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 학교 수업을 듣고 과제를 한다. 주말이면 잠깐 쉬었다가 다시 똑같은 날들이 반복된다. 이런 엇비슷한 날들이 지루하다면? 변화를 꿈꾸지만 용기가 없다면? 여기에 소개된 이들을 만나보길 권한다. 직접 부딪치고, 사서 고생하며, 크게 깨닫는 UINSTAR들을 소개한다.
마음 내키는 대로 떠도는 백패킹의 매력
최규섭(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12) 학생과 김병모(기계 및 원자력공학부, 12) 학생은 지난 여름방학 때 러시아 캄차카 지방을 다녀왔다. 러시아 북동부 지방에 위치한 캄차카 반도는 험준한 산악 지형으로 이뤄졌으며, 보는 이를 압도하는 화산들로 유명하다.
둘은 캄차카에서 같이 걷고 쉬고 마셨다. 밤하늘을 바라보며 야영도 같이 했다. 이후 일본 후지산에도 다녀왔다. 백패킹의 매력에 흠뻑 빠진 두 학생은 이 짜릿한 행복을 다른 사람들과 나누고 싶었다. 그렇게 ‘유니힐’이 탄생했고, 지금까지 신입생과 대학원생까지 포함해 총 열두 명의 학생들이 유니힐의 일원이 됐다.
유니힐은 올해 만들어진 UNIST 유일의 백패킹 모임이다. 백패킹이란 ‘짊어지고 나른다(backpacking)’는 뜻으로, 야영에 필요한 장비를 갖추고 1박 이상의 일정으로 산과 들을 자유롭게 떠돌아다니는 여행을 말한다. 이 이야기를 들어보기 위해 유니힐을 만났다. 최규섭, 김병모 학생 외에도 이근우(도시환경공학부, 12), 윤기혁(신소재공학부, 12), 임도연((구)나노생명화학공학부, 11) 학생이 인터뷰에 함께했다.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일이에요.”
김병모 학생은 백패킹을 이렇게 표현했다. 모든 것이 갖춰진 안락한 집을 떠나 문명의 이기가 없는 자연으로 떠나는 일이다. 아스팔트가 깔린 길이 아닌 자연의 울퉁불퉁한 길들을 매일 수십 km씩 걸어야 한다. 먹는 것도 잠자는 것도 직접 해결해야 한다. 몸도 마음도 잘 준비하지 않으면 힘들 수밖에 없는 백패킹. 그들은 여기서 어떤 매력을 느꼈을까.
“불편하죠. 포기하고 싶은 유혹도 있어요. 하지만 백패킹을 해야만 경험할 수 있는 것들이 어렵고 힘든 부분을 상쇄해줘요. 힘들게 걷다가 잠시 쉬면서 주변을 돌아보면, 믿기 힘들 만큼 아름다운 산과 하늘이 보이거든요.”(김병모 학생)
김병모 학생은 백패킹의 매력으로 ‘성취감’도 꼽았다. 힘든 만큼 ‘해냈다’는 쾌감도 크게 돌아오기 마련이라는 것. 트래킹을 하는 동안 만난 자연 풍경과 사람들에 대한 추억 역시 빠질 수 없다.
왜 ‘유니힐’이어야 했을까
UNISTAR로서 학업과 동아리 활동을 병행한다는 건 부담이 될 것 같았다. 하지만 학생들은 고개를 저었다.
“재밌잖아요. 제가 재미있어 하는 일을 하니까 전혀 힘들지 않아요.”(윤기혁 학생)
“삶에서 어떤 것을 성취하고 기쁨을 느낄 기회가 많지 않은 세상 같아요. 항상 경쟁하면서 1등을 위해 싸우잖아요. 1등이 아닌 나머지는 좌절하기 마련이죠. 백패킹은 그럴 필요가 없어요. 자기 자신하고만 싸우면 되거든요. 남의 발걸음에 뒤처지지 않기 위해 애써 뛸 필요가 없어요. 그렇게 걷다 보면 흘린 땀에 대한 정당한 보상을 받게 되죠.”(이근우 학생)
누군가에게는 재밌는 일, 누군가에게는 남과 싸우지 않고 1등을 위해 달리지 않아도 충분히 가치 있는 일이다. 유니힐 구성원들은 최고만을 향하지 않는다. 대신 그들의 마음에는 도전에 대한 순수한 열망이 가득하다. 부딪치고 도전하는 건 청춘만이 가질 수 있는 특권이라고 믿는다.
물론 공부하고 연구하는 바쁜 시간을 쪼개 백패킹에 나서는 건 쉬운 결심이 아니다. 하지만 몸과 마음의 건강이 무너지면 그다음은 더 어렵게 된다. 임도연 학생은 신입생 시절 과제에 치여 우는 날이 많았다. 그 무엇보다 체력의 중요성을 느꼈다. 더불어 학업 스트레스를 풀 창구 또한 필요했다. 몸과 마음을 관리해야 한다고 느끼다 보니 자연스럽게 유니힐의 문을 두드리게 됐다고 한다.
부담은 나누고 도전은 크게! “우리는 길을 개척한다”
가방을 매고 하는 트래킹이지만 야영하는 만큼 적지 않은 준비물이 필요할 터. 계절에 상관없이 두꺼운 외투는 필수다. 텐트와 스토브, 침낭, 먹을거리, 우비는 물론 컵과 휴지, 쓰레기봉투 같은 상식적인 준비물들도 챙겨야 한다. 부담이 되지는 않을까 생각했지만 최규섭 학생은 전혀 그렇지 않다고 말했다.
“1인용 텐트는 5만 원 정도면 구할 수 있어요. 2~3인용 텐트처럼 좀 비싼 물품은 ‘공동구매’를 이용하면 개인 부담금이 줄어들어요. 모두 즐기기 위해서 참여하는 모임이기 때문에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고 운영하고 있어요.”
인터뷰 당일(10월 12일), 유니힐은 10월 29일 첫 정기모임을 앞두고 있었다. 그들은 신불산에서 출발해 간월재, 운문산자연휴양림을 거쳐 가지산에 올라 석남사 쪽으로 하산할 계획을 소개했다. 40km 정도 걷는 걸을 생각하고 있는데, 이 코스 자체가 유니힐이 스스로 짠 새로운 길이다. 도전을 두려워하지 않는 UNISTAR다운 선택이었다.
떠나자!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지!
“얼마 전 2박 3일 동안 지리산 종주를 했어요. 친구들과 함께 지리산의 눈부신 풍경을 함께 나누고 싶어요.”(최규섭 학생)
“오대산국립공원에 가보고 싶어요. 야간산행을 하면서 멀리 반짝이는 스키장 풍경을 본 적이 있는데 그게 아직도 잊히질 않아요.”(이근우 학생)
“히말라야 안나푸르나의 베이스캠프를 꿈꾸고 있어요.”(임도연 학생)
저마다 꿈꾸는 백패킹을 내놓은 유니힐. 이 중 안나푸르나라는 말에 귀가 쫑긋했다. 얼핏 듣기에 지나치게 큰 꿈처럼 느껴지지만, 이들은 이번 겨울방학에 안나푸르나로 향할 준비를 하고 있다. 비행기 표나 경비를 알아봤는데 생각만큼 비싸진 않았다고.
몇 개월 후면 눈길을 헤치며 안나푸르나를 걷는 그들의 소식이 들려올지 모른다. 인터뷰에 참여한 학생들은 모두 11, 12학번이었는데, 실제로도 유니힐은 대부분 고학번으로 이뤄져 있다고 했다. 신입생은 단 한 명뿐이지만 유니힐의 문은 누구에게 나 열려 있다.
“대학생활하며 스트레스 때문에 우울증 걸리고 수면 장애 겪는 친구들을 많이 봤어요. 그들에게 다른 세상이 있다는 걸 알려주고 싶어요.”(임도연 학생)
“자신들이 가진 젊음을 누리라고 꼭 말해주고 싶어요. 학년이 높아지고, 졸업을 하고, 그러다 결혼을 해서 애를 낳게 되면 도전하기 더 힘들어질 거예요. 군대에 다녀오니 시간의 중요성이 느껴지더라고요. 핵심은 간단해요. ‘지금 이 순간을 즐기자!’”(이근우 학생)
임도연 학생은 순례자의 길로 알려진 스페인 산티아고에 다녀온 적이 있다. 40일 일정 중 30일을 걸었고, 그만큼 다양한 사람들과 만났다. 하체장애에도 900여 km에 달하는 순례자의 길을 걷는 사람도 있었고, 트렌스젠더도 있었다. 좁은 학교 안에서 공부만 했다면 결코 만날 수 없는 사람들이었다.
“세상의 끝이라 일컬어지는 ‘피니스테레’에 다다랐을 때를 잊을 수 없어요. 다 걷고 나니 내가 그동안 너무 좁게만 살아왔다는 걸 알게 됐죠. 세상이 완전히 다르게 보이더라고요.”
매일 같은 일을 반복하고 같은 곳만 다니고 있는 당신. 이제는 유니힐의 이야기에 귀기울여보자. 여기에 직접 부딪치고, 사서 고생을 하며, 스스로 깨달아가는 학생들이 있다. 그들은 기꺼이 길을 잃을 용기가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을 즐길 수 있다. 그들의 구호처럼, “떠나자! 어디든! 여기보단 낫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