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를 붉게 만드는 헤모글로빈, 스마트폰의 OLED 발광 소재, 플라스틱이나 신약을 만드는 산업용 촉매에는 공통점이 있다. 모두 중앙의 금속 이온을 ‘리간드(ligand)’라 불리는 유기 분자들이 둘러싼 금속-리간드 배위 화합물(metal–ligand coordination complexes) 구조 물질이라는 점이다. 이러한 금속-리간드 배위 화합물 소재 설계의 시행착오를 획기적으로 줄일 수 있는 하이브리드 인공지능 기술이 개발되었다.
화학과 바르토슈 그쥐보프스키 특훈교수팀(IBS 인공지능 및 로봇 기반 합성 연구단 단장)은 복잡한 유기 리간드와 금속 간의 배위 결합 구조를 예측하는 하이브리드 AI 기술을 개발했다.
금속-리간드 배위 화합물에서 금속 이온이 유기 분자와 어떻게 “손을 잡는지”(배위)를 예측하는 일은 숙련된 과학자들에게도 매우 까다로운 과제다. 복잡한 유기 리간드 내에는 금속과 결합 가능한 지점이 여러 곳 존재할 뿐만 아니라, 금속의 종류와 산화 상태에 따라 실제 결합 수와 방식이 크게 달라지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할 수 있는 구조적 조합은 수십에서 수백 가지에 이른다.
연구팀은 컴퓨팅 파워를 높이는 대신, ‘화학자의 직관’을 AI에 주입함으로써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다. 단순한 패턴 인식을 넘어, 고전적인 화학 원리가 신경망에 직접 인코딩된 하이브리드 AI 기술이다.
연구팀은 “Cambridge Structural Database (CSD)의 10만 개 이상의 결정 구조를 처리하여, 기존의 유사 방식들과는 달리 각 금속의 특성과 산화 상태를 ‘이해’하는 머신러닝 모델을 훈련시켰다”고 설명했다.
그쥐보프스키 교수는 “이 기술은 대규모 계산 파이프라인의 핵심 구성 요소가 될 것”이라며, “의약품부터 기능성 소재 제조에 이르기까지 널리 쓰이는 전이 금속 촉매를 설계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활용될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연구팀은 고난도 화학 연구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Python 기반의 오픈소스 패키지인 ‘RDMetallics’와 전용 웹 포털(coordinate.rdmetallics.net)을 함께 공개했다. 이제 전 세계 어디서든 소규모 연구실의 연구자라도 별도의 코딩 경험이나 고가의 연구 장비 없이 브라우저에서 직접 복잡한 배위 모드를 예측할 수 있게 되었다고 설명했다.
이번 연구는 기초과학연구원(IBS)의 지원을 받아 이뤄졌으며, 화학 분야 국제 학술지 ‘앙게반테 케미 인터내셔널 에디션(Angewandte Chemie International Edition)’에 2월 21일 온라인 공개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