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9일에 치러지는 19대 대통령 선거에 총 15명의 후보가 등록했다. 만약 인공지능이 기호 16번으로 나왔으면 어땠을까?
인공지능 기술이 발달하면서 가까운 장래에 위협받는 직업군 중에는 법률 전문가 직종이 포함되어 있다. 인공지능은 방대한 양의 법전 구석구석을 모두 알고 있고, 기록으로 남아 있는 모든 사건에 대해서 세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그 어느 인간 법률가보다 많은 양의 데이터베이스를 비교 분석할 수 있고, 뇌물이나 혈연·지연으로 연루된 대인 관계에 흔들림 없이, 냉정하고도 가장 ‘객관적인’ 판단을 내려 줄 수 있다. 국내의 사건 케이스나 법률에 국한되지 않고, 기록된 전 세계의 모든 법전과 사건 케이스와도 비교 분석을 통해 참고될 만한 사건이나 판결까지 객관적이면서도 설득력 있게 제시할 수도 있다.
비슷한 논리로 인공지능이 대통령 후보로 뛴다면 역대 모든 대통령의 공약은 물론 집권 기간의 실적은 물론 현재 우리나라가 겪고 있는 ‘모든’ 분야에 걸친 현황 데이터를 분석하고, 관련 규정·시행령·법령을 스스로 검토해 현재 존재하는 법에 상충되지 않은 범위에서 공약이나 정책을 제시할 수 있는지 모른다.
더 나아가 지역감정이나 학연 지연에 전혀 영향을 받지 않고, 인선에서도 ‘객관적인’ 데이터를 토대로 필요한 사람을 등용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최근에 문제가 되고 있는 ‘비선실세’를 두지도 않을 것으로 생각되니, 정말 ‘완벽한’ 대선 후보가 될 수 있지는 않을까?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받을 수 있는 직업군에 법률 전문가가 포함되어 있지만, 미래에도 위협받지 않는 직업군으로는 사람을 직접적으로 대해야 하는 직업군이 다수 포함되어 있다. 예를 들면 영업직이 그렇다. 사람을 상대로 해야 하는 일들은 객관적이고 정량적인 수치로만 판단하지는 않는다. 오랜 시간을 거쳐 신뢰가 쌓이면 다소 정략적인 수치는 떨어져도, 신뢰를 주는 회사의 제품을 고르곤 한다.
예를 들면 우리가 스마트폰을 살 때 제품의 성능 사양만 보고 물건을 고르지는 않는다. 객관적인 ‘데이터’에 해당하는 각종 정략적인 사양은 모두 수치화되어 있어 제품 간에 직접적인 비교가 가능하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사양만을 보고 물건을 사진 않는다. 때로는 사양이 다소 떨어져도 본인이 좋아하는 브랜드를 따라간다. 브랜드에 대한 애착은 감성에 호소하는 광고 등을 통해 함양되는 모양이다. 그래서 인공지능에 의해 위협받지 않는 직업군에는 광고와 같은 창작활동 영역도 포함되어 있다.
이처럼 인공지능이 미래에도 넘보기 어려운 영역으로 정치가 포함되는 것 같다. 정치라는 것을 객관적인 데이터만으로 정책을 결정하고, 인사를 단행해서는 어쩌면 안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볼 수 있다. 근래 몇 년간 개봉되었던 SF 영화들 가운데 인공지능이 세상의 통치를 도와주는 설정이 종종 나온다. 그런데 인공지능의 계산에 따르면, 지구의 환경 보호 측면에서 ‘인간’은 백해무익한 존재로 판단할 수밖에 없고, 결국 지구를 보호하기 위해서는 인간을 말살시켜야 한다는 결론을 골자로 하는 상황 설정이 영화 소재로 종종 나온다. 씁쓸한 결론이지만, 객관적인 데이터만으로 판단했을 때 일어날 수 있는 일이다.
인공지능 대통령은 ‘외교’의 미묘한 묘미를 몰라 요즘처럼 북한이 연일 미사일 발사를 시도하는 것을 보면 곧바로 ‘선전포고’할 수도 있다. 미묘한 외교 문제도 수치로만 대응한다면 득보다 실이 많은 외교를 할지도 모른다.
영업사원들이 영업하는 것을 보더라도 객관적인 데이터에 해당하는 학벌 전공 키 나이 등과는 전혀 무관하게 물건을 잘 파는 사람이 있고, 상대방의 마음을 잘 움직이는 사람이 있지 않은가?
정치는 확실히 ‘사람’을 다뤄야 하는 분야이다. 객관적인 데이터만 가지고 판단하고 일을 처리하는 경우보다는, 신뢰를 오랜 기간에 걸쳐 얻고,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때로는 이성적으로는 손해를 보는 일도 열광하며 실천하게 되는 게 더 ‘인간적’이다. 종교에서 흔히 이성적인 이해보다는 믿음으로 따르라는 것도 같은 맥락이다. 데이터적으로는 완벽하지 않지만, 신뢰나 믿음을 통해 다같이 한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것이 정치이고, 그렇기 때문에 더 인간적인 것은 아닐까?
최근 대선후보 간의 TV 토론을 보면서 실망스러운 마음에 인공지능 대선후보가 함께 나왔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다 여러 가지 상상을 해보았다. 정치는 역시 사람이 해야 하는 것 같다.
변영재 울산과학기술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5월 2일 국제신문 22면에 ‘[과학에세이] 19대 대선 후보, 기호 16번?’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