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즈음 중국의 인공지능(AI) 굴기가 거침없다. 작년 말 중국 최대 전자상거래업체 알리바바 회장 마윈은 DANO(達摩院)라는 중국의 최고 첨단기술 연구기관을 설립했다. 향후 3년간 1000억 위안(약 16조2000억원)을 투자해서 AI, 사물인터넷 핀테크 등 차세대 선도기술을 개발한다고 한다. 달마원은 소림사 무술훈련소로 무협소설광(狂)인 마윈이 붙인 이름이다. 통신장비 세계 1위기업인 화웨이도 AI인재 100만 명을 양성하겠다고 나섰다. 중국이 전 세계 AI인재를 다 긁어모을 태세다. 올해는 중국의 개혁개방 40주년을 맞아 ‘지(智)’혁명으로 모든 산업을 사물인터넷, AI와 결합해 인텔리전스 강국이 되겠다는 선언까지 하고 나섰다.
한편, 일본은 로봇강국이다. 전 세계 산업로봇시장의 반 이상을 점유하고 있다. 세계 10대 산업로봇기업 중 7개가 일본 기업이다. 지금은 ‘로봇 신전략’을 통해 AI와 결합한 서비스용 로봇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로봇산업에서 일본은 날고 미·중은 뛰고 있다. 미·중에 이어 아시아권에서는 중국과 일본이 첨단기술 전쟁 중이다. 양국 사이에 낀 우리나라는 ‘강 건너 불구경’하는 기분이다. 4차산업혁명이란 역사적 변곡점에서 추진력을 잃어가고 있다.
역사적으로 우리는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군사적 침략을 많이 당했다. 이 때마다 우리는 단결하여 외세에 대항했다. 얼마 전에 본 영화 ‘안시성’에서 성주민의 단결로 고구려 5천의 군사가 20만의 당 대군을 물리친 것은 인상적이다. 조선시대 임진왜란 때는 이순신 장군이 있었지만, 울산도 왜군의 침략을 막던 전략적 요지였다. 지금 학성공원 내 울산왜성(倭城)은 당시 조명(朝明)연합군과 왜군의 치열한 전투로 유서 깊은 곳이다.
그러나 21세기는 첨단기술전쟁의 시대다. 중국은 스마트폰, 가전, 그리고 태양광 등에서 저가공세로 우리나라를 쳐들어오고, 동남아 쪽은 일대일로(一帶一路) 전략으로 주변국에 부채폭탄을 돌리며 아시아패권에 대한 야망을 드러내고 있다. 일본은 역사적 과오를 외면한 채 최근에는 중국과 AI·첨단기술 개발협력을 시도하고 있다. 조만간 중국의 AI고수와 일본의 로봇부대가 우리나라에 쳐들어오면 어떻게 될까? 임진왜란 때 이율곡 선생은 왜군의 침략에 대비해 ‘양병10만론’(養兵十萬論) 주장했다. 그러나 붕당에 휩싸인 조정에서 찬성하는 사람은 별로 없었다. 소위 현장사정에 어두웠던 것이다.
지금 우리나라 사정을 닮은 것 같아 걱정스럽다. 4차산업의 핵심인 데이터 사용, 정보기술(IT)과 융합으로 많은 비즈니스가 창출될 수 있는 보건의료, 핀테크(FinTech) 분야 등이 기득권 세력과 각종 규제에 막혀 있다. 원격진료는 중국에서는 이미 1억여 명이 이용 중이라고 한다. 오죽했으면 주한(駐韓) 유럽 상공회의소가 “한국은 세계에 유례없는 독특한 ‘갈라파고스 규제’ 국가”라고 했을까? 세상과 동떨어진 남태평양의 고도(孤島) ‘갈라파고스섬’에 비유한 것이다.
그래도 울산은 아직 저력이 있다. 울산은 지난 50여 년간 우리나라 산업화의 일등공신이었다. 정부의 지원도 많이 받았다. 이제 기술로 보국할 때다. 이스라엘이 기술강국이 된 것은 척박한 국토와 주변 아랍국가로부터 안보위기 가운데 기술입국(立國)에 대한 절박함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대학도 제일 먼저 공대를 세웠다. 지금은 세계적인 공대가 된 테크니온 공대가 이스라엘 엔지니어의 70%를 배출하고 이스라엘을 먹여 살리고 있다고 한다.
우리도 무엇보다 AI, IT고수를 양성해야 한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지만 울산시가 ‘자유시민대학’ 설립을 계획 중이라 한다. 울산이 10만 첨단기술 전사를 양성하는 거점이 됐으면 한다. MOOC(온라인 대량 공개 수업)방식을 활용하고 산·관·학이 협력하면 못 할 것도 없다. 우리는 더 이상 중국과 일본 사이에서 넛크랫커가 돼서는 안 된다. 울산이 미·중·일 기술전쟁으로부터 우리나라를 지킬 AI, IT인재를 양성할 ‘미래시민대학’의 거점이 되었으면 한다. 여기에는 무엇보다 기술보국에 대한 ‘간절함’이 있어야 한다.
정구열 UNIST 산학융합캠퍼스 단장
<본 칼럼은 2018년 12월 11일 경상일보 19면에 ‘[정구열칼럼]기술 보국(報國) 울산’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