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나 이름만 들으면 고개를 끄덕이지만 사실 자세한 내용은 모르는 명작들이 있다. 과학자 중에서 그런 명작 같은 인물을 꼽으라면 아인슈타인을 들 수 있다. 얼굴도 이름도 마치 옆집 할아버지처럼 친근하지만, 그가 무슨 일을 했고 어떤 업적을 남겼는지 말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다. 올해 초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중력파 발견으로 다시금 주목받고 있는 아인슈타인을 이번에는 제대로 한번 이해해보자.>
지난 2월 12일 전 세계 언론은 일제히 인류가 최초로 중력파 검출에 성공했다는 뉴스를 대서특필했다. 기사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면 이렇다. 지구에서 13억 광년 떨어진 우주의 어느 곳에서 태양보다 29배, 36배 무거운 두 개의 블랙홀이 마지막으로 합쳐지는 순간에 방출된 중력파를 2015년 9월 14일 지구에서 검출했다는 것.
아쉽게도 우주의 어느 곳인지를 아직 정확히 밝힐 순 없었지만 13억 광년, 29배, 36배와 같은 정보를 얻을 수 있게 된 건 우리가 잘 아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 덕분이다. 아니, 보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아이슈타인의 일반상대성 이론은 이 정도로 정밀하게 중력파의 존재를 예측한다.
아인슈타인이 일반상대성 이론 논문을 발표한 해가 1915년이고, 중력파가 처음 검출된 2015년은 공교롭게도 논문 발표 후 꼭 100년이 된다. 전 세계 언론이 ‘중력파, 이론 예측 후 100년 뒤 발견’을 굳이 강조하는 이유다. 흥미롭게도 2015년은 UN이 정한 ‘세계 빛의 해’였는데 이 역시 1915년에 발표된 일반상대성 이론과 깊은 관련이 있다. 일반상대성 이론에 따르면 중력 때문에 빛조차도 휠 수 있기 때문이다. 아이슈타인을 빛의 아버지라 부르는 이유다.
빛의 아버지, 아인슈타인
이번 중력파 검출로 다시 한 번 사람들의 눈길을 끈 아인슈타인은 많은 물리학자들의 로망이자 꿈의 시작이라 할 수 있다. 어릴 때 아인슈타인 전기를 읽고 물리학자를 꿈꾼 사람이 어찌 필자 혼자뿐이었을까? 과학을 잘 모르는 일반인을 상대로 물리학자, 아니 모든 과학자를 대표하는 인물을 한명 꼽으래도 단연 아인슈타인을 이야기할 것이다.
오늘날 아인슈타인은 천재를 나타내는 대명사이기도 하다. 그래서인지 똑똑해지길 원하는 제품의 이름으로 사용되기도 한다. 아인슈타인이 남긴 업적과 그의 삶에 관한 이야기 역시 대중적이다. 여러 서적과 미디어를 통해 그를 쉽게 접할 수 있다. 사후 아인슈타인의 뇌를 보관해서 연구하고 있다는 미스터리한 이야기가 미디어에 방영될 정도로 아인슈타인에 관한 관심은 과학적 업적을 넘어 인간 아인슈타인에 대한 관심으로까지 확장되고 있다.
▲지난해 3월 중력파 관측을 기뻐하는 LIGO 연구진의 모습
하지만, 많은 사람들을 적잖게 당황시킬 수 있는 사실 중 하나가 노벨상에 관한 아인슈타인의 업적이다. 아인슈타인에게 노벨 물리학상을 수여한 결정적 업적은 중력파를 예측한 일반상대성 이론도, 원자폭탄의 이론적 원리를 제공했던 그 유명한 방정식인 E=mc²을 유도한 특수상대성 이론도 아니다.
그에게 노벨상을 안긴 연구는 광전 효과를 설명하기 위해 도입한 빛의 입자성에 관한 이론이었다. 그는 빛이 입자이면서 동시에 파동이라는 빛의 이중성을 제시함으로써 이전까지 가지고 있던 빛에 대한 선입견을 깨뜨린 것이다.
아인슈타인이 활동했던 1900년대 초반은 물리학의 황금기였다. 오늘날 우리가 사용하는 전자제품의 작동원리를 제공하는 양자역학 또한 이 시기에 정립됐다. 그런데 양자역학의 시작을 알리는 중요한 단초를 제공한 것이 바로 빛의 이중성이었다. 결국 아인슈타인이 제시한 빛의 입자성에 관한 이론이 양자역학의 정립에도 공헌한 것이다. 아인슈타인에게 주어진 빛의 아버지라는 별칭은 어쩌면 일반상대성보다는 빛의 입자성에 관한 이론에 더 어울리는지도 모른다.
인간 아인슈타인을 상상하다
지금은 조금 다를 수 있지만 필자가 대학을 다니던 시절 물리학을 전공으로 선택한 많은 학생들의 꿈은 ‘물리학으로 밥을 먹고 사는 것’이었다. 지금 필자는 운 좋게도 그 꿈을 이뤄 직업을 묻는 칸에 ‘물리학자’라고 적을 수 있게 됐다. 아직 학문과 인생을 논할 수 있는 경지에 이르지 못한 초보 학자지만, 물리학자가 되면서 어릴 때 막연히 동경했던 천재 아이슈타인을 이제 는 조금 다른 눈으로 볼 수 있게 됐다.
필자에게는 아인슈타인이 천재이자 동경의 대상이었던 인물에 머물지 않는다. 이제 그는 물리학자이자 인생의 선배로서 더 크게 다가온다. 제2차 세계대전 중 히틀러의 유대인 탄압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고향을 떠나 미국에 정착해야 했던 그가 타국에서 느꼈을 ‘이방인’의 감정을 떠올려 보기도 하고, 대학 졸업 후 스위스 특허청에서 일하며 물리학자의 꿈을 접을 뻔했던 그의 심정을 상상해보기도 한다.
유명인이 치러야 하는 대가일 수도 있겠지만 가족을 포함한 아인슈타인의 개인 생활은 전 세계인이 다 알 만큼 공개돼 있다. 관심 있는 이는 지금 당장 인터넷으로 아인슈타인을 검색해도 되고, 아인슈타인에 관한 수많은 전기 중 하나를 찾아 읽을 수도 있다. 자신의 평범한 일상이 더 이상 평범한 게 아닌 상황을 아인슈타인은 어떻게 생각했을까?
짧은 지면을 통해 아인슈타인의 많은 면을 소개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다만 중력파를 예언한 천재 아인슈타인에게도 ‘천재 과학자’의 삶뿐 아니라 ‘평범한 일상’이 있었다는 당연한 사실을 이야기하고 싶다.
누군가의 인생을 판단할 권리는 아무에게도 없지만 천재 아인슈타인의 삶을 들여다보면서 자신의 인생과 비교해보는 것은 나만이 누릴 수 있는 자유이자 권리이기도 하다. 내가 ‘천재’가 아니면 어떤가? 나에게는아인슈타인이 누리지 못한 ‘평범한 일상’이 있는데.
글_ 곽규진 자연과학부 교수
곽규진 교수의 관심 분야는 천체 물리학 플라스마와 테라헤르츠 어플리케이션 연구를 위한 병렬컴퓨팅시뮬레이션이다. 그는 현재 UNIST 자연과학부 물리학과에서 전산유체역학, 천제물리학과 실험실 플라스마,방사선 유체역학, 원자력, 원자, 분자 반응 등을 연구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