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 문명에 획기적인 변화를 가져온 금속, ‘철’. 우리나라에서 철 생산지로 명성이 자자했던 울산은 현재 산업수도로서 역할을 해내고 있다. 철의 도시에서 산업수도로, 인류에 기여할 첨단과학기술의 요람으로 이어지는 울산의 역사를 알아보자.
울산은 자동차 공장・조선소, 석유화학단지 등이 있는 공업도시다. 산업수도라 불리는 울산의 역사적 배경을 이야기할 때 한반도 최대의 철광산인 ‘달천 광산’을 빼놓을 수 없다. 울산광역시 북구 달천동에 위치한 달천 철광산은 지금은 채굴하지 않지만, 삼한시대부터 현대까지 철광석과 토철을 캤던 곳이다.
조선시대 『세종실록지리지』에는 군 북쪽 달천리에 철장이 있다고 하며, 해마다 생철 1만 2500근을 나라에 바쳤다고 한다. 조선시대 울산은 경상도 지방에서 가장 많은 철을 생산했다. 현재 울산 고분에서 출토된 철기 유물들은 신라가 경제적・군사적으로 성장하는 데 중요한 기반이 됐던 울산의 철 생산을 증명하고 있다.
철은 인류 문명에 획기적 변화를 가져다줬으며, 국가 발전의 기반이 되는 중요한 물품이었다. 철을 생산하는 기술은 첨단 기술에 속했다. 신라 탈해왕(재위 57~80)은 본래 쇠를 다루는 대장장이(야장)였다. 그는 쇠를 다루는 기술로 사로국으로 진출해 두각을 나타낼 수 있었으며, 임금 자리에까지 올랐다.
최근 달천 광산 발굴조사에서 기원전 1세기대의 철광석을 캤던 흔적이 조사됐다. 이는 우리나라 최초로 확인된 철광석 채광 유적인데,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하다.
달천 광산의 철은 비소(As) 함유량이 높다는 게 특징이다. 그런데 경주 황성동의 삼한시대 제철유적에서 출토된 철에서 비소 성분이 확인됐다. 이 때문에 울산 달천에서 경주 사로국으로 철이 공급됐던 것으로 보고 있다.
달천 광산은 1964년 대한철광개발 (주)울산광업소로 운영됐다가 1966년 민영화됐고, 1993년 6월 철광석 생산을 중단했다. 지금 이곳에는 광산의 모습을 찾을 수 없고, 아파트 단지와 학교 등이 들어서 있다.
비소의 누출을 우려한 주민들의 요청으로 다른 곳의 흙을 가져와 광산을 덮었기 때문이다. 대신 달천 광산의 일부분은 ‘달천 철장’이란 이름으로 울산광역시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돼 있다.
쇠부리 축제로 이어지는 울산 철 생산의 역사
조선시대 울산의 제철 역사에서 꼭 기억해야 할 인물은 ‘이의립(1621~1694)’이다. 이의립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두서면 전읍리에서 태어났으며, 호는 구충당이다. 그는 전국을 다니며 철광산을 찾기 위해 노력했으며, 철 생산과 유황제조법을 발전시키는 데 힘썼다.
그는 달천 광산을 재개발했으며, 토철을 용해하는 제련법을 터득했다고 전한다. 이러한 공로로 그의 후손이 달천 광산을 대대로 물려받았다고 한다. 그의 글을 모은 책 『구충당 문집』에는 목판으로 새긴 달천 광산 지도가 수록되어 있다.
철을 생산하는 과정은 제련・야철・쇠부리 등으로 불린다. ‘쇠를 부리다’는 말에서 나온 ‘쇠부리’는 쇠가 들어 있는 철광석이나 토철・사철에서 쇠를 녹여내고 그것을 다시 정련하는 과정을 말한다.
제철 과정은 고된 작업이었다. 철광석・토철을 숯과 함께 용광로 안에 넣고 풀무로 바람을 일으켜 불을 때어 1300℃가 되면, 쇠가 녹아내려 슬래그(쇠똥)와 분리된 쇳물이 나온다. 용광로 앞쪽에 있는 초롱구멍을 열어 거푸집으로 쇳물이 흘러들어가게 하여 판장쇠를 만든다.
이 쇳덩이를 다시 달구어 불순물을 걸러내는 과정을 거친다. 철 소재를 달구고 두드려 원하는 모양의 철기를 만드는 것을 ‘단조’라 한다. 쇠를 완전히 녹여 거푸집에 부어 철기를 제작하는 것을 ‘주조’라 한다.
달천 광산이 있던 울산광역시 북구에서는 매년 ‘울산쇠부리 축제’를 개최하는데, 올해로 12회를 맞이했다. 축제와 연계해 매년 철 관련 전문가들이 참가하는 학술 심포지엄이 열리며, 기술이 단절된 ‘쇠부리 고대 원형로 복원 실험연구’도 진행된다.
그런가 하면 ‘울산달내 쇠부리놀이 보존회’가 구성돼 쇠부리 놀이를 민속놀이로 재현, 공연한다. 제철 작업을 할 때 불렀던 노래인 ‘불매 소리’도 복원했다. 또한 울산 북구청에서는 달천 철장에 역사공원을 조성하고 쇠부리전시관 건립을 추진하고 있다.
철 중심지 역사, UNIST가 잇는다
태화강 상류인 대곡천에 울산 시민의 식수원인 대곡댐을 건설하면서 한국문화재재단은 2000년부터 2004년까지 대곡댐 편입부지에 대한 발굴조사를 진행했다. 이 과정에서 조선시대 제철 유적 6개소가 확인됐다. 이렇게 한 지역에서 제철 유적이 여러 개 발굴조사된 것은 울산에서 처음 있는 일이었다.
대곡천 유역의 제철 유적에서 조사된 슬래그를 분석한 결과, 비소(As) 함량이 높았다. 이것은 원료를 달천 광산에서 대곡천 유역까지 가져와 제철 작업을 했음을 뜻한다.
울산은 제철 중심지라는 역사적 사실을 바탕으로 앞으로도 우리나라 산업수도로서 위상을 계속 이어나갈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새로운 기술 개발과 첨단 산업 육성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의미에서 UNIST의 역할이 크다고 할 수 있다. 온고지신(溫故知新)이란 말을 되새기며 산업수도로 성장시킨 철의 역사처럼 획기적인 신소재가 UNIST에서 탄생하길 기대해본다.
글 신형석 울산대곡박물관 관장
신형석 관장은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회 위원인 신형석 관장은 신라사 및 울산지역사를 연구하며 『울산의 유적과 유물-발굴로 드러난 울산의 역사-』, 『75년만의 귀향, 1936년 울산 달리』, 『기와가 알려주는 울산 역사』, 『울산 역사 속의 제주민-두모악·해녀 울산에 오다-』 등 울산 역사문화에 관련된 책을 기획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