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닷물로 전기를 저장하는 해수전지의 수명과 에너지 효율을 동시에 잡을 수 있는 물질이 개발됐다.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 이동욱 교수팀은 전기 전도성과 수중 접착력이 모두 뛰어난 반결정성(semi-crystalline) 고분자 바인더를 개발했다.
배터리 전극은 여러 물질이 섞인 복합구조로, 이들을 단단히 접착해주는 바인더가 성능을 좌우한다. 특히 해수전지는 물속에서 장시간 작동해야 하므로, 수중 접착력을 지니면서도 전기까지 잘 전달할 수 있는 바인더 개발이 꼭 필요했다.
연구팀이 설계한 반결정성 바인더는 하나의 물질 안에 비결정성과 결정성 영역이 섞여 있는 구조라 접착력이 뛰어나고 전기도 잘 흐른다. 고분자가 규칙적으로 배열된 결정성 영역은 전자가 곧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해 전기 전도성을 높이며, 비결정성 영역에서는 고분자 사슬이 유연하게 움직이면서 표면과 결합하기 쉬워져 접착력에 기여한다.
개발된 바인더를 적용하자, 기존 PVDF 바인더를 쓴 경우보다 수명이 3.3배 늘었다. 기존 PVDF 바인더는 초기 구동부터 120시간 동안 급격한 성능 저하가 나타났지만, 새 바인더는 400시간 이상의 중기 안정성과 1,200시간의 장기 수명까지 입증했다.
반응 효율에 영향을 주는 과전압도 최대 66% 감소해 같은 조건에서 더 적은 에너지로도 전지 작동이 가능해졌다. 또 충전 대비 방전으로 뽑아 쓸 수 있는 전기에너지양도 26% 증가했으며, 최대 출력도 96% 늘었다.
연구팀은 바인더의 결정성 분석과 전기 전도성, 접착력 측정을 통해 이러한 성능 향상의 원인을 규명했다. 분석결과, 결정성 영역은 전자가 직선 고속도로처럼 빠르게 이동할 수 있는 통로를 제공할 뿐만 아니라 무작위로 배향돼 여러 방향으로 연결된 전자 흐름 경로가 생겼다. 또한, 우수한 접착력은 비결정성 영역에서 생기는 바인더와 금속 촉매 입자 간의 금속 배위 결합 덕분인 것으로 분석됐다.
이번에 개발된 바인더는 불소계 화합물을 포함하지 않아 유럽연합의 과불화합물(PFAS) 규제에 대응한 전기차 배터리 소재로도 잠재력이 있다. 유럽연합은 환경 잔류성과 인체 유해성 문제로 현재 PVDF를 포함한 과불화화합물의 사용을 단계적으로 금지하는 방침을 추진 중이다.
제1저자인 황정욱 연구원은 “이번 연구는 반결정성 고분자 설계를 통해 기존 바인더의 한계를 극복하고, 해수전지의 성능 향상시킬 수 있음을 입증했다”며, “향후 다양한 전자소재, 수계 금속 전지 및 에너지 저장 시스템으로의 확장이 기대된다”고 전했다. 수계 금속 전지는 물 기반 전해질을 사용하는 배터리로, 리튬이나 나트륨 같은 금속을 전극으로 쓴다. 해수전지는 바닷물을 전해질로 사용하는 수계 금속 전지의 한 형태다.
이번 연구는 UNIST 에너지화학공학과의 강석주 교수, 이현욱 교수, 김영식 교수, 고현협 교수, 반도체소재부품대학원의 신태주 교수와의 협업으로 이루어졌으며, 한국연구재단의 중견연구자지원사업, 창의도전연구 기반지원사업, 나노 및 소재기술개발사업의 지원을 받았다.
연구 결과는 에너지 분야 최고 권위 학술지인 에너지와 환경 과학(Energy & Environmental Science, IF 32.4)에 3월 31일 게재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