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짓으로 대화하는 ‘수화(手話)’도 언어의 일종이다. 말이나 글처럼 일정한 규칙만 익히면 농아(聾啞)들과 자유롭게 이야기를 나눌 수 있다. 다른 방식으로 소통하는 그들의 마음을 읽고 소통하는 건 ‘다름’에 대한 이해에도 도움이 된다. UNIST 리더십센터에서 ‘리더십프로그램’ 중 하나로 수화를 넣은 이유가 거기에 있다. 늦은 밤, 수화를 배우기 위해 모인 UNISTAR들의 이야기를 모았다.
※ 리더십프로그램: 협업 및 소통능력 향상을 통한 글로벌 리더 양성 프로그램으로 UNIST의 모든 학생들은 졸업하기 위해서 리더십프로그램 8AU를 이수하여야 한다.(AU는 리더십 학점 이수 단위)
STEP1. 입이 아니라 손으로 마음을 전한다
이번 학기 리더십프로그램으로 수화 수업을 선택한 학생들이 어둑해진 목요일 저녁 경영관 105호로 향한다. 수업을 하는 강의실은 유독 잠잠하다.
수화 단어의 뜻을 설명하는 이영호 선생님의 목소리를 제외하면 쥐죽은 듯 조용한 이곳. 이 정도로 조용하다면 혹시 졸고 있는 학생이 많은 게 아닐까. 하지만 이 공간에는 똘똘한 눈망울을 반짝반짝 빛내며 선생님의 우렁찬 손짓에 집중하고 있는 학생들로 가득했다.
STEP2. “학생들이 얼마나 똑똑한지 가르칠 맛이 납니다!”
강사는 사단법인 울산광역시 농아인 협회의 상임이사인 이영호 선생님이다. 그동안 고급반 수강생을 대상으로 강의해 오다 수화를 전혀 모르는 UNISTAR들을 만났다. 가르치기 힘들지 않냐고 묻자 이 선생님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어린 친구들이라 그런지 수화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빨라요. 학생들이 얼마나 잘 하는지 수업시간에 한 번 지켜보세요. 아주 놀랄 겁니다.”
수화가 어렵다는 학생들에게는 동기 부여도 듬뿍 해준다.
“수화는 생활 속의 몸짓을 꺼내서 만들면 돼요. 여러분은 자신의 행동으로 새로운 단어를 만들 수도 있어요. 세상에 없는 단어를 만들 수 있다는 뜻이죠. 멋지지 않나요?”
STEP3. 수업 내용이 어렵다면 수화통역사가 도와줄게요
지난 시간에 배웠던 단어를 복습하고 나서, 본격적인 수업이 시작된다. 수화를 체계적으로 배우려면 스무 번 정도의 수업을 받아야 하지만 UNIST에서는 학사 과정에 맞춰 아홉 번의 수업으로 단축했다. 이 기간 동안 최대한 많이 알려주고 싶은 마음에 이영호 선생님은 단어의 유의어와 반대어도 한꺼번에 가르친다.
학습량이 많아 배운 것을 잊어버리거나 선생님의 설명을 놓쳐도 문제없다. 수화통역사 허미화 선생님이 있기 때문이다. 허미화 선생님은 전체적인 강의를 돕고, 학생들이 모르는 게 생길 때마다 알려주는 수화 수업의 든든한 지원군이다.
STEP4. 우리가 수화를 배우고 싶은 이유요?
자연과학부 14학번 양희원 학생은 <나는 귀머거리다>라는 웹툰을 보고 청각장애인의 삶에 관심이 생겨 수화 프로그램을 신청하게 됐다. 그의 말에 이영호 선생님이 맞장구를 쳤다.
“수화와 만화는 연관이 많아요. 만화처럼 수화도 몸으로 그림을 그리는 것이기 때문이죠.”
생명과학부 14학번 이수임 학생은 청각장애인의 이야기를 다룬 드라마 <내 마음이 들리니>를 보고 혼자 수화 공부를 하다가 어려워 포기한 전적이 있다. 리더십프로그램에서 수화 수업에 다시 도전한 그녀처럼 학생들 각자 목표를 가지고 참여해 수업은 점점 열기를 더해갔다.
STEP5. 수업이 끝나도 사그라지지 않는 학구열
선생님의 열정적인 수업에 반응하듯 학생들은 수업 시간이 끝나도 수화 공부에 여념이 없다. 헷갈렸던 단어를 물어보는 이가 있는가 하면 희원 학생처럼 배운 단어를 이용해 자신의 근황을 이야기하기도 한다.
손짓과 몸짓, 표정을 사용한 대화는 말보다 깊은 감정을 전하는 듯 보였다. 그건 어쩌면 쉽게 표현하기 어려웠던 이들의 간절함이 담겨서 일지도 모른다. 말하지 않고 말하는 법을 배운 UNISTAR들이 깊어가는 가을밤처럼 한층 성숙해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