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은 그동안 끊임없이 만들고 버리기를 반복했다. 새로운 제품이 나오고 기술이 좋아질수록 인간은 혼자서도 편하게, 최소한만 움직여도 거의 모든 일을 할 수 있게 됐다. 이 세상에서 인간은 갈수록 외부와 단절되며 파편화되고 있다. 이게 과연 인간을 돕는 걸까. 이 흐름에 반기를 든 이들이 있다. 자원과 쓰레기들을 재활용하고, 조금 더 움직이더라도 집단의 행복을 꿈꾸는 사람들이다. 그들의 생각과 연구 이야기를 듣기 위해 UNIST를 찾았다.
UNIST 경영관 앞에는 앙증맞은 육각형 야외실험실이 있다. 사이언스 월든 파빌리온, 혹은 사월당(思越堂)이라 불리는 곳이다. ‘사이언스 월든’은 헨리 데이비드 소로의 저작 『월든』에서 따온 이름이다. 소로의 자연환경주의 사상과 B.F. 스키너의 행동주의 이상향인 『월든 투』의 사상을 이어받겠다는 각오다. 과학기술과 인문, 예술을 뭉쳐 개인의 이기적인 경향이 강해진 사회의 문제를 해결하려는 과학자와 예술가들이 사월당을 중심으로 융합연구를 펼치고 있다.
사월당은 ‘지금은 보이지 않는 저 너머 세상을 꿈꾸는 곳’이란 뜻을 담고 있다. 사월당의 과학자와 예술가들은 저 너머를 꿈꾸기 위해 어떤 작업을 하고 있을까. 그들의 결과물이 모인 사월당으로 당신을 초대한다.
빗물이 깨끗한 물로 재탄생하기까지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는 도시환경공학부 조재원 교수를 필두로 한 연구진과 예술가들이 주도하고 있다. 이 프로젝트의 핵심은 인간이 본성과 이성을 지켜나가려면 환경의 변화가 필요하다는 것. 그들은 환경을 위한 과학기술을 인문학이나 예술작품과 융합한 결과물로 자신들의 꿈을 표현하고 있다. 2015년 9월부터 시작된 프로젝트의 목표는 이곳에서 연구한 다양한 성과가 실제 도시 마을에 적용되는 것이다.
이제 육각형 야외실험실엔 어떤 연구들이 진행 중인지 살펴보자. 사월당 옥상에는 ‘그린 루프(green roof) ’가 있다. 그린 루프는 식물, 토양, 필터, 부직포 등 4개의 층으로 이뤄진 지붕이다. 옥상에서 식물을 길러 수질오염을 줄일 수 있다는 것인데, 어째서 그런 것일까.
일반적으로 옥상에는 어디서 왔는지 모를 ‘비점오염원’이 쌓인다. 이들은 내리는 비에 씻겨 빗물과 함께 하천으로 떠내려가는데, 이 때문에 강의 수질이 나빠지기도 한다. 반면 옥상에 식물을 기르는 옥상녹화 작업을 하면 비점오염원이 쌓일 공간이 좁아진다. 그만큼 수질오염도 줄일 수 있다.
사월당 옥상에는 그린 루프가 있는 곳과 없는 곳에 각각 빗물을 모으는 집수관을 설치했다. 빗물은 두 개의 관을 통해 사월당 안으로 흘러내려간다. 이 빗물을 2층 저장고에 받아뒀다가 수질 차이를 비교하면 그 효과를 확인할 수 있다. 그린 루프 이야기를 더 자세히 들어보기 위해 도시환경공학부 조경화 교수를 찾았다.
“옥상녹화는 저영향개발(Low Impact Development, LID)이라는 기법 중 하나입니다. LID 기법은 토지나 도시를 개발 이전 상태에 최대한 가깝게 만들기 위한 계획이나 개발 기법을 말해요. 예를 들면 아스팔트나 콘크리트처럼 물이 투과하기 어려운 지층(불투수층)을 줄여서 자연에 더 가깝게 살아가자는 취지예요. 옥상녹화는 도시의 열섬 현상을 줄이는 데도 도움이 돼요. 토양이 머금고 있던 물이 대기 중으로 증발하면서 열을 흡수하거든요. 옥상녹화를 통해 주변 온도를 10℃ 정도 낮출 수 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저장해둔 물은 정원을 가꾸거나 세차에 쓰이다가 결국, 식용으로까지 발전하게 될 예정이다.
빗물은 1층에 있는 ‘일체형 여과・소독 빗물정화 장치’에서 재활용된다. 여기서는 빗물을 걸러내면서 소독하는 일체형 수처리 모듈을 사용한다. 이 모듈에는 활성탄에 철과 구리를 붙인 ‘바이메탈(bi-metal) 나노입자’가 활용된다. 원리는 간단하다. 바이메탈 나노입자를 물에 넣기만 하면 된다.
바이메탈 나노입자가 물에 들어가면 철이 물속에 녹아 있던 산소와 반응해 과산화수소로 변한다. 자연스럽게 이 입자에 홀로 남겨진 구리는 박테리아나 바이러스 살균에 효과적이다. 그러니까 이 입자를 물에 넣기만 하면 빗물이 깨끗한 물로 재탄생하는 것이다. 이렇게 만들어진 물은 백색정원 6 과 황금보리 9 같은 식물을 키우는 데 사용된다.
버려진 것들로 바이오에너지를 얻는 과정
사월당 1층에서 다음으로 둘러볼 것은 ‘유기성폐기물 바이오가스화 장치’와 ‘미세조류 배양장치’다. 유기성폐기물은 쉽게 말해 인분이나 음식물쓰레기다. 미생물이 분해시켜서 에너지로 바꿀 수 있는 재료인 것이다. 미생물은 산소가 차단된 통(혐기소화조)에 들어 있는데, 여기에 유기성폐기물을 넣어주면 미생물이 먹고 소화시켜서 메탄가스를 만들 수 있다.
미생물이 사는 공간에서는 미세조류를 기를 양식도 얻을 수 있다. 미생물이 덜 소화시킨 인분이나 음식물쓰레기도 미세조류에겐 좋은 영양분이 되기 때문이다.
유기성폐기물 바이오가스화 장치에서 나온 양분을 먹고 자란 미세조류는 바이오디젤을 만든다. 결국 우리가 버리는 인분과 음식물쓰레기를 미생물과 미세조류에게 먹이로 주면 훌륭한 바이오에너지가 되는 셈이다. 이들 장치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묻기 위해 도시환경공학부 이창수 교수를 찾았다.
“혐기소화조는 말 그대로 산소가 없는 환경을 가진 공간이에요. 미생물 중에는 산소를 싫어하는 녀석들이 있는데요. 이 미생물이 유기성폐기물을 분해합니다.”
혐기소화조 안에 사는 미생물은 종류가 다양하다. 종류에 따라 맡은 역할도 조금씩 다르다. 어떤 미생물은 인분이나 음식물쓰레기를 잘게 부순다. 다른 미생물들이 먹기 좋게 만들어주는 것이다. 발효를 담당하는 미생물은 작아진 먹이를 먹고 유기산을 내놓는다. 그러면 또 다른 미생물이 유기산을 먹고 메탄을 만든다.
이창수 교수는 “이런 다양한 미생물들 덕분에 메탄 같은 바이오에너지를 얻을 수 있다”며 “버려진 것들을 가치 있는 에너지로 만들어주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혐기소화조에서 나오는 물질은 따로 배출시켜 고체로 만든 뒤 비료로 쓰기도 한다. 액체는 미세조류의 밥으로 쓰는데, 이 연구는 도시환경공학부의 김자애 교수가 함께 진행하고 있다.
“미세조류는 크기가 50㎛ 이하인 단세포 조류예요. 이산화탄소와 질소, 인, 빛, 물 등을 먹고 살죠. 지방질을 많이 축적한 미세조류를 잘 짜내면 기름이 나옵니다.”
미세조류에서 짜낸 기름에 화학 처리를 하면, 자동차에 쓰이는 바이오디젤(FAME)을 만들 수도 있다. 바이오디젤을 만들고 나오는 찌꺼기는 다시 혐기소화조에 넣어 재활용 사이클에 들어가게 된다.
유기성폐기물로 만든 바이오가스는 ‘분리막을 이용한 메탄ㆍ이산화탄소 분리장치 2 ’를 거쳐 메탄과 이산화탄소로 분리된다. 이 장치에는 미세한 구멍을 가진 특수한 관이 있어 분리막 역할을 한다. 이 분리막이 두 물질을 갈라주는 핵심 장치다. 여기서 얻은 메탄은 차량 연료에 활용되며, 이산화탄소는 미세조류를 배양하는 데 쓰인다.
바이오가스는 ‘세미클러스레이트(semiclathrate)를 이용한 이산화탄소 포집장치 8 ’에도 활용된다. 세미클러스레이트는 고압ㆍ저온 상태에서 고분자유기물이 물과 결합해 만들어지는 화합물이다. 이 장치를 활용하면 메탄과 바이오가스로 이뤄진 바이오가스에서 이산화탄소를 선택적으로 포집할 수 있다. 더불어 고농도의 메탄도 확보할 수 있다.
인분도 버릴 게 없다?
사월당 1층에는 화장실이 하나 있다. ‘비비(BeeVi) 화장실’이라 불리는데, 벌(bee)과 비전(vision)의 첫 음절을 따 이름 붙였다. 벌이 꿀을 만들 듯 인분을 유익한 에너지로 만들자는 뜻, 화장실이 변하면 세상이 바뀔 수 있다는 비전을 담았다. 여기에는 물을 사용하지 않는 친환경 변기가 있는데, 이를 통해 인분을 가루나 퇴비로 만든다고 조재원 교수는 설명을 덧붙였다.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면 물을 내리죠. 분뇨는 하수처리장으로 보내 처리하고요. 하수처리된 물은 하천과 바다로 향하는데, 이 물은 완전히 복원되지 않기 때문에 환경을 오염시키게 됩니다. 이걸 처리하려면 비용이 들어요. 반면 다른 에너지로 활용하면 그만큼 경제적으로 이득이 되죠.”
비비 화장실에서 배출한 인분은 똥본위화폐(feces standard money)로 활용된다. 기준은 성인의 하루 평균 인분 배출량. 연구팀은 이를 대략 3,000원~3,600원의 가치로 환산했다. 그리고 이 가치를 똥본위화폐 ‘10꿀’에 담았다. ‘쓰레기’나 ‘오물’마저 가치 있는 것으로 바꾸겠다는 의지를 보여준 것이다.
우리 함께 행복하자는 꿈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는 사월당에서 연구 중인 기술을 지역사회에 적용해 긍정적으로 활용될 수 있는지 알아보는 거예요.”
‘인간성 회복’과 ‘마을 가치의 회복’, ‘공동체성 추구’를 프로젝트의 가치로 꼽은 도시환경공학부 조기혁 교수는 현재 이를 마련할 공간 구성 원리를 찾고 있다.
“기존의 도시 재생 계획과는 인적 구성이 달라요. 도시재생은 보통 쇠퇴한 도시에서 진행하는데, 그런 도시의 주민은 대개 연령대가 높아요.
반면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는 다소 파격적으로 여겨질 수 있는 과학기술들이 있어서 창조적인 계층, 새로운 생각을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는 사람들이 필요해요. 실제로도 그런 사람들과 지역을 찾고 있고요.”
조기혁 교수는 이번 프로젝트가 추구하는 공동체의 핵심이 ‘자립성’이라고 밝혔다. 지역에서 소비할 에너지는 해당 지역에서 생산한다는 것. 인분과 쓰레기도 에너지로 환원한다는 개념 자체가 그 마을의 ‘정체성’을 부여해줄 거라는 생각이다.
“국내 주거 문화는 다양성이 부족해요. 이번 프로젝트가 기존의 주거 문화를 대체할 거라고 생각하진 않지만, 대안 마을을 제시함으로써 다양성을 보여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인간은 환경에 영향을 받는다. 어떤 환경인가에 따라 우리는 지금과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될 수 있다. 사이언스 월든 프로젝트가 꿈꾸는 것이 바로 이것 아닐까. 거기에 경제적 비용을 줄이고 환경보호까지 할 수 있으니 일석삼조인 셈이다.
이를 위해 UNIST 연구진은 물론 야투(자연미술 작품), 파티(융합교육프로그램 개발), 아트센터 나비(미디어아트), 한국종합엔지니어링(도시 계획 시 상하수도와 물 관리 엔지니어링) 등이 합류해 힘을 보태고 있다. 사이언스 월든 ‘서포터즈’ 역시 큰 힘이 되고 있다.
두 발로 땅을 딛고 살아가는 리얼리스트이면서 가슴 속에 멋진 꿈을 담은 이들이 만들어갈 내일을 위해 힘찬 응원을 보낸다.
ABOUT SCIENCE WALDEN PROJECT
육각형 모양의 사월당은 한국자연미술가협회 ‘야투(野投)’의 작품이다. 철재 구조에 목재를 조화시켜 내구성과 자연스러움을 동시에 살린 건축물로 평가받는다. 야투는 이번 프로젝트에서 과학기술과 예술을 융합함으로써 이 세상과 인간들의 미래에 대해 고민했다. 이 내용은 사월당 내 결과물로 표현됐다. 백색정원과 황금보리가 대표적인 사례다.
백색정원은 콘크리트로 덮인 화분에서 자라는 풀을 통해, 비정한 현대 문명에서 황폐해진 자연계를 표현했다. 또 철재 화분 위에는 사이언스 월든 연구원 스무 명의 손 모양이 있다. 그곳에서는 황금보리가 자란다. 연구원들은 인분으로 만든 퇴비를 먹고 자란 보리 싹을 잘라 먹는다. 다시 나오는 인분으로 퇴비를 만들면 이를 화분에 담아 보리를 파종한다. 보리 싹 순환 사이클인 셈. 버려지고 잊히는 삶이 아니라, 가진 모든 것을 재활용하며 자연과 함께 살아가겠다는 그들의 의지가 읽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