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문명을 연결한 실크로드, 19세기에 처음 등장한 이 개념은 전 세계가 하나가 된 현재까지도 여전히 유효하다. 세계의 인재들이 자신의 꿈을 펼치기 위해 국가의 장벽을 허물고 다양한 실크로드를 따라 움직이고 있기 때문이다. 마흐무트는 5년 전 이 길을 따라 UNIST에 정착했다. 현재 진행 중인 그의 꿈 이야기를 들어보자.
5년 전, 고등학생이던 마흐무트 사이트 오키아이(Mahmut sait okyay)는 터키에 있는 명문대학교 입학이 결정된 상태였다. 아무 고민 없이 10대의 끝자락을 누리던 당시, 그는 갑작스럽게 UNIST를 만나게 됐다. 주재술 입학팀장이 터키를 방문해 대한민국의 울산에 새로 생긴 학교를 소개한 것이다. 학교 설명을 듣던 마흐무트에게 호기심이 일었다. 아직 어리니 잠깐 해외생활을 하다가 돌아와도 큰 무리가 없을 것 같았다. 그렇게 10대 소년은 입학이 예정된 학교에 휴학계를 내고 한국행 비행기에 올랐다.
걸음마부터 시작한 한국 생활
사실 마흐무트는 한국에 오기 전까지 터키를 벗어난 적이 없었다. 게다가 터키에서도 제 손으로 식사를 차려본 적도 없는 귀한(?) 자식이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영어마저 서툴러서 필수적인 의사소통에도 애를 먹어야 했다.
정착 초기에는 쌀밥과 김치가 빠지지 않는 낯선 한국 음식을 엄두조차 내지 못했다. 그래서 학생식당을 이용해야만 하는 점심시간은 끼니를 건너뛰기 일쑤였다. 그렇게 두어 달이 지나는 동안 마흐무트는 아침에 잠을 깰 때마다 ‘내가 여기서 지금 뭐하는 걸까’라는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때마다 그는 UNIST 캠퍼스를 걸었다.
“UNIST 캠퍼스에 도착했을 때 첫인상이 무척 좋았죠. 터키에서는 이렇게 아름다운 대학 캠퍼스를 본 적이 없었거든요. 잔잔한 호수와 푸른 잔디가 곱게 깔린 캠퍼스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평온해졌어요.”
홀로 타지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을 때 그에게 힘이 되어준 이가 있다. 바로 자연과학부 물리학과의 박노정 교수다. 박 교수는 서툰 영어로 거침없이 궁금한 점을 묻는 마흐무트에게 성심껏 대답해줬다. 열정 넘치는 그를 자신의 연구실로 불러 이것저것 진로에 대한 상담도 해주었다.
“박 교수님의 연구실을 자주 방문한 이후부터 언제든지 터키로 돌아갈 수 있다는 마음을 버렸어요. 그리고 UNIST에 단단히 뿌리내리게 됐습니다.”
결국 마흐무트는 학부 2학년 때부터 박노정 교수의 실험실에서 연구를 시작하게 됐다. 그저 어떤 학교인지 궁금해 생전 처음 들어본 도시로 왔는데, 본격적인 연구 인생이 시작된 것이다.
연구를 위한 모든 게 준비된 캠퍼스
마흐무트는 터키에서 수학 올림피아드를 준비할 만큼 수학을 좋아했다. 대학 전공도 수학으로 선택할 예정이었다. 하지만 그가 UNIST에 입학할 당시에는 수리학과가 개설되기 전이었다. 기대했던 학과가 없어 당황하지는 않았을까?
“수학과 가까운 학문인 물리학이 있어서 걱정 없었어요. 당시에는 물리학이 대안이었지만, 지금은 정말 잘한 결정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요. 제가 좋아하는 수학적 지식을 활용해 우주 공간의 아름다움을 이해하는 연구를 하게 됐거든요.”
마흐무트의 연구 분야는 이론물리 및 전산응집물리다.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통해 원자 크기 물질의 물리적 성질을 관찰하고 이론화하는 게 주된 연구다. 이 과정에서 수학적 지식은 필수다. 결국 그는 좋아하는 것을 찾아 마음껏 연구하는 행운을 누리게 된 것이다.
“UNIST는 교수부터 학부생까지, 연구하는 이들에게 모든 기회를 아낌없이 제공하고 있어요. 게다가 세계에서 이미 두각을 드러낸 젊고 에너지 넘치는 연구자들이 모여 있고요. 제가 할 일은 마음을 편하게 먹고 연구에 집중하는 것뿐입니다. UNIST는 연구를 위한 모든 게 준비된 곳이죠.”
박 교수의 실험실은 학부생들도 연구를 할 수 있도록 독려하는 분위기다. 덕분에 마흐무트는 연구에 대한 호기심을 마음껏 펼칠 수 있었다. 특히 UNIST는 관심만 있으면 학년에 상관없이 다양한 과목을 자유롭게 들을 수 있는 커리큘럼을 운영하고 있다. 이 점 역시 그가 학문적으로 만족스러운 성취를 얻는 데 도움을 줬다.
그렇게 연구에 집중하는 동안 마흐무트는 자연스럽게 한국 생활에 익숙해졌다. 그러다 보니 초보 유학생이었던 마흐무트가 어느새 새내기 외국인 학생들의 엄마 같은 존재가 돼 있었다.
“신학기가 되면 거의 매주 학생 서너 명씩 저녁 초대를 해요. 해외에 와서 적응하는 동안 음식이 입에 안 맞는 경우가 많거든요. 외국인으로서 어려움을 직접 겪어봐서 뭐가 필요한지 잘 알고 있어요. 학교 측에서 지원하는 프로그램도 좋지만 실제 유학생의 삶 속에서 접근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해 UNIST 외국인 학생회(UNIST International Student Organization, UISO)의 터키 대표로도 활동했습니다.”
세계시민으로서의 연구, 울산에서 한 걸음 떼다
마흐무트는 올해로 5년째 UNIST에 머물고 있다. 석박사 통합과정으로는 두 번째 학기를 맞았다. 터키로 돌아가거나 다른 나라도 갈 수 있었을 텐데 UNIST를 고집한 이유가 궁금했다.
“다른 학교에서 새로운 경험을 해볼까 고민한 적은 있어요. 하지만 이곳에 처음 도 착해 적응해야 할 외국인 유학생이 눈에 밟혔죠. 그들의 고충을 잘 아는 제가 도와줘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물론 UNIST가 물리학 연구를 하기에 좋은 환경이라는 게 뒷받침이 됐기 때문에 가능한 이야기지만요.”
낯선 외국인이었던 그는 어느새 5년차 UNISTAR로서 울산과 한국, 세계를 아우르는 세계시민으로 거듭났다. 앞으로도 UNIST에서 더 크게 성장하며, 각국의 친구들과 에너지를 나누고 싶다는 마흐무트. 그가 이루고 싶은 궁극적인 꿈은 무엇일까.
“석박사 통합과정을 마친 후 교수가 되고 싶습니다. 과학자로서 연구를 통해 새로운 것을 발견하는 것도 좋고, 과학지식을 학생들에게 가르치고 퍼뜨리는 보람도 느끼고 싶어요. 과학자와 교사가 교차하는 지점에 있는 게 바로 교수라고 생각했어요. UNIST 교수가 되면 금상첨화겠죠?”
UNIST에서 세계 각국의 학생들과 교류하며, 인류를 위한 미래 기술을 연구하고, 다음 세대를 위한 가르침까지 준비하고 있는 마흐무트. 그의 야심찬 꿈이 캠퍼스의 푸른 잔디처럼 나날이 생명력을 더해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