굶주리지 않기 위해, 번듯하게 살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인간성을 상실해왔다. 행복하게 살고 싶다는 희망이 커질수록 타인에 대한 배려나 애정은 줄어들었다. 하지만 어려움 속에서도 끝까지 인류에 대한 애정을 잃지 않았던 사람이 있다. 인간성 회복을 꿈꾸며 위대한 업적을 남긴 여성과학자, ‘리제 마이트너(Lise Meitner)’다.
지난 2014년 네이처가 선정한 세계 6대 과학성과 중 하나가 ‘핵분열’이다. 핵분열은 무거운 원자핵이 가벼운 원자핵으로 쪼개지면서 전체 질량에 차이가 생겨(질량결손)에너지를 방출하는 현상이다. 원자력발전으로 전기를 얻을 수 있는 까닭이 바로 여기 있다.
핵분열의 기본 원리는 알버트 아인슈타인(Albert Einstein)이 찾아냈다. 그는 특수상대성 이론으로 질량과 에너지가 등가(E=mc2)이며, 작은 질량도 막대한 에너지로 변환될 수 있다는 놀라운 원리를 깨달았다. 하지만 질량을 에너지로 바꾸는 방법을 알지 못했다.
여기서 한 발 더 발전시킨 과학자가 바로 오스트리아의 여성과학자, 리제 마이트너다. 그녀는 75년 전 네이처에 2편의 논문을 발표하면서 핵분열의 개념을 정립했다. 독일의 과학자 오토 한(Otto Hahn)의 우라늄 실험에서 방출된 에너지가 질량에서 기인한 것임을 밝혀낸 것이다.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심했던 당시에 그녀가 낸 위대한 성과는 인간으로서 자신의 존재를 꿋꿋하게 지켜낸 대목이라 할 수 있다.
고난과 함께 시작한 리제 마이트너의 연구
19세기 오스트리아에서 여성이 고등교육을 받기는 쉽지 않았다. 하지만 그녀는 스무 살을 넘긴 나이에 어렵게 빈 대학교에 입학했다. 루트비히 볼츠만(Ludwig Boltzmann)의 강의와 마리 퀴리(Marie Curie)의 라듐 발견에 자극받아 핵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했고, 여성으로는 빈 대학교 역사상 두 번째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받았지만 여전히 여성과학자의 길은 순탄치 않았다. 독일로 건너가 막스 플랑크(Max Planck)의 지도를 받았지만 여성이라는 이유로 강의를 듣는 것도 쉽지 않았다. 플랑크의 전폭적인 지원에도 불구하고 여성의 학교 출입이 어려워 청소부들이 사용하는 지하 뒷문으로 출입해야 했던 것이다.
그나마 다행스러웠던 건 얼마 지나지 않아 실험물리학자로 함께 연구할 이론 물리학자를 찾던 오토 한의 공동연구 제안을 받아들이게 된 것이다. 물론 여성의 연구소 출입 자체가 금지된 터라, 그녀는 연구소 밖에 있던 목공용 지하실에 연구실을 꾸려야 했다. 이런 어려운 환경에서도 그녀는 1918년, 91번째 원소인 프로탁티늄(Protactinium, Pa)을 발견하게 된다.
이 성과로 리제 마이트너는 1926년 독일에서 별정직 교수로 발탁됐다. 독일 역사상 최초의 여성 물리학 교수였던 것이다. 또한 1924~1925년에는 프로탁티늄을 발견한 공로로 노벨화학상 후보에도 오르게 된다.
인간성을 결코 잃지 않았던 물리학자
혁혁한 성과 뒤에는 곧 더 큰 시련이 찾아왔다. 나치정권이 1933년에 권력을 잡으면서 유대인인 마이트너는 더 이상 강의를 할 수 없게 됐고, 교수직마저 박탈당했다. 신변의 위협을 느낀 마이트너는 스웨덴으로 피난을 갔다. 이런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그녀는 서신으로 오토 한과 공동연구를 계속하며 핵분열의 원리를 규명했다.
하지만 1944년 한은 노벨화학상을 단독으로 수상하게 된다. 리제 마이트너는 여성이자 유대인인데다 보조연구원이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녀는 자신의 역할이 한의 보조 연구원이 아니라고 해명했지만 소용없었다.
1945년 마이트너가 발견한 핵분열의 원리를 바탕으로 히로시마에 원자폭탄이 투하되었다. 그녀는 원자폭탄의 여신으로 제2차 세계대전 승리와 맞물려 엄청난 유명세를 탔지만, 본인이 발견한 막대한 에너지가 무기로 쓰인다는 사실에 힘들어했다.
최고의 대우를 보장한 미국의 맨해튼 프로젝트의 참가 권유에 다른 유대인 과학자들은 적극 동참했다. 하지만 그녀는 과학이 인류 삶에 공헌해야 한다는 확고한 신념으로 뿌리쳤다. 그녀는 각종 강의와 인터뷰, 대담을 통해 핵분열로 생기는 엄청난 에너지를 평화적인 목적으로 사용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여든 가까이 원자력의 평화적인 이용을 촉구하는 활동을 계속했다.
그런 마이트너의 묘비에는 ‘인간성을 결코 잃지 않았던 물리학자(A Physicist who never lost her humanity)’라는 말이 새겨져 있다.
리제 마이트너, 그녀가 남긴 메시지
자신의 신변을 시도 때도 없이 위협하는 거대한 권력 앞에서 그녀의 결단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일부 과학자들은 민감한 과학기술을 순전히 개인의 영달을 위해 밀거래하기도 한다. 북한 핵무기 개발의 핵심기술인 우라늄 농축도 파키스탄의 개인 과학자의 밀거래를 통해서 기술 전수가 이뤄졌다.
하지만 그녀는 단 한 번도 인류의 삶에 공헌하는 과학기술에 대한 의지를 굽히지 않았고, 자신의 연구결과에 대한 사회적 책임도 회피하지 않았다. 문제는 이런 과학의 양면성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는 점이고, 우리의 연구도 여기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것이다.
과학이 인류의 삶에 공헌하기까지 수많은 고민과 노력을 필요로 하는 만큼, 올바른 사용에 대한 과학자 개개인의 굳건한 의지가 모여 더 나은 과학, 더 나은 세상이 되는 것이 아닐까. 우리의 인간성이 흔들릴 때마다 위대한 과학자 리제 마이트너의 메시지를 곱씹어 볼 일이다.
글_ 최성열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교수
최성열 교수는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에서 핵연료주기 공학 실험실(NCEL)을 운영하고 있다. 이곳에서 최 교수는 핵연료주기, 사용후핵연료, 방사성폐기물, 용융염, 파이로프로세싱과 재활용, 지질학적 저장소, 발전적수용체, 폐기물 변성, 핵확산방지, 핵안보 등을 연구하며 안전하고 깨끗한 방사성 폐기물 관리 방안을 찾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