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말 미국에서 같이 지냈던 다섯 가족이 수원에서 만나 지난 시간들을 돌아보며 회포를 풀 시간을 가졌다. 다양한 화제를 가지고 이야기를 하다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에 대한 이야기로 집중됐다. 다섯명 중 네명이 현역 이공계 교수다.
미국 일리노이 대학교, 서울대학교, 성균관대학교에서 나름 이공계에서 새로운 교육의 변화를 고민하고 새로운 시도를 하고 계신 분들이다. 학술적인 모임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감출 것 없이 허심탄회한 각자의 고민과 생각들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많은 이야기가 오고 갔지만 모두가 공감하는 한가지는 지금 MZ세대들의 성향과 인공지능(AI)의 급속한 발전을 고려할 때 기존 대학 강의실에서 이뤄지는 지식전달 방식이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는 것이다.
어떻게 대응할 것인가에 대해서는 여전히 다양한 의견들이 존재하지만 대학교육의 변화와 혁신의 시급성에 대해서는 누구도 부인할 수 없었다. 오늘부터는 그동안 논의하던 바이오산업에 대한 주제를 잠시 접어두고 대학교육에 대한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한다.
미국 대학들은 요즘 정체성의 위기에 직면해 있다. 트럼프 정부의 급작스러운 정책변화도 있지만, 대학이 지식의 상아탑이라는 자부심과 미래 전문가와 리더를 양육하는 교육기관이라는 입지가 위협과 도전에 직면해 있다. 지금까지 대학은 미래 리더를 교육하고 과학기술의 혁신을 이끌어가며 젊은 인재들이 모여 새로운 도전을 할 수 있는 최고의 기관으로 여겨져 왔다.
하지만 최근의 디지털 혁신이나 AI 기술 혁신은 대학이 주도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가? 이 혁신을 주도하는 젊은 인재들이 대학으로 모이고 있는가? 냉정하게 이야기하자면 그렇지 않다. AI 분야의 최고 인재들은 글로벌 기업에 모여있다. 이들은 오랜 시간 체계적인 교육을 통해 양육된 박사학위를 가진 사람들이 아니다. 이들에게 대학의 학위나 졸업장은 무의미하고, 대학은 더 이상 매력적인 기관이 아니다. 이런 현상을 AI 기술로 한정된 것이라 생각하고 싶지만, 지난 노벨 물리상과 화학상을 지켜보면서 이 변화가 특정분야에만 한정된 것이 아니라는 생각이 든다. 기초과학 분야도 이제는 AI 기술에 의한 파괴적 혁신의 대상이 됐다.
이것을 단순히 미국 대학의 위기로만 볼 것인가? 그렇지 않다. 요즘 강의실에서 교수와 학생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면 이런 위기감은 더욱 심각해진다. 많은 학생을 앞에 두고 전문지식을 일방적으로 전달하던 강의 방식은 회의감이 든다. 어떤 교수는 가능한 많은 정보를 전달하기 위해 칠판에 판서를 하지 않고 수십장의 파워포인트 슬라이드를 준비한다. 얼마나 많은 슬라이드를 준비했는지에 자부심을 느끼기도 한다.
하지만 정보의 디지털화와 AI의 보급으로 이제 학생들은 강의실에서 전문 지식을 기대하지 않는다. 그 수업의 기존 강의 노트, 슬라이드와 시험, 과제에 대한 정보는 이미 확보돼 있으며, 새로운 과제를 제시하더라도 AI를 활용하면 굳이 수업을 듣지 않아도 해결이 가능하다. 수업시간에 학생들은 교수의 강의를 필기하지 않는다. 강의내용을 사진으로 촬영하거나 녹화를 하고 AI로 요약한다.
최근 어느 교수의 고민을 듣게 됐다. 이번 학기 학생들이 제출한 과제 성과물이 예전과 비교해 훨씬 좋아졌지만, 중간고사 성적은 오히려 많이 떨어져서 당황스럽다는 것이다. 과제는 AI를 활용해 성과가 좋아졌지만, 지식을 소화하고 이해하는 능력은 떨어져서 시험 성적은 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학생들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이미 AI라는 혁신적인 도구는 학생들에게 주어져있다. 미래를 살아가야 할 학생들에게는 이 도구를 잘 사용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기존의 교육방식을 고집하며 이런 변화를 부정하고 예전에 가르치던 방식을 학생들에게 강요하는 대학이 혁신돼야 한다. 미래 리더로 갖춰야 할 역량이 무엇인지는 재구성돼야 하며, 전문 지식인의 정의가 다시 평가돼야 한다. 그리고 교육은 이러한 역량을 증진시킬 새로운 방법과 내용들로 채워져야 할 것이다.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이러한 쟁점들에 대한 논의들을 해보려고 한다.
<본 칼럼은 2025년 6월 11일 경상일보 “[배성철칼럼]AI 시대 대학 교육 혁신에 대한 도전(1)”라는 제목으로 실린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