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미국이 중국의 최대 통신장비 업체인 화웨이에 대한 거래제한 조치를 취함으로써 미·중 무역분쟁이 기술패권전쟁으로 치닫고 있다. 양국이 무역분쟁을 타결해도 “이러한 기술전쟁은 지속될 것”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과거의 냉전시대가 ‘기술냉전시대’로 재현되는 것 같다.
원래 냉전(冷戰)시대란 제2차 세계대전 이후 1991년에 구(舊)소련이 붕괴될 때까지 미·소 양국을 둘러싼 정치·경제·군사, 우주과학 분야에서의 경쟁과 대립시기를 말한다. 이러한 냉전시대의 승부를 가른 것은 군사력이나 우주항공기술보다는 경제력이었다. 소련이 1957년 세계 최초로 스푸트니크 인공위성을 발사하고, 이어 1961년에는 최초의 ‘유인 우주선’을 쏘아 올렸을 때, 미국사회는 충격을 받았다. 그러나 소련은 1970년대 들어 경제력이 약화되기 시작해 결국 1991년에 붕괴되고 말았다. 비효율적인 사회주의가 자율성과 창의성, 이에 따른 경쟁력을 바탕으로 한 자본주의에 패배한 것이다. 냉전이후 세계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가 주류를 이루게 됐다. 그러나 지금의 미·중 갈등은 냉전의 역사를 다시 보는 듯하다.
우리에게는 현재의 미·중 기술패권전쟁이 ‘강 건너 불’이 아니다. 한국·미국·일본과 북한·중국·간 대립 구도가 한반도를 중심으로 한 ‘신냉전’이 형성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수출 의존도가 높은 한국으로선 미·중 무역전쟁의 영향에서 벗어날 수 없다. 이미 사드문제를 겪은 한국으로서는 미·중 갈등 사이에서 중국과의 관계를 유지하면서 미국과의 균형점을 찾아야 하는 ‘어려운’ 선택에 직면하고 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보다 확실한 전략이 필요하다. 우선 ‘우리’기술개발에 올인해야 한다. D램이나 고성능 배터리처럼 한국산을 사용하지 않으면 안 되는 핵심 부품과 소재를 만들어야 한다. 특히 AI, 자율주행 등 첨단 핵심기술을 특허화하고 이를 표준화하는데 적극 참여해야한다. 비메모리 반도체, 바이오기술, 자율주행차 등 3대 중점사업에서 ‘원천기술’을 개발해내야 한다.
‘한국경제연구원’ 보고서에 의하면, 2018년 현재 우리나라는 세계경제포럼(WEF)이 제시한 바이오, 사물인터넷(IoT), 인공지능(AI) 등 4차 산업혁명 12개 분야에서 한국을 100으로 했을 때, 중국 108, 일본 117, 미국 130으로 세 나라 모두에 뒤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선진국과 기술격차가 더 벌어져서는 안 된다. 특히 중국과 기술경합을 벌이고 있는 산업군을 살펴보고 대중국 전략을 짜야 한다.
기술냉전도 결국 경제력의 싸움이다. 당연히 우수한 기술과 경제력으로 오래 버티는 측이 이길 것이다. 과거 냉전에서도 봤듯이 경제 전반의 자율성, 요소시장의 효율성, 공정한 경쟁체제가 확립되어 있는 쪽이 승리할 것이다. 정부는 경제를 주도하기보다는 효율적 기술개발생태계를 조성하는데 힘써야 한다. <좋은 기업을 넘어 위대한 기업으로>의 저자 짐 콜린스는 위대한 기업을 만드는 것은 ‘카리스마’가 아니고 변화를 이겨내는 ‘내부의 저력’이라고 했다. 불확실성이 고조되는 주변 정세에 우리가 필요한 것은 공허한 이념논쟁보다 ‘축적의 시간’을 가지고 차분히 우리 내부의 기술경쟁력을 다지는 것이다.
과거 냉전시대에 우리는 ‘무방비’ 상태에서 6·25전쟁의 참화를 겪었다. 이제 기술냉전시대에 다시 주변국에 휘말려서는 안 된다. 남북대화만 쳐다볼 때가 아니다. 우리만의 기술개발에 올인하고 자원무역외교도 힘써야 한다. 정부의 실사구시(實事求是)정책이 어느 때보다 필요하다.
정구열 UNIST 경영학부 교수
<본 칼럼은 2019년 6월 11일 경상일보 19면 ‘[정구열칼럼]기술냉전시대에 살아남으려면’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