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사는 울산에서 가장 먼 곳의 이야기로 시작하고자 한다. 1만4000㎞ 이상 떨어져 있는 남극은 호주보다 2배나 넓은 대륙으로 대부분이 빙하로 덮여있다. 겹겹이 쌓인 눈으로 결정화된 얼음층은 해수면으로부터 2㎞ 이상으로 치솟아 있어 영남알프스의 산들보다 두 배 가까이 높다. 땅을 덮고 있는 얼음 면적이 5만㎢를 넘으면 빙상(ice sheet)으로 부르는데, 남극빙상은 지구에서 가장 큰 얼음 덩어리이다. 남극빙상이 확장되며 대륙의 경계를 넘어 바다에 떠 있는 부분을 빙붕(ice shelf)으로 부른다.
빙붕은 기후변화에 있어서 매우 중요하다. 지금까지는 남극대륙의 얼음이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것을 막아주는 파수꾼의 역할을 하였지만, 빙붕들이 무너지게 되면 흘러내리는 얼음이 바다로 더 빨리 유입되어 해수면 상승을 더욱 부추길 수 있다. 상상하기도 끔찍하지만, 남극의 얼음이 모두 녹는다면? 지구의 평균기온이 10℃ 이상 상승하면 해수면은 60m 이상 높아지며, 이때 남극빙상과 함께 녹는 그린란드 빙상들도 고려하면 현재보다 70m 이상 상승하게 된다. 지구 대부분의 도서들은 잠기게 되고, 플로리다는 지도에서 지워진다.
남극도 멀고, 70m 상승이라니, 공상과학과 같이 들리지만 실상은 전혀 그렇지 않다. 견고할 것만 같았던 남극이 최근 들어 그 변화가 심상치 않다. 서남극 지역은 빙상의 두께가 동남극보다 얇아 기후변화에 더 취약한데, 이러한 서남극에서 빙붕들이 빠르게 녹고 있다는 위성 관측 결과들이 속속 제시되고 있는 것이다. 기후변화 국가간협의체(IPCC)는 1901~2018년 기간 해수면이 0.2m 상승했다고 보고하고 있는데, 2000년대 이후로 이전 기간 대비 2배 이상 빨라지고 있다.
현재까지 대부분의 해수면 상승은 바닷물의 온도 증가로 인한 부피 팽창의 효과, 북반구 내륙빙하와 북극 해빙 등이 감소한 효과가 크지만, 현재와 같이 온난화가 지속된다면 남극빙하의 용융이 21세기 중반 이후 심각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문가들은 예측한다. 만약 우리가 파리협정에서 목표하고 있는 1.5℃ 상승 목표를 달성하지 못하여 지구 평균 기온이 2℃ 이상 상승하게 되면 남극으로 인한 해수면 상승은 기하급수적으로 빨라질 것이다. 최신 기후예측모델에 의하면 지구온난화 2℃가 현실화 되는 21세기 말에는 1℃ 당 1.3m씩 상승하지만, 2~6℃ 상승하는 다음 100년 동안에는 2.4m씩 가속화할 것으로 예상된다.
전문가들이 남극빙하가 녹는 것에 지대한 관심을 두는 이유는 되돌이킬 수 없는 비가역성 때문이다. 공든 탑이 무너진다는 말과 같이, 3500만년 전부터 만들어져 온 남극빙상이 지구온난화로 단기간에 사라진다면 예전의 기후로 되돌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단언할 수 있다. 해수면 상승은 이미 열대 도서국들에는 심각한 재앙이 되고 있다. 해수면 상승은 결코 서서히 진행되지 않는다.
기후변화로 집중호우를 동반한 더욱 강력한 폭풍이 왔을 때 해수면 상승은 해안도시에 치명적인 침수피해를 줄 수 있다. 2005년의 카트리나로 뉴올리언스가, 2017년 하비로 휴스턴이 침수된 것은 미국의 사례이지만, 2016년 태풍 차바는 우리 울산이 겪었던 생생한 사례이다. 3시간 동안 무려 300㎜의 빗물이 쏟아지며 바닷물이 제일 높아지는 만조 시기와 겹쳐 대규모 침수피해를 울산에 안겼다. 해양조사원의 자료에 의하면 최근 30년간 우리나라 연안의 평균 해수면이 9.1㎝ 상승했다고 밝히고 있어, 국가 산단과 제조업 시설이 위치한 울산의 경우 해양발 기후변화의 위험에 면밀히 대비할 필요가 있다.
해수면 상승과 함께 울산이 겪게 되는 심각한 위험은 해수온 상승과 해양 산성화이다. IPCC는 대부분의 생물체가 서식하고 있는 수심 700m까지의 해양 상층부의 수온이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꾸준히 상승하고 있으며, 이에 따라 해양의 산성화가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제시한다. 우리나라 연근해 표층수온도 지난 50년간 1.2℃ 이상 올라갔다. 해수온의 상승과 산성화는 수산업의 생산성을 크게 저하시키고 있다. 최근 울산에서도 평년보다 수온이 크게 상승하는 경우에 굴과 미역의 흉작이 잦아지는 사례가 나타나며, 부쩍 다가온 기후변화의 위험을 실감하고 있다.
국제적인 기후변화 노력에도 불구하고 온실가스 배출량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다. 기후전공 수업에서 인용하는 이산화탄소 농도는 2010년 강의 시작했을 때 390ppm이었는데 올해는 벌써 418ppm이다. 우리나라가 탄소 고배출 국가, 소위 기후 악당으로 비난 받는 것을 고려한다면, 매년 강의 노트를 고쳐야 하는 것은 작은 수고에 불과하다. 국내 온실가스 배출량의 36%가 산업 부분에서 발생하며, 특히 울산을 대표로 하는 국가산업수도인 부울경지역은 온실가스 배출량 중 제조산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40% 이상으로 매우 높다. 대기업들에게는 탄소 중립이 기회가 될 수 있지만, 제조산업 기반의 중소기업들이 다수 포진하고 있는 부울경 지역의 탄소중립 달성은 넘기 어려운 벽으로 다가왔다. 어제의 산업역군으로 칭송받던 지역의 상공인들에게 탄소중립에 필요한 물적, 인적, 기술적, 정책적 지원이 절실하다.
남극에 가면 이제 인천빙하가 있다. 2021년 11월 남극지명위원회에서는 기후변화의 심각성을 알리기 위하여 서남극 겟츠 빙붕 지역에 주요 기후회의를 개최한 도시 9곳의 이름을 따서 빙하들에게 지명을 부여했다. 9개의 빙하는 제네바, 리오, 베를린, 교토, 발리, 스톡홀름, 파리, 인천, 글래스고이며, 서쪽부터 동쪽으로 회의가 열렸던 순서이다. 2018년 10월 인천에서 열렸던 기후회의는 전지구 평균기온 상승을 1.5℃ 이내로 제한하자는 특별보고서를 채택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진다. 이제 남극이 그리 멀지 않게 느끼길 바라며, 다 함께 남극에 인천빙하를 계속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이명인 UNIST 도시환경공학과 교수 폭염연구센터장
<본 칼럼은 2022년 2월 25일 경상일보 19면 ‘[이명인의 기후와 환경(2)]해수면 상승을 부추길 빙붕(ice shelf)’이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