보다 밖에 나가 사람들을 만나고 누군가를 돕고 그런 일들이 더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진로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어요. 그러다가 행정고시에 도전하기로 마음먹고 행정고시에 지원할 수 있는 자격을 갖추기로 했습니다.
2012년 12월부터 한국사검정능력시험을 치르고, 영어 성적을 만들었습니다. 그리고 2013년 2학기부터는 본격적으로 고시공부에 돌입했어요. 2013년 하반기에는 대구에서 혼자 1차 시험인 공직적성능력평가(PSAT)를 준비했고, 2014년 2월부터 8월까지는 흔히 ‘고시촌’이라고 불리는 서울 신림동에서 생활했습니다.
고시촌에서는 서울대, KAIST 친구들과 함께 스터디 그룹을 만들어서 함께 공부했어요. 서로 모르는 것들을 물어보고 가르쳐주면서 많이 발전했던 것 같습니다. 아침, 점심, 저녁 시간 동안 각각 4시간씩 공부하는 생활을 4~5개월 정도하고 시험을 치렀습니다. 5명이 함께 공부했는데 그 중에서 저와 KAIST 친구가 합격했습니다.
Q.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을 것 같은데요. 어떻게 이겨냈나요?
A. 공부가 힘들 때마다 5년 후, 10년 후에 나라를 위해 기여할 모습을 상상하면서 힘을 냈습니다. 계획을 세우면 지키려고 노력했습니다.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었고, 제 스스로를 믿었습니다. 누구라도 자신을 믿고 꾸준하게 공부하면 이룰 수 있는 꿈이라고 생각합니다.
혹시 저와 같은 길을 걷고 싶은 친구들이 있다면 ‘이 일이 왜 하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시작했으면 좋겠습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길이 아니라 스스로 정말 하고 싶은 일이라는 확신이 들어야 꾸준히 공부할 수 있습니다.
Q. 어떤 사무관이 되고 싶은가요?
A. 국가직 공무원은 저 하나가 아닌 여러 사람이 함께 잘 사는 길을 고민하다가 도전하게 된 직업입니다. 여러 사람들에게 좋은 정책을 펴고, 더 살기 좋은 환경을 만들고 싶습니다. 다수가 행복할 수 있으면서 소수도 만족할 수 있는 정책을 만들고 싶습니다. 공익을 위하고 국민 삶에 기여했다는 평가를 듣는 사무관이 되겠습니다.
Q. UNIST를 선택한 이유가 무엇인지, 본인에게 UNIST는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A. 원래 생물에 관심이 많아서 그쪽으로 진로를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생명공학자를 꿈꾸는 제게 재수학원 선생님이 UNIST를 추천하셨어요. 대학의 비전도 좋고 장학금도 지원된다는 점이 끌렸습니다. 그런데 막상 대학에서 공부해보니 제게는 생물보다 화학이 더 잘 맞는다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UNIST에서는 두 가지 이상의 전공을 필수적으로 듣도록 하는 ‘융합전공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는데요. 그 덕분에 제게 더 맞는 걸 찾을 수 있게 된 겁니다. 결과적으로 이번 5급 공채 시험에서도 화학 분야에서 배운 것들이 큰 도움이 됐습니다.
UNIST는 훌륭한 과학기술자를 양성하는 게 기본적인 목표입니다. 하지만 과학기술자가 아니라도 과학기술 분야에서 기여할 수 있는 다른 길이 있습니다. 제가 그런 가능성을 보여준 것 같아서 뿌듯한 마음입니다. 앞으로 이공계 전문성을 살려 우리나라 과학기술 분야에 도움이 되는 정책을 펼치고 싶습니다. UNIST의 자랑스러운 동문이 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