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는 미국의 해양생물학자이자 유명 작가인 레이첼 카슨(Rachel Carson, 1907~1964)이 탄생한 지 110주년이 되는 해이다. 카슨은 1962년 출판한 『침묵의 봄(Silent Spring)』을 통해 살충제의 위험성을 대중적으로 알렸다.
『침묵의 봄』 출판을 계기로 미국은 환경청(EPA)을 만들고, DDT 같은 농약 사용에 대한 규제를 시작했다.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의 환경운동, 생태학, 환경화학 등이 발전하는 데도 이 책과 카슨의 공이 크다. 이처럼 다른 나라에서는 화학물질의 무분별한 사용에 대한 충격적인 고발과 대응을 이미 50여 년 전부터 시작했다. 그런데 우리나라에서는 최근까지도 화학물질 관련 사고가 끊이지 않는다. 우리가 ‘카슨의 경고’를 대수롭지 않게 여기는 게 아닐까라는 의문을 품을 수밖에 없다.
화학물질 공포증
우리나라에서는 최근 들어서야 화학물질에 대한 우려가 커지고 있다. 이에 정부도 관련 정책을 마련했다. 지난 1월 7일, 환경부가 공식적으로 발표한 2017년 업무계획 제목은 ‘화학물질 안전은 높이고, 미세먼지 걱정은 줄인다’이다. 이에 따라 환경부는 1월 17일 기준치 이상의 유해화학물질이 검출된 28개의 생활용품(방향제, 탈취제, 세정제 등)을 시장에서 완전히 퇴출시켰다.
1월 19일에는 이번 겨울 들어 미세먼지 농도가 가장 심각한 수준을 기록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유해화학물질이 포함되어 있는 미세먼지를 1급 발암물질로 지정했다. 미세먼지는 단순한 흙먼지가 아니라 유해화학물질 덩어리인 셈이다.
이외에도 구미 불산 가스누출 사고와 같은 산업공단 화학사고, 가습기 살균제 피해사건, 공기청정기 필터 유해물질 논란, 중금속 함유 우레탄 트랙, 장난감과 생활용품에 함유된 환경호르몬, 농약 사고 등 화학물질과 관련된 환경사고는 끊임없이 발생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일반인들이 화학물질 공포증(chemophobia)을 호소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다.
현재진행형인 ‘침묵의 봄’
화학물질에 의한 환경문제가 갑자기 발생한 것은 아니다. 산업이 발전함에 따라 새로운 물질이 합성되고 다양한 유형의 화학사고가 발생하고 있다. 상업용으로 생산된 화학물질은 전 세계로 공급되기 때문에 화학물질로 인한 문제는 특정 지역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특히 잘 분해되지 않는 화학물질은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되더라도 대기와 물을 통해 이동한다. 그래서 해당 화학물질을 한 번도 사용하지 않은 극지나 고산지대와 같은 청정지역에서도 검출된다. 이런 화학물질들은 먹이사슬을 따라 생물에 축적되고, 많은 경우에 상위 영양단계로 갈수록 체내 농도가 증가해 심각한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그동안 환경규제가 강화됐지만, 카슨이 우려했던 일들은 여전히 진행 중인 것이다.
약 20년 전, 필자는 대학원에 진학을 앞두고 다양한 환경 관련 서적과 자료를 접했다. 당시 일반화되기 시작한 인터넷으로 신문기사들을 검색할 때 가장 눈에 띄는 단어가 ‘환경호르몬’이었다. 마침 테오 콜본의 『도둑맞은 미래』가 1997년 국내에 출간됐고, 같은 해 부천시 중동소각장에서 기준치 20배의 다이옥신이 배출돼 전국적인 파문을 일으켰다. 이듬해인 1998년에는 젖병과 컵라면 용기에서 환경호르몬이 용출되는 사실이 언론에 보도됐다. 일상생활에서 누구라도 환경호르몬에 노출될 수 있다는 게 알려지게 된 것이다.
이를 계기로 필자는 대학원에 진학해 유해화학물질 모니터링・모델링 연구를 시작했다. 이 연구를 본격적으로 시작하면서 읽었던 많은 서적과 논문에서 언급되는 것이 바로 카슨의 『침묵의 봄』이었다. 화학물질을 분석하고 환경거동을 연구하는 학문을 ‘환경화학’이라고 하는데, 이 학문이 발전하는 데 카슨이 상당한 기여를 한 것이다. 필자는 유해화학물질 연구결과를 발표할 때 항상 『침묵의 봄』 표지사진을 먼저 보여준다. 카슨의 이야기가 아직 끝나지 않은 현재진행형임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소통하는 환경과학자
학문적인 관점에서 엄밀하게 보면 카슨이 환경화학 전문가는 아니다. 직접 화학물질을 분석해 학술논문을 작성한 적도 없다. 카슨은 생물학을 전공해 학사 학위를 받고, 해양생물학으로 석사 학위를 받았다. 이후 수산청에서 근무하며 해양과학에 관한 대중적인 글을 써서 유명 작가가 됐다.
이를 통해 습득한 생태학적 전문성을 바탕으로, 카슨은 화학물질이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각종 선행 연구 자료를 통찰력 있게 해석해 DDT와 같은 살충제의 문제점을 고발했다. 이 때문에 카슨은 화학산업계와 일부 전문가, 정치인, 언론인으로부터 ‘박사 학위도 없는 비전문가’, 심지어는 ‘공산주의자’라는 비난을 받기도 했다.
또한 화학산업계와 전국농약협회는 『침묵의 봄』을 반박하기 위해 소책자를 발간하는 등 다양한 경로로 카슨에게 압박을 가했다. 그러나 카슨은 TV 출연, 대통령 선거로 인한 환경정책 관심, 케네디 대통령의 지원, 환경운동가들의 헌신, 미시시피 강에서 발생한 최악의 물고기 떼죽음 등의 당시 상황에 힘입어 여론의 지지를 얻게 되고 마침내 의회를 설득한다.
이 과정에서 환경운동이 활발하게 퍼져나갔다. 결국 미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적으로 환경에 관한 관심이 증가했고, 관련 법률이 제정되는 계기까지 마련됐다. 환경과학자들이 실험실에서만 머물지 말고 세상으로 나와서 소통해야 하는 이유를 카슨이 멋지게 보여 준 것이다.
글 최성득 도시환경공학부 교수
최성득 교수는 환경호르몬을 포함한 유해화학물질의 다매체 환경모니터링・모델링 연구를 수행하고 있다. 특히 유해화학물질이 어디에서 배출되어 어떻게 환경으로 유입되고 인체위해성이 어느 정도인지 통합적으로 평가하는 연구에 관심이 많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