석유 가격이 연일 폭락하고 있다. 미국 서부 텍사스의 중질유(WTI) 값은 12년 만에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떨어지는 기록을 세웠다. 2014년 6월만 하더라도 배럴당 105달러 가까이 하던 석유값이 불과 1년 반 만에 30달러가 된 것이다. 도대체 석유시장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한국은 기름 한 방울 나지 않는 나라다. 동해 가스전이 개발되긴 했지만 부족한 게 사실이다. 이렇다 보니 우리나라의 산업은 외국에서 자원을 수입, 가공해 수출하는 형태로 발달하게 됐다. 외국에서 사오는 자원의 값이 싸면 쌀수록 한국 경제는 좋아질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지금처럼 저유가가 지속되는 시기에 한국은 대호황을 누리는 게 당연하다. 그런데 과연 그럴까?
국제 정세와 석유 가격, 그리고 한국 경제
석유 가격에 가장 큰 영향을 주는 요소는 당연히 수요와 공급이다. 수요가 늘거나 공급이 줄어들게 되면 석유는 비싸지고, 수요가 줄거나 공급이 늘어나게 되면 석유는 저렴해진다. 이런 수요와 공급에 따른 가격 변동을 중심으로 다른 요소들도 개입한다.
예를 들어, 사우디와 이란이 사이가 좋지 않으면 공급에 차질이 생길 수 있다. 이는 석유 가격을 올리는 요인이 된다. 또 경우에 따라서는 OPEC의 석유 공급량 조절이 실패해 공급과잉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이는 가격 하락 요인으로 작용한다.
최근 석유 가격이 이렇게 폭락하게 된 데에는 여러 원인이 있다. 가장 큰 요소로 작용한 것은 아무래도 몇 년 전부터 ‘게임 체인저(game changer)’가 될 것이라 강조돼 온 ‘미국의 셰일가스 개발’이다.
미국은 전 세계에서 석유를 제일 많이 소비하는 나라다. 2015년 기준으로 인류는 매일 9200만 배럴 가량의 석유를 소비하는데, 이중 1900만 배럴가량이 미국 소비량이다. 그런 미국이 더 이상 석유를 수입하지 않아도 된다. 이는 곧 남미나 서아프리카 등 미국으로 석유를 수출하던 나라들이 다른 판로를 모색해야 한다는 이야기다.
비슷한 시기에 러시아가 우크라이나를 침공하면서, 러시아산 석유를 많이 쓰던 유럽 심기가 언짢아졌다. 자꾸 문제를 일으키는 러시아 대신 남미나 서아프리카로부터 석유를 수입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제 러시아는 어디에 석유를 팔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이 됐다. 이렇게 석유를 파는 나라들의 고민이 깊어질 때 석유 가격은 내려갈 수밖에 없다.
석유 가격이 급락하자 많은 산업이 경색됐다. 물론 원자재 가격이 하락해 한국 수출기업들에게 원가절감의 기회를 줬다. 하지만 다른 산업들이 함께 위축되면서 한국에서 생산된 제품에 대한 소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이는 수출의 절대량 감소로 이어지게 되고, 결국 한국의 경기에도 영향을 미치게 된다.
석유 유통의 새 흐름, 동북아 시장 열리다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은 이런 석유 시장의 변화에서 출발했다. 기존 석유 유통은 중동지역에서 대부분을 공급받는 단순한 형태였다. 이것이 확장된 파나마운하를 통해 텍사스 연안 또는 베네수엘라, 캐나다 서부, 동시베리아 등 다양한 경로로 공급받는 방식으로 변하고 있다. 석유가 중동에서 싱가포르를 거쳐 동북아 지역으로 들어오는 게 아니라 바로 태평양 건너 동북아 지역으로 유입되는 것이다.
동북아 지역은 석유 소비량이 늘고 있는 거의 유일한 지역이다. 새로운 판로를 모색하고 있는 많은 공급자들은 동북아 시장의 지속적인 소비 증가에 눈독 들일 수밖에 없다. 이런 배경에서 많은 이들이 미국 텍사스 연안, 유럽 암스테르담-로테르담-안트워프 지역, 싱가포르 등 기존 3대 오일허브 외에 동북아 지역을 중심으로 한 새로운 시장의 가능성을 본 것이다.
동북아 오일허브 사업의 진정한 성공은 물리적 기반을 바탕으로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현재 물리적 기반은 순조롭게 잘 갖춰지고 있다. 제도나 규제 등도 어느 정도 우호적으로 바뀔 전망이다. 오일허브가 순조롭게 유치된다면 한국이 세계 4대의 오일허브로 올라설 수 있다. 석유 산업이 우리나라의 미래 새로운 먹거리 중 하나가 되는 것이다.
동북아 오일허브의 주인공, 오일 트레이더
현재 우리나라는 오일허브 사업 기반을 구축하기 위해 석유 저장시설을 짓고 있다. 저장과 항만시설에 대한 기반이 충분히 갖춰지면 여러 사업을 구상할 수 있다. 가장 먼저 떠올릴 수 있는 사업은 싼 가격에 석유를 사서 보관해두었다가 가격이 비싸지면 되파는 형태다.
또 몇 종의 석유들을 섞어서 부가가치가 더 높은 제품을 만들어 판매하는 방식도 있다. 큰 배에 실려 태평양을 건너온 석유를 작은 배에 나눠 담고 배들이 정박하기 힘든 중국의 소규모 정유소들로 판매하는 사업도 추진할 수 있다. 이밖에도 동북아 오일허브를 중심으로 새롭게 구상할 수 있는 비즈니스는 무궁무진하다.
이렇게 부가가치를 높이는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오일 트레이더(Oil Trader)’다. 세계 유수의 오일 트레이더들이 울산항의 미래에 관심을 가지고 지켜보고 있다. 이들을 유치하는 것과 동시에 초기 오일 트레이더들을 지원하고 새 오일허브의 주인이 될 전문인력을 양성하는 일에도 관심을 쏟아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UNIST는 2012년부터 한국 최초로 에너지상품거래의 전문가를 양성하는 대학원 프로그램을 운영 중이다. 동북아 오일허브 발전이 어떤 이야기를 풀어낼지 아직 구체적인 그림을 그리기는 어렵다. 한 가지 분명한 것은 UNIST의 에너지상품거래 전문가들이 가까운 미래에 동북아 오일허브의 주인이 되어 울산항을 지휘하게 될 것이라는 점이다.
글_ 서병기 경영학부 교수
서병기 교수는 경영학부에서 재무회계학을 가르치며, UNIST 융합경영대학원의 에너지상품거래 및 금융공학(ECTFE) 프로그램의 코디네이터도 맡고 있다. 가격책정 변형옵션, 에너지 상품 시장분석, 담보물, 신용거래, 세금, 원가 규정에 대한 구조화, 에르고드 이론을 포함한 금융 수학에 대해 연구한다.
에너지상품거래 및 금융공학 과정(Energy Commodity Trading & Financial Engineering)은 UNIST 융합경영대학원에서 운영 중이다. 이 프로그램에서는 학생들에게 에너지 상품 시장에 영향을 미치는 요소를 예측할 수 있도록 교육한다. 이 과정은 국제재무, 재무위험관리, 공급사슬관리, 파생 등 에너지 상품 분야 전문 트레이더가 되기 위한 지식 및 기술 습득을 돕는다. 에너지상품거래 및 금융공학 과정을 이수한 후에는 에너지 회사의 재무관리, 에너지 산업 관련 과제, 에너지 거래와 위기관리, 금융회사의 에너지 거래 부서 등 에너지 관련 다양한 분야의 전문가로 진출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