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명이 켜지면 무대가 눈에 들어온다. 어디선가 들려오는 사람들의 대화. 몇몇 인물이 자연스럽게 무대로 들어온다. 극의 시작이다. 그와 함께 떠오르는 몇 가지 질문. 이 이야기는 어디부터 시작되고 끝나는 걸까? 무대 위 배우와 뒤의 스태프들은 이 극을 위해 얼마나 준비했을까? 그들은 관객들에게 무엇을 주고 싶을까? 답을 얻기 위해 찾은 곳은 UNIST 유일의 연극 동아리 NEST가 연습 중인 대강당이다.
NEST를 만난 건 7월 여름, 한낮의 더위가 사그라지는 저녁 시간. UNIST 본관 대강당에서 대본 리딩(reading)을 준비 중인 그들을 만날 수 있었다. 이번 인터뷰 및 사진 촬영에는 강나래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학생(5기)과 동아리 회장인 구도현 자연과학부 학생, 연출을 맡고 있는 박시언 생명과학부 학생, 오영훈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학생(이상 7기), 그리고 신입생으로 올해 NEST에 들어온 김재호・박준혁・백인경 기초과정부 학생(이상 8기)이 참여했다.
NEST는 UNIST 유일의 연극 동아리다. 영어로 ‘끝나지 않는 이야기(Never EndingStory)’에서 한 글자씩 따온 이름은 ‘무대 위에서 사람 살아가는 이야기가 끊이지 않고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에서 붙여졌다. 2009년 UNIST 개교 때부터 만들어진 이 동아리는 이름처럼 끝나지 않는 이야기를 무대에 올리고 있다. 1년에 네 차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정기공연을 열며, 다른 무대에도 적극적으로 나서고 있다.
체계적인 연습과 준비 과정
과학기술원의 연극 동아리는 본격적으로 예술계로 접어든 친구들과 조금 다른 모습일 것 같다. 하지만 회장직을 맡고 있는 구도현 학생과 연출 박시언 학생은 항상 ‘극단’에 몸담고 있다는 각오로 연습하고 공연한다고 강조했다. 90여 명의 부원들 모두 열정적으로 즐기면서 준비하고 있다고. 그만큼 연습도 체계적으로 짜여있다.
“새로운 기수가 들어오면 선배 기수에게 일주일에 두 번씩 연극 교육을 받아요. 발성과 호흡, 공연을 위한 체력활동은 물론 기존 공연 작품 연기 연습 등을 실시하죠. 이를 토대로 신입 기수를 네 팀으로 만들어 무대에 올립니다.”(박시언 학생)
신입 기수는 배우, 무대감독, 음향, 조명, 의상, 소품, 디자인 등 각자 원하는 분야를 정해놓고 들어온다. 공연 준비 노하우는 각 분야의 선배들이 전수해준다.
“제일 중요한 건 실전에서 직접 준비하며 배우는 일이에요. 파트 선배들과 함께 무대를 준비하면서 후배들은 많은 걸 배우죠. 그 후배가 선배가 되면 다시 후배들에게 그 노하우를 전해주고요.”(구도현 학생)
공연 준비는 일반 극단과 크게 다르지 않다. 작품이 선정되면 각자 원하는 배역을 지원한다. 스태프를 맡은 부원들도 배우로 지원할 수 있다. 오디션을 통해 배역이 정해지면 대본 리딩과 동선 연습, 소품과 의상 준비, 무대 체크, 리허설 등의 과정을 거쳐 무대에 자신들의 작품을 올린다.
무대에 올릴 작품이 결정되면 연습은 주중 주말 할 것 없이 매일 이뤄진다. 연습시간은 신입 기수에 맞춰 정하는 경우가 많은데, 주요 활동 인원이 1~2학년인 탓이다. 과학기술원 특성상 3학년 이후에는 연구와 학습으로 바빠지기 때문에 동아리 활동에 시간을 내기 쉽지 않다.
단, 졸업 공연만큼은 3~4학년 선배 기수들이 주가 되어 진행하고 있다. 스태프는 여러모로 챙길 것이 많아 주로 후배 기수들이 맡고, 선배들은 배우로 참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UNISTAR, 연극과 사랑에 빠지다
UNIST는 과학기술에 특화된 대학교이고, 학생들은 치열하게 공부해 이곳으로 왔다. 생명공학과 화학, 기계공학을 전공한 이들은 어떻게 연극에 빠지게 됐을까.
“부모님과 뮤지컬, 연극 같은 공연을 자주 봤어요. 보는 것만이 아니라 무대 위에서 직접 연기하고 노래 부르고 싶은 마음에 들어오게 됐어요.”(백인경 학생)
“고등학교 때 이공계로 갈지, 영화 쪽으로 갈지 고민했죠. 결국 UNIST를 선택했지만, 동아리 활동으로라도 연출과 연기 공부를 계속하고 싶었어요.”(박준혁 학생)
“중학교 때부터 연극이 좋았지만 UNIST에서 연극 동아리 활동을 할 생각은 애당초 없었어요. 그런데 우연히 NEST 공연을 보고 반한 거예요. 그때가 마침 동아리 부원 모집 마지막 날이었죠.”(박시언 학생)
각자 이런저런 사연과 꿈을 안고 동아리에 들어온 그들은 NEST의 장점으로 특유의 강한 결속력을 꼽았다. 1학년은 특정 학과를 정하지 않고 입학하는데, 이럴 때는 학부보다 동아리에 더 큰 애착을 가질 수 있다는 것이다. 그 애착이 선배 기수가 되어서도 이어지면서 지금의 NEST가 됐다는 게 그들의 설명이다.
무대에서 뛰어놀 수 있는 ‘지금 이 순간’
그들은 그동안 연극 <옥탑방고양이>, <보잉보잉>, <누구세요>, <어바웃 타임>, <발칙한 로맨스>, <행오버>와 뮤지컬 <오 당신이 잠든 사이에> 등의 작품들을 각색해 무대에 올렸다. 결코 쉬운 작업들은 아니었다. 하지만 공연이 끝나고 쏟아지는 관객들의 박수가 주는 쾌감 덕분에 NEST는 지치지 않고 꿈꿀 수 있었다. 아직 무대 경험이 없는 신입 기수들 역시 그 쾌감을 기다리고 있을 테다.
이들이 연극을 통해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더 있다. 열심히 준비한 공연으로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싶다는 것. 2014년에 울주군 보건소의 지원을 받아 공연했던 연극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작품에선 ‘자살 방지’를 주제로 생명의 소중함을 전달했는데, 관객들에게 큰 감동을 선사했다. NEST는 앞으로도 이런 봉사 기회를 통해 연극을 즐기는 것을 넘어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밝혔다.
“좋아하는 일을 하면서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면 그보다 좋은 일은 없다고 생각해요. 금전적 가치와는 비교할 수 없죠. 상황이 안 돼서 공연을 못 보는 분들에게 저희가 작은 도움이 될 수 있잖아요. NEST의 공연을 보고 연극을 하고 싶어 하는 사람이 생길 수도 있고요. 저처럼 말이죠.”(박시언 학생)
그들은 현재 정기공연을 위해 <쉬어매드니스> 각색작을 준비하고 있다. 웃고 떠드는 즐거운 분위기라도 연습만큼은 뜨겁고 치열하다. 늦은 밤 대강당이 유난히 빛나는 이유다. 마지막으로 그들의 목표와 계획을 물었다.
“대규모 뮤지컬을 올리고 싶어요. 댄스나 음악 동아리 등과 연합해 공연한다면 재미 있을 거예요. 창작극도 올려보고 싶고요. 각색작이 아니라 우리만의 작품 말이죠. 진솔한 삶의 이야기가 담긴 창작극을 꿈꾸고 있어요. 우리가 살고 있는 이 땅과 사람들의 냄새가 배어나는 작품이 될 거예요.”(박시언 학생)
“NEST를 하는 동안에는 학업 스트레스를 잊을 수 있어 정말 좋아요. 제가 앞으로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후배 기수들에게 멋진 ‘피난처’를 만들어주는 거예요. 제가 이곳을 그렇게 느꼈듯, 후배들도 NEST를 편안한 곳으로 느낄 수 있게 말이죠.”(박준혁 학생)
그들의 미래가 어찌될지는 알 수 없다. 물론 그들은 앞으로도 UNIST에서 학업과 연구에 매진할 것이다. 동시에 동아리 활동도 소홀하지 않을 것 같다. 서로를 믿으며 ‘하나의 배’로 세상이라는 바다를 항해하고 있는 이 듬직한 NEST라면 말이다.
조명이 켜지면 무대가 보이고, 어디선가 사람들의 대화가 들려온다. 인물들은 자연스럽게 대화를 나누며 무대로 들어온다. 그들의 극은 이제 시작이다. 앞으로 어떤 ‘기’와 ‘승’을 거쳐 ‘전’과 ‘결’로 나아갈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건 오직 열정이 쏟아지는 무대만이 알고 있을 것이다. NEST는 무대에서 맘껏 뛰어놀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을 즐기고 있다. 연극이라는 춤을 추고 있다.
About NEST
NEST는 2009년부터 활동해온 UNIST 대표 연극 동아리다. 매년 4번씩 정기공연을 하면서 연극에 대한 열정을 뽐내고 있다. 신입생 환영 공연과 1학기 정기 공연, 2학기 정기 공연은 1~2학년이 주축으로 활동한다. 졸업 공연은 3~4학년 등 선배 기수들이 주도적으로 참여한다.
정기공연 외에도 기회가 생길 때마다 외부 공연에도 참여한다. 더 넓은 곳으로 나가 NEST의 이름을 알리는 것은 물론 연극으로 사람들에게 즐거움을 선사하고 싶어서다. 이런 노력의 결과 2014년에는 부산국제영화제 연극 부분에 참가해 상을 받았고, 올해에는 울산시가 주최한 사운드 이미지 연극 <반구대>에 참여하기도 했다. 사진은 <반구대>에 참여할 당시 모습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