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의성에 대한 많은 정의 가운데 ‘가장 창의적인’ 정의는 아마도 ‘근본적으로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라는 표현이 아닐까. 이 정의에 따라 우리나라에서 창의성 하면 떠오르는 과학자가 바로 지난 3월 UNIST 자연과학부에 부임한 김대식 교수다.
‘모난 돌이 정 맞는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남과 다르게 행동하는 걸 금기시한 우리 문화에서 김대식 교수는 잊을 만하면 남다른 행보를 선보여 사람들을 놀라게 한다. 25년의 서울대 교수 자리를 내놓고 UNIST로 옮긴 게 가장 최근의 ‘창의성을 보인 행동’이 아닐까.
“글쎄요. 하나를 오래 하면 ‘이제 그만하고 다른 걸 해보라’는 내면의 목소리가 들립니다. 서울대에 부임한 지 20년 된 2014년부터 교수 자리가 좌불안석이 되더군요.”
사실 김 교수의 삶을 뒤돌아보면 이처럼 ‘할 만큼 했다’는 마음이 생겨 지금까지 해온 생활을 180도 뒤집은 경우가 몇 차례 있었다. 전혀 딴 사람으로 거듭나 인생행로를 바꾼 것이다. 첫 사례는 초등학교를 졸업할 무렵의 대변신이었다.
초등학생 때는 반에서 20등 하는 게 꿈
1963년 태어난 김대식은 보통 말썽꾸러기가 아니어서 싸움을 밥 먹듯이 했다. 그러다 보니 학교 성적은 평범했다. 오죽하면 ‘반에서 10등’을 해보는 게 꿈이었을까.(당시 한 반의 학생 수는 50명이 넘었다) 그런데 학년이 올라갈수록 같이 놀던 친구들이 하나둘 사라졌다. 집을 이사한 게 아니라 중학교를 앞두고 과외를 하느라 놀 시간이 없어진 것이다. 문득 김대식의 머리에 ‘놀 만큼 놀았는데 나도 이제 공부를 좀 해볼까’라는 생각이 떠올랐고, 이때부터 갑자기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새벽까지 공부하며 그동안 뒤처진 진도를 무섭게 따라붙었다.
고등학교에서는 과외를 하지 않았음에도 1등을 해 주위를 놀라게 했다. 결국 1981년 서울대 자연과학대학에 입학했다. 열 살 무렵까지만 그를 본 사람들은 ‘그럴 리가 있나’라며 믿지 못했을 것이다.
중학교 1학년 수학을 공부할 때 ‘1차 방정식’을 이해하지 못해 애를 먹던 김대식. 그러나 고교에서 ‘미적분학’을 배울 때는 너무 재미있어서 금방 정복했다. 전형적인 학생들과는 반대되는 모습이다. 대학 1학년 때 미적분학이 물리학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된 김대식은 2학년에 올라가 학과를 정할 때 물리학과를 선택했고, 졸업할 때까지 즐겁게 공부하며 지냈다. 당시는 한 학기에 일곱 과목을 들을 때도 있었고, 매일 리포트를 내다시피 했음에도 좋았다. 그는 “어릴 때 많이 놀아 에너지가 남아 있었던 것 같다”고 회상했다.
당시 많은 학생처럼 김대식도 졸업 뒤 미국으로 유학을 떠났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에서 생물물리학을 전공했지만, 신경세포막을 조작하는 실험을 하다 보니 ‘전통 물리학’이 너무나 그리웠다. 1년을 버티다 다른 대학 물리학과를 알아보려는데, 물리학과에서 “뭐 그럴 거 있느냐. 과를 옮기면 될 걸”이라며 시원하게 받아줬다.
마침 피코초(피코는 10의 –12승) 레이저 세미나를 듣고 감명을 받았던 김대식은 레이저 실험실에 들어가 펄스의 길이가 이보다 훨씬 짧은 펨토초(펨토는 10의 –15승) 레이저를 직접 만들었다. 이를 이용해 갈륨 반도체에서 전자와 격자의 상호작용을 펨토초 영역에서 볼 수 있는 라만 산란을 측정하는 데 세계 최초로 성공했다. 그 후 뉴저지의 벨연구소에서 박사 수 연구원으로 활동한 후에 김대식은 1994년 불과 31세의 나이로 서울대 교수로 부임할 수 있었다.
서울대에서 펨토초 초고속 현상을 계속 연구하며 <피지컬 리뷰 레터스(Physical Review Letters)>를 비롯해 유수 학술지에 꾸준히 논문을 냈다. 1999년에는 실험실이 국가지정연구실로 선정되는 영광을 누렸다. 그런데 이때부터 슬슬 딴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아직 할 일이 많은 분야였지만, 국가지정연구실이 끝나는 2004년이면 20년 가까이 한 우물을 파게 되는 셈이었다. 그래서 5년에 걸쳐 연구 주제를 바꾸는 작업을 진행했다.
김 교수가 새로 뛰어든 분야는 테라헤르츠(THz)파(이하 테라파)의 나노광학이다. 전자기파의 진동수가 테라헤르츠(THz)이면 파장이 수백 마이크로미터로 가시광선보다 훨씬 길다. 따라서 나노 구조물에 비하면 크기가 수만 배에 이른다. 기존 광학의 관점에서 테라파는 나노 크기의 구멍이 있어도 통과하지 못한다.
그런데 2009년 김 교수팀은 폭이 70㎚에 불과한 슬릿에 파장 0.3㎜인 테라파를 특정 편광 방향(자기장이 슬릿 방향으로 정렬된)으로 보내면 테라파가 슬릿 사이로 집속되면서 매우 잘 투과할 수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 연구 결과는 학술지 <네이처 포토닉스(Nature Photonics)>에 실려 큰 화제가 됐다. 나노 슬릿이 안테나 역할을 해 테라파가 모일 수 있었던 것이다.
2015년에는 학술지 <피지컬 리뷰 레터스>에 나노미터의 10분의 1인 옹스트롬 간격의 틈에 테라파를 보낼 때 일어나는 전자의 양자 터널링 현상을 발표했다. 두 금속(구리)판을 좁은 간격으로 안정적으로 배치하는 것이 불가능한데, 연구자들은 그 사이에 탄소 원자 한 층으로 된 그래핀을 끼워 넣는 아이디어를 냈다. 두 금속판 사이에 전자가 거의 흐르지 않지만 테라파를 보내면 두 층의 전압이 벌어져 전자가 쉽게 이동하게 된다.
포경수술 반대해 인권상도 받아
세계 유수 학술지에 수준 높은 논문을 많이 발표한 정통 물리학자임에도 김 교수는 종종 ‘괴짜 물리학자’로 불린다. 그가 이런 이미지를 갖게 된 건 한동안 포경수술 반대 운동을 주도했고 지금도 계속하고 있기 때문이다. ‘물리학자가 무슨 포경수술을?’ 이 얘기를 들으면 누구나 고개를 갸웃하고, 그것도 반대했다니 더 궁금하다.
김 교수는 포경수술이야말로 미국이 하면 따라 하는 ‘묻지 마 정책’의 대표적인 폐해라고 지적한다. 주변을 봐도 우리나라와 필리핀 등 몇몇 나라를 빼면 포경수술을 하는 비율이 5% 내외다. 한국전쟁으로 미군들이 들어오면서 ‘위생적’이라며 포경수술을 권했고, 이를 따르다 보니 어느새 세계 최고의 포경수술 국가가 됐다. 다행히 김 교수와 중앙대 교수 방명걸 씨, 성 교육자 구성애 씨 등의 노력으로 최근 우리나라 청소년의 포경수술 비율이 급감하고 있다. 이 공로로 김 교수와 방명걸 교수는 지난 2000년 유엔 산하 비정부기구인 국제포경수술교육센터로부터 국제 인권상을 받기도 했다.
한국 노벨과학상 수상에 대해서도 김 교수는 독특한 관점을 제시한다. 외국에 유학 가서 공부하고 그곳에 자리 잡아 연구한 결과로 노벨상을 받을 경우(아직 그런 경우는 없지만) 한국인이 받은 것일 뿐 한국의 노벨상은 아니라는 게 그의 입장이다. 즉 이 땅에서 연구해서 노벨상을 받는 게 진정한 한국의 노벨상이라는 것. 일본의 노벨과학상 수상자 역시 대다수가 일본에서 독창적인 연구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런 면에서 우리나라는 이제 더는 유학할 필요가 없음에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유학을 떠난다. 다행히 국내 박사에 대한 인식이 높아져 최근에는 임용 교수의 80%가 국내 박사다. 이들 가운데 미래의 노벨상 수상자가 나올지 궁금하다.
남은 경력은 응용 연구에 바칠 것
올해 UNIST로 자리를 옮긴 김 교수는 4월 설립한 ‘양자 포토닉스 연구소’ 소장으로 취임했다. 동료 교수 18명이 참여한 이 연구소는 나노 광학 현상의 실생활 응용을 주된 목표로 한다. 김 교수는 석좌교수로 정년을 5년 연장할 수 있어 앞으로 15년은 더 연구에 매진할 수 있다. 그런데 어려운 기초 연구 대신 앞으로는 쉬운 응용 연구의 길을 가려는 걸까.
“전혀 그렇지 않습니다. 사실 기초 연구보다 응용 연구가 더 어려워요. 기초는 원리만 보여주면 되지만, 응용은 결과가 명백하니까요. 실패도 그대로 드러나죠.”
김 교수는 어느 날 ‘네가 어려워서 (응용 연구를) 안 한 거지’라는 내면의 목소리를 듣고 정신이 번쩍 들었다고 한다. 그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잘할 수 있는 건 상당한 손재주가 필요한 분야라고 확신한다. 2000년대 이후 한국 반도체 기업의 독주가 계속되는 건 이유가 있다는 말이다. 나노광학 역시 고도의 정밀함이 필요한 분야다. 김 교수팀은 심지어 옹스트롱 거리의 틈을 유지하는 시료를 만들고 여기에 정확히 빛을 쪼여 나타나는 현상을 관찰하는 데 성공하지 않았는가. 그렇다면 나노광학 응용 연구란 어떤 걸까. 김 교수는 원적외선 검출기를 예로 들었다. 현재 열화상 카메라는 화면이 흐릿한데 이는 광자가 적기 때문이다. 여기에 나노 구조로 집속력을 높이면 감도 및 해상도는 훨씬 높아질 것이다.
아직 실험 설비가 들어오지 않아서 텅 비어 있는 600m² 넓이의 실험실은 교수 다섯 명이 공동으로 운영할 계획이다. 역시 파격적인 방식이다. 나이 쉰을 훌쩍 뛰어넘어서도 여전히 ‘남과 다를 수 있는 용기’를 지닌 김대식 교수야말로 ‘창의성이 탁월한 괴짜 물리학자’가 아닐까.
글_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서울대 화학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하고 LG생활건강연구소에서 연구원으로 근무했으며, 2000년부터 2012년까지 <동아사이언스>에서 기자로 일했다. 2012년 9월부터 프리랜서 작가로 지내며 <강석기의 과학카페>, <늑대는 어떻게 개가 되었나>를 저술했으며, 옮긴 책으로는 <반물질>, <가슴이야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