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백질 덩어리인 효소의 활성이 내부 금속이온의 종류별로 달라지는 원인이 밝혀졌다. 효소 속에 미량 포함된 금속이온이 결합의 입체적 구조를 바꿔 효소 활성도를 조절하는 것이다. 이번 연구로 효소의 활성도를 조절하는 방식의 신약 개발이나 금속이온과 단백질간의 상관관계를 밝히는 연구에 큰 진전이 기대된다.
UNIST(총장 이용훈) 물리학과의 김철민·김채운 교수 연구팀은 탄산탈수효소 활성부위의 3차원 구조변화를 추적해 효소 속 금속이온(금속 보조인자)이 효소 반응을 조절하는 새로운 매커니즘을 제시했다. 탈산탈수효소는 이산화탄소(반응물)를 혈액에 잘 녹는 탄산형태(생성물)로 바꾸는 것을 돕는 효소다. 자연 상태에서 이 효소는 아연 이온(Zn2+)을 포함하고 있다. 이 아연 이온을 유사한 화학적 성질을 갖는 다른 금속이온으로 바꾸면 효소의 성능(활성)이 급격히 떨어지는 현상이 발생하는데, 이번 연구로 그 이유를 설명할 수 있게 됐다.
김채운 교수는 “효소 내에 미량 포함된 금속 이온이 광범위하고 섬세한 작용을 통해 효소 활동을 총괄하는 지휘자 역할을 한다는 것을 알아낸 것이 이번 연구의 의의”라고 전했다.
이번 연구를 통해 금속 이온 주위의 ‘입체적 기하구조’(배위결합 기하구조)가 효소의 활성 정도를 결정한다는 사실을 밝혔다. 이 입체적 구조는 크게 두 가지 방식으로 효소 활성을 조절한다. 하나는 입체적 구조가 반응물(이산화탄소)이 효소에 달라붙고 생성물(탄산)이 효소에서 떨어지는 비율(속도)을 결정하는 방식이다. 반응물이 효소 활성 부위 잘 달라붙고 생성물은 잘 떨어져야 효소의 활성이 높다. 또 입체구조가 주변 물 분자의 구조와 배치를 섬세하게 조절하는 방식으로도 효소의 활성에 영향을 미친다. 효소 내에 존재하는 물 분자는 반응물을 생성물로 바꾸는 반응에 직접 참여하거나 반응물과 생성물이 지나다니는 통로를 구성하기 때문이다.
연구팀은 ‘고압력 급속 냉각 기법’을 이용해 효소 반응이 일어나는 짧은 순간을 포착할 수 있었다. 이 기법은 김채운 교수팀이 이전 연구에서 개발한 방식이다. 효소에 이산화탄소(반응물) 기체를 주입한 뒤 급격히 냉각시키는 방식으로 반응 순간을 포착한다. 연구팀은 4종류의 금속이온을 갖는 효소, 금속이온이 없는 효소 결정을 이 기법으로 제조하고, X-선 결정학 기법으로 분석해 위와 같은 결론을 도출했다. 제1저자인 김진균 자연과학부 석·박사통합과정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효소 반응의 중간단계를 포착하기 위한 수년 간의 집요한 노력의 결과물”이라고 전했다.
김철민 교수는 “금속이온의 역할을 ‘루이스 산’(Lewis acid)으로 한정하면, ‘원자가 전자수’가 동일한 구리 이온(Cu2+), 코발트 이온(Co2+) 등을 보조인자로 사용했을 때 효소 활성이 떨어지는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며 “이번 연구를 통해 금속 보조인자의 또 다른 역할을 규명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한국연구재단과 삼성미래기술육성재단의 지원을 받아 수행됐으며, 연구 결과는 세계적인 학술지인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즈(Nature Communications)’에 9월 11일자로 발표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