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에 연구실 학생들과 저녁식사를 함께 했다. 옆자리에는 다른 학과 교수님과 학생이 식사하고 있었는데, 우리보다 먼저 식사를 마쳤는데도 계속 이야기를 했다. 그 교수님은 학생에게 여러 이야기를 하셨는데, 내가 듣기에는 불필요한 조언이 꽤 많은 것 같았다. 식당을 나오면서 우리 학생들에게 “교수가 학생 앉혀 놓고 말을 많이 하는 것이 보기 싫구나. 나도 말을 줄여야겠다”고 했다.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가 조언이랍시고 학생들에게 하는 많은 이야기가 대부분은 잔소리였다. 나이 먹을수록 학생들에게는 꼰대가 되는 것이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에 의하면 꼰대란 ‘은어로 늙은이를 이르는 말’ ‘학생들의 은어로, 선생님을 이르는 말’이다. 국립국어원 우리말샘에는 ‘꼰대질’의 정의도 있는데 ‘기성세대가 자신의 경험을 일반화하여 젊은 사람에게 어떤 생각이나 행동 방식 따위를 일방적으로 강요하는 행위를 속되게 이르는 말’이다.
직업적으로 교수는 꼰대의 정의에 아주 잘 부합한다. 필자와 연구실 학생들과의 나이 차이는 10~20세 정도다. 정년퇴직까지 20여 년이 남았으므로, 앞으로 학생들과의 나이 차이는 30~40세 정도로 아들뻘 학생들까지 지도할 것이다.
사실 꼰대질은 나이와는 상관이 없다. 요즘 ‘젊은 꼰대’라는 표현도 많이 쓰인다. 아직 나이도 어린 편인데 후배들에게 잔소리하고 쓸데없는 훈수를 두는 사람이나 갑질을 하는 사람을 ‘젊은 꼰대’라고 한다.
나의 학생 지도 방식과 언행이 요즘 어린 학생들에게는 꼰대질이 되겠다는 생각을 한다. 학생들과 대화하다가 “내가 대학원 다닐 때는 말이야”라는 말이 나오면 100% 잔소리라고 보면 된다. 항상 결론은 “예전보다 연구 여건은 훨씬 좋아졌는데, 연구 좀 제대로 해라. 지금이 사회에 나가기 전에 제대로 실력을 키울 수 있는 마지막 기회니까 정신 바짝 차리고 연구해라”다. 기승전 잔소리다.
물론 학생들도 할 말은 많다. 여전히 이공계 대학원생의 행정 잡무는 많고, 예전과 달리 대학원을 졸업하면 취업이 보장되지도 않는다. 다수 연구과제에 참여하다 보면 개인 연구에 할애할 수 있는 시간이 부족하기도 하다. 연구과제에서 ‘인건비’를 받고 있지만, 학생과 노동자로서의 경계가 불분명하다. 대학원 공부만 하기도 벅찬데, 연구과제 업무도 처리해야 하고, 연구실 구성원과의 대인관계도 신경 써야 한다. 저학년 학생들은 박사 고년 차 선배와 지도교수로부터 수시로 잔소리를 듣기도 한다. 여러모로 직장인과 비슷한 스트레스를 받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잔소리를 좀 해야겠다. UNIST를 포함한 과기원 학생들은 국가 혜택을 많이 받는 만큼 연구에 매진해야 한다. 과기원에서는 학비와 생활비가 모두 지원되고 원하면 모두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다. 우리 학생들에게는 등록금 마련을 위한 학자금 대출과 아르바이트는 먼 나라 얘기다.
최근 선발 인원이 줄었지만, 남학생은 무시험으로 병역특례를 받기도 한다. 연구 장비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마음껏 실험할 수 있다. 이렇게 좋은 연구환경을 갖추었지만, 어느 순간 밤-낮과 주말-주중을 가리지 않고 연구하던 분위기가 많이 사라졌다. 선진국과 같이 대학원생이 연구에만 몰두할 수 있는 시스템이 아직 갖춰지지 않았는데도 연구(일)에 몰두하는 않는 사회적 분위기가 조성된 것이다.
대학원에서의 성과에 따라 직장 수준이 결정되는 것을 잘 알기에 학생들에게 본인 장래를 위해 열심히 연구하라고 잔소리할 수밖에 없다. 최소한 과기원 학생은 워라밸을 추구할 때가 아니다. 학생들에게 지면으로도 꼰대질을 하고 있어 미안하지만, ‘어른들 말씀 틀린 거 하나도 없다’와 ‘몸에 좋은 약은 쓰다’라는 말로 정당화하고자 한다.
최성득 UNIST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5월 20일 경상일보 18면 ‘[경상시론] 내가 대학원생 때는 말이지’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