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통과 협력, 이제 진부한 말이다. 그러나 소통과 협력은 인류가 생존해 온 주요 원인이다. 세계적 역사가 유발 하라리는 그의 저서 <사피엔스>에서 우리의 직계조상인 호모 사피엔스가 마지막까지 경쟁했던 네안데르탈인을 멸종시키고 세상을 정복한 주요 요인은 “여럿이 소통하는 능력이었다”고 말한다.
현재 우리나라는 극심한 양극화의 문제를 겪고 있다. 빈부격차, 정규직 비정규직 사이의 신분격차, 노사 간의 갈등, 세대 간의 불신, 불통과 반목으로 나라가 분열되고 있다. 몇 만년 전에 사피엔스가 대규모 협력으로 다른 종(種)을 물리치고 최강자가 됐듯이 우리도 4차산업혁명시대에 생존하기 위해서는 새로운 형태의 소통과 협력이 필요하다.
4차산업혁명의 기본정신은 연결과 융합이다. 사람과 사람, 사물과 사물, 그리고 사람과 기계가 서로 연결되고 융합되는 것이다. 4차산업혁명은 단지 기술혁신에만 그치는 것이 아니다. 기술의 융합과 인지혁명을 결합한 인간중심의 혁명이다. 4차산업혁명의 단초가 되었던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은 단지 기술적 관점에서만 접근해 성공하지 못했다. 개별기업 내에서의 프로세스의 효율화에 초점을 맞추고 시장과 타 기업 특히 중소기업들과 연결되지 못했다. 그래서 독일은 2015년 이후 정치적, 사회적으로 보다 폭넓은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으로 새롭게 출발했다. 독일의 경험은 4차산업혁명도 기술을 넘어 서로 연결되고 융합돼야 성공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그 동안 물적자본을 중심으로 성장해온 한국경제는 지식경제시대를 넘어 이제 4차산업혁명시대를 맞아 사회적 자본의 역할이 커지고 있다. 사회적 자본이란 인간관계에서 발생하는 신뢰, 소통, 협력, 참여를 포함하는 무형의 생산요소이다.
울산시는 작년 말 ‘4차산업혁명 거점도시 추진 전략’을 발표한 바 있다. 주력산업의 고도화·첨단화, 융복합 신산업 육성, 스마트 제조혁신으로 4차 산업혁명 혁신기반을 만든다는 것이다. 이러한 물적 인프라에 대한 투자는 계속돼야 한다. 그러나 독일의 인더스트리 4.0이 ‘개별기업’의 가치사슬을 중심으로 한 ‘파이프라인 비즈니스’에서 좀 더 사회적으로 연결된 포괄적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으로 진화됐듯이, 울산의 4차산업혁명도 소통과 협력으로 기업과 기업, 사람과 기술이 보다 연결돼야 할 때다. 이제는 경제회복이 소통과 협력에 달려 있다.
이런 가운데 새로운 울산시정이 ‘시민과의 소통’을 시정철학으로 내세운 것은 반가운 일이다. 울산의 노사갈등은 아직도 팽팽하고 중소기업은 최저임금 인상으로 더욱 힘들어 졌다.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상생도 더욱 필요하다. 소통과 협력으로 울산지역의 ‘사회적 협력’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노사가 협력하고, ‘평생교육’을 통해 현장인력을 첨단화해 사람과 기계가 서로 소통하고 협력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조/서비스 플랫폼을 공유’해 기업과 기업, 특히 대기업·중소기업이 서로 연결돼야 한다. 울산형 ‘플랫폼 인더스트리 4.0’을 만들어야 한다.
스웨덴을 20세기 초까지 유럽의 가난한 나라에서 오늘날 복지국가로 만든 것은 ‘목요클럽’이었다. 스웨덴 에르란테르총리는 매주 목요일 저녁마다 기업대표, 노조대표를 만났다. 그리고 역사적인 ‘노사정 대타협’을 이뤘다. 목요클럽은 스웨덴을 국민소득 5만8000달러의 부국으로 만든 ‘소통과 협력의 장(場)’이었다. 울산에 ‘목요클럽’이라도 있어야겠다. 새 울산시정은 인수위원회를 ‘시민소통위원회’라고 불렀다. 소통이 여기서 끝나서는 안 된다. 4차산업혁명도 소통 없이는 성공하지 못한다. 기술과 시장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이, 기계와 인간이 모두 연결되는 ‘포괄적 4차산업혁명’이 돼야 하겠다.
정구열 유니스트 산학융합캠퍼스 단장 기술경영전문대학원장
<본 칼럼은 2018년 8월 14일 경상일보 19면에 ‘[정구열칼럼]경제회복, 소통과 협력에 답이 있다’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