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가면 빨리 가고 함께 가면 멀리 간다’는 말이 있다. 큰 꿈을 꾸고 이루기 위해서 협업은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됐다. 스타트업 전문 투자기관인 선보엔젤파트너스가 세계적인 기술을 개발하는 UNIST의 문을 두드렸다. 동남권에서 걸출한 기술벤처를 발굴하고 양성할 기분 좋은 프로젝트가 시작됐다.
좋은 기술도 적재적소에 쓰이지 않으면 무용지물이 되기 마련. 밤낮 없이 연구한 결과물을 가지고 사업화에 나설 때 고민하게 되는 이유다. 그래서 UNIST 기술사업화센터에서는 대학의 연구 결과가 사회로 스며들 수 있도록 다방면으로 힘쓰고 있다.
이런 UNIST의 행보를 지켜보던 선보유니텍과 선보엔젤파트너스(이하 선보엔젤)가 유니스트길을 찾았다. 선보유니텍은 UNIST의 기술사업화와 창업지원을 위해 5억 원을 기부하기로 약속했고, 이를 바탕으로 올해 안에 UNIST 캠퍼스 내에 기술지주회사를 설립할 예정이다.
‘제2의 말뫼’를 꿈꾸는 울산
선보엔젤은 스웨덴 말뫼처럼 동남권 경제 불황을 극복하기 위해 울산을 찾았다. 말뫼는 어업과 조선업이 강한 항구도시로 명성을 이어왔다. 그러나 1970년대 말 한국과 일본이 조선업 신흥국으로 등장하면서 위기를 맞았다. 1986년에 세계 최대 조선소인 코쿰스가 폐쇄됐고, 1990년에는 실업률이 22%까지 상승했다.
그러나 말뫼의 이야기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폐쇄된 코쿰스 조선소를 창업보육센터로 탈바꿈시켜 혁신기술 중심의 스타트업 생태계를 조성한 덕분이다. 이후 120여 개의 스타트업이 인수합병(M&A), 기업공개(IPO) 등을 통해 성공적으로 정착했고, 스타트업을 꿈꾸는 인재들이 국경을 뛰어넘고 몰려들어 도시 인구의 31%가 외국인이 될 정도였다. 망한 조선업의 도시가 최고의 창업도시로 변모한 것이다.
“선보는 세계 최초로 배의 부품들을 한 단위로 묶어서 생산하면서 조선업계의 생산성도 혁신적으로 높였습니다. 그런데 최근 우리나라 조선업의 경쟁력이 떨어진 데다 세계적인 불황도 맞물려 수출액이 지속적으로 줄고 있어요.”
선보가 겪고 있는 어려움은 우리나라 조선업 전체와도 연결돼 있다. 이 난국을 타계하기 위해 선보엔젤은 대학과 제조기업이 만나야 한다고 생각했다.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함께 연구개발에 나서면 새로운 성장동력을 만들어 낼 수 있다고 본 것이다.
앞서가기 위한 선보의 선택은 UNIST!
선보엔젤이 ‘제2의 말뫼’를 위한 파트너로 UNIST를 택한 이유는 무엇일까?
“동남권의 제조 기반과 혁신기술을 융합하려면 지역의 생태계와 밀접하면서 글로벌 경쟁력을 가진 혁신기술 네트워크가 필요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저희에겐 UNIST가 최적의 파트너입니다.”
최 대표는 UNIST 캠퍼스 안에 선보엔젤 사무소를 설치할 예정이다. 실리콘밸리에는 많은 벤처캐피털들이 우수한 대학 근처에서 협업하며 기술사업화와 창업을 성공적으로 진행하지만 국내에는 이런 사례가 드물다. UNIST와 선보엔젤이 함께 나선 이 프로젝트는 대학과 민간 투자사가 협력해 기술벤처 창업을 지원하는 최초의 시도다.
보통 벤처캐피털은 이미 매출이 나오는 기업에 투자해 수익을 얻는다. 그런데 선보엔젤은 창업 초기에 투자하고 사업에 성공할 수 있도록 멘토링하려고 한다. 이를 위해 사업으로 꾸릴 만한 아이디어나 특허를 가진 사람을 찾아야 하는데, 이 부분에서도 UNIST는 강점을 가지고 있다.
그런데 수익을 목적으로 하는 투자사에겐 이 모델이 너무 위험하지 않을까. 처음에는 UNIST 기술사업화센터의 김현욱 팀장 역시 그렇게 생각했다. 하지만 시장에서 필요한 혁신적인 기술을 만들어 세상에 선보인다는 측면에서 생각하면 꼭 위험한 일만은 아니었다.
“요즘은 방향만 제대로 잡고 노력하면 시장에서 좋은 아이디어를 알아보는 시대입니다. 선보엔젤과 UNIST의 목적은 수익이 나는 사업을 쫓는 게 아니에요. 세상에 필요한 기술과 아이디어를 사업화하는 것입니다. 이런 측면에서 생각한다면 선보엔젤은 오히려 수익성보다 더 큰 가치를 만들어 가는 거예요.”
선보, UNIST의 엔젤이 되다
아직 선보엔젤의 사무소는 설치되지 않았지만, UNIST와 선보엔젤의 협업은 이미 시작됐다. 기계 및 원자력공학부의 김건호 교수가 연구하는 ‘무약품 초고속 마취기기’의 시제품을 만들고 싶다고 기술사업화센터에 도움을 요청했던 것.
“회의을 잡고 김 교수님 연구에 관한 투자유치설명회(IR)를 가졌어요. 선보엔젤은 김 교수에게 투자를 결정했고 추가 연구비를 더 지원할지에 대해서 논의 중이에요.”
옆에서 김현욱 팀장의 말을 듣고 있던 최영찬 대표가 UNIST에 입주하는 선보엔젤의 역할에 대해서도 설명을 더했다.
“선보엔젤은 창업할 수 있도록 투자하는 것 외에도 기업의 성장에 필요한 지원까지 생각하고 있습니다. 기술을 중심으로 창업하는 경우에는 아이디어 외에 다른 부분이 약하기 쉬워요. 그래서 시장에 대한 분석, 마케팅 등 사업에 필요한 조언과 네트워킹 부분까지 자문하면서 멘토 역할까지 할 계획입니다.”
시종일관 웃으며 대화를 나누는 두 사람의 모습에서 건강한 파트너십을 느낄 수 있었다. 이제 첫걸음을 뗀 UNIST와 선보엔젤의 특별한 동거가 멋진 결실을 맺고, 전 세계에 한국의 과학기술을 퍼뜨리길 기대해본다.
UNIST MoU with Sunbo Angel Partners
지난 9월 2일 UNIST는 선보유니텍, 선보엔젤파트너스와 산학협력 양해각서(MOU)를 교환하고 지역 벤처 창업 생태계 조성과 산학협력 활성화, 지역 기업 신성장 동력 창출에 협력을 약속했다. 조선기자재기업 선보유니텍이 UNIST에 기부한 5억 원으로 설립된 기술지주회사에서 UNIST는 보유 기술을 사업화하고, 기술사업화 자회사에 지식, 인력, 인프라 등을 제공할 예정이다. 예비 창업자를 위해 별도 시설을 마련해 기술 발굴, 투자금 지원, 글로벌 시장 진출 등도 지원할 계획이다.
또한 선보엔젤파트너스는 UNIST에 사무소를 설치하고 UNIST 기술지주와 협력해 기술사업화 기업, 유망 스타트업의 발굴 및 투자에 나선다. 내외부 전문가 집단을 활용한 멘토링도 진행해 UNIST에서 동남권 벤처 창업을 이끌 초석을 다지고자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