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0년대 말 로봇 태권 V와 마징가 Z가 양대 인기 공상 과학 영화로 한참 동심을 사로잡았다. 필자의 부친은 당시 한국과학기술원(KAIST) 전자공학과 교수로 계시면서 국내 최초로 로봇을 개발한 공로로 매스컴을 타곤 했었다. 당시 초등학생이었던 필자는 아버지께서 국내 최초로 개발했다는 로봇을 직접 보고 싶어 구경하러 갔다가 깜짝 놀란 기억이 있다. TV에서 보던 로봇 태권 V를 상상하고 갔는데 눈에 들어온 것은 커다란 팔 하나가 전부였다. 우리나라 로봇 연구 및 산업은 이렇게 시작했다.
이제 우리나라 로봇 기술은 세계 시장에서 인정받고 있다. 2015년에는 오준호 KAIST 교수 연구팀이 만든 한국 로봇 ‘휴보’가 미국 국방부 산하의 방위고등연구계획국(DARPA) 로보틱스 챌린지에서 1등을 차지했다. 당시 출전한 24개 팀 중 3위를 차지한 카네기멜론대가 휴보를 사용하는 등 총 10개 외국팀이 한국산 로봇 본체와 부품을 사용해 화제가 됐다.
내년 2월 개최되는 2018평창동계올림픽에서 외국인들의 통역 및 안내를 맡을 인공지능 로봇은 이미 인천 국제공항에서 실습에 나서 활약하고 있다. 평창동계올림픽에서는 휴머로이드 로봇끼리 스키 경기를 하는 2018 스키 로봇 챌린지도 개최된다.
세계 로봇 산업 시장은 미국 일본 한국 등이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는 가운데 지난 6월에는 일본통신사 소프트뱅크가 미국 구글의 모기업인 알파벳으로부터 보행 로봇의 리더인 ‘보스턴 다이내믹스’(Boston Dynamics)와 ‘샤프트’(Schaft) 등 두 로봇회사를 인수했다.
스마트 로봇공학은 다음 단계의 정보 혁명을 주도적으로 이끌어갈 미래 산업이라는 기대하에 인공지능에 대한 관심과 더불어 많은 사람이 선택하는 전공 분야이다. 그렇다면 미래 지향적 스마트 로봇을 연구하기 위해 전공은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까. 로봇은 기계장치일까, 전자장치일까.
비슷한 맥락으로 자동차 시장에서도 빠른 발전과 변화가 일어나고 있다.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자동차는 전통적으로 기계장치였다. 자동차의 역학적 구조를 담당하는 섀시는 물론 자동차의 심장이라고 불리는 엔진과 트랜스미션 등 ‘기계공학’이 중심인 기계장치였다. 하지만, ‘자율 주행’이나 ‘자동 주차’ 등과 같은 첨단 기능이 들어가기 위해서 자동차에는 각종 전자 장비가 늘어나기 시작했다. 자동차를 구성하는 부품의 제조 원가를 기준으로 기계 부품보다 전자 부품이 50%를 넘는다면 그 장치는 기계장치일까, 전자 장치일까.
이 같은 자동차의 첨단화를 강조하기 위해서였을까. 전기 자동차도 아닌 내연기관 자동차임에도 불구하고 몇 년 전에 이미 세계 최대 가전제품 박람회로 알려진 컨슈머 일렉트로닉스 쇼(CES)에 내연기관 자동차들이 모습을 드러냈다. 이후 전기자동차의 유행과 함께 이제 CES에서 가장 큰 섹션은 자동차가 차지하게 됐다. 그만큼 이제는 로봇이나 자동차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는 어느 한 분야에 치우치지 않고 기계공학과 전자공학은 물론이고 인공지능 소프트웨어와 같은 컴퓨터공학까지 융합 전공과 연구를 하지 않으면 안 되는 때가 왔다.
필자가 몸담고 있는 울산과학기술원(UNIST)은 2009년 개교한 신생학교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First in Change’라는 기치 아래 기존 교육시스템과는 사뭇 다르게 교육하고 있다. 입학생은 반드시 2개 분야의 융합 전공을 할 것을 의무화했다. 내년부터 모든 신입생은 필수적으로 인공지능 과목을 2학기에 배운다. 전공과목은 물론 음악 미술 철학과 같은 교양과목까지 모두 100% 영어로 교육함으로써 입학생 모두 글로벌 경쟁력을 갖출 수 있게 교육한다. 흥미로운 것은 유니스트에서 한국사 담당 교수는 캐나다 출신 백인 교수이다. 적어도 유니스트에서 한국사를 교양과목으로 들은 학생들은 외국에 나가서 한국에 대한 역사를 영어로 설명할 때 외국 사람들이 알아듣기 쉽게 설명할 수는 있겠다는 기대가 생기는 대목이다.
대한민국이 로봇이나 자동차와 같은 융합 분야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다른 대학의 교육 과정도 이런 방향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변영재 울산과학기술원 전기전자컴퓨터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7년 12월 12일 국제신문 30면에 ‘[과학에세이] 로봇·자동차, 기계장치일까 전자장치일까’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