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의 발걸음이 운동장으로 향한다. 운동장 위에 선 ‘그들’은 강의실과 연구실의 ‘그들’과는 다른 사람이 된다. 경기 종료를 알리는 호루라기가 울리기 전까지 땀범벅이 돼 공을 찬다. 축구장에 나와 푸른 잔디 위를 쉴 새 없이 뛰어다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하다는 UNIST 축구 동아리 ‘지구방위대’를 만났다.
‘지구방위대’는 원래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축구팀 ‘레알 마드리드’를 부르는 별명이다. 레알 마드리드가 유명 선수들을 끌어모으며 승승장구하던 시절에 붙은 것인데, 지구 최고의 축구선수들이 모였다는 의미가 담겼다. 2009년 UNIST에서 축구 동아리를 만들고자 모였던 UNISTAR들도 팀 이름을 ‘지구방위대’로 지었다. 레알 마드리드만큼 뛰어난 팀이 되자는 의미였다.
UNIST 지구방위대의 행보를 살짝만 들어봐도 이들이 이름값 한다는 걸 알 수 있다. 학생 개개인의 실력이 교내 최정상급인 데다, 교내 정기 리그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기 때문이다. 지구방위대의 실력은 교내에만 한정된 이야기가 아니다. 전국대회에 나가서도 다른 지역 강팀에게 견제 받을 정도며, 지역 연고의 클럽 팀처럼 ‘울산팀’으로 불린다.
지구방위대의 회원은 200여 명에 이른다. 주전 선수 11명 중 누군가 넘어지더라도 그를 받쳐줄 선수가 탄탄하게 준비돼 있다. 200명이 넘는 지구방위대의 이야기를 듣기 위해 회장 서상진(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14) 학생과 주장 기지원(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12) 학생을 만났다.
‘전국 3위’라는 빛나는 성적!
“일반적으로 대회를 앞두고 따로 훈련을 하진 않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특별하게 시간을 할애해서 전국대회에 출전하는 학생들끼리 연습을 했어요. 지난 4월 거둔 성적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하니까요.” (기지원 주장)
인터뷰를 진행했던 5월 초 지구방위대는 전국대회를 앞두고 실력을 다지고 있었다. 5월 3일에는 ‘백암온천배 전국대학동아리축구대회’가 있고, 7일에는 ‘UNIST・POSTECH・DIGIST 정기 교류전’이 예정된 상황이었기 때문이다.
어떤 대회든 똑같은 각오로 참여해왔지만 이번 두 대회는 남달랐다. 4월 초에 열린 ‘제1회 희망 곡성군수기 전국대학동아리축구대회’에서 3위를 거머쥔 이력이 생겼기 때문이다. 이미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린 터라 회원들도 ‘이번에는 더 잘하자’는 투지로 똘똘 뭉쳐 있었다.
지난 대회의 주역 중 하나인 기지원 주장은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좋은 성적을 거둔 곡성 대회를 생각하면 만감이 교차한다”며 “대학원 선배들과 함께 손발을 맞추면서 팀워크를 다진 부분이 승리의 비결”이라고 밝혔다.
곡성 대회에서는 교체할 수 있는 선수도 적었고, 먹을 것도 부실했다. 하루에 여러 경기를 소화해야 할 때는 선수들이 체력적으로 힘들어했다. 그렇지만 선배들과 함께 마음을 맞추면서 뛴 덕분에 값진 결과를 얻을 수 있었다.
“전국대회에 출전해보면 개인적인 역량이 남다른 선수가 여럿 있어요. 직접 부딪쳐보면 프로와 아마추어의 차이를 절실히 느낄 수 있죠. 지구방위대는 그들처럼 전문적으로 축구를 하는 팀은 아니지만 매 경기마다 최선을 다하려고 해요.”
인터뷰 이후 열린 두 대회에서 지구방위대의 성적은 기대에 못 미쳤다. 백암온천배 대회에서 예선 탈락하고 만 것이다. 하지만 DIGIST, POSTECH과 겨룬 두 경기는 모두 승리를 거뒀다. 경기 성적은 이렇게 좋았다가 나빠졌다가 다시 좋아질 수 있다. 하지만 지구방위대는 이런 실적에 일희일비하지 않는다. 그들에게 중요한 건 ‘함께 뛰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이기 때문이다.
우승 트로피보다 값진 팀워크
지구방위대는 일주일에 두 번씩 정기적으로 훈련한다. 시간이 맞는 회원들은 수시로 모여 훈련하고, 경기를 치르기도 한다. 좋아서 하는 축구를 통해 스트레스도 풀고, 체력도 기르는 것이다. 이런 활동을 통해 얻은 에너지는 공부와 연구에도 큰 도움을 준다.
“감독이나 코치는 없지만 선후배가 모여 실제 축구팀처럼 훈련하고 있어요. 간단한 패스부터 시작해 기본 전술 훈련도 따로 한답니다. 드리블이나 슈팅 외에도 축구에서 일어나는 모든 상황들도 대비해보고요. 그렇게 손발을 맞추다 보니 팀워크가 저절로 생기는 것 같아요.” (기지원 주장)
수업에 과제에 실험까지 병행하다 보면 시간표가 빼곡해진다. 그런 가운데에서도 열정적으로 지구방위대 활동에 나서는 비결이 궁금했다.
“UNIST 학생들은 대부분 기숙사에 모여 살아요. 그러다 보니 쉽게 모일 수 있죠. 또 동아리 인원이 워낙 많아서 만날 때마다 자연스럽게 밥도 먹고 축구도 하게 되죠.”
자주 만나고 함께 뛰면서 다져진 팀워크는 지구방위대의 최고 자랑거리다. 같은 이름 아래 뭉쳐서 희로애락을 함께 한 이들은 더욱 끈끈해진다. 그 덕분에 생긴 서로에 대한 믿음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는 마음까지 심어준다.
FC 가족- 혼자가 아닌 우리
축구의 묘미는 조직적인 경기 운영에 있다. 지구방위대가 매 경기마다 영상을 촬영해 전술 회의를 하는 이유도 튼튼한 조직을 만들기 위해서다. 개인이 가지는 기술적인 역량도 중요하지만, 조직이 받쳐주지 않으면 좋은 결과를 만들어내기 어렵다. 귀가 따가우리만치 단합을 강조하는 이유도 뭉치지 않으면 무너진다는 데 있다. 강인한 몸은 신체훈련을 통해 단련되고, 경기 운영에 관한 건 전술 훈련 받으면 되지만 팀워크는 다르다.
“기숙사에서 같이 생활하면서 보고 싶은 축구 경기도 함께 시청하죠. 시간 날 때마다 틈틈이 ‘몸짱’이 되기 위해서 부원들과 웨이트 트레이닝도 하고요. MT도 자주 가는 편이에요.” (서상진 회장)
일상을 함께 하면서 끈끈해진 팀 분위기는 팀워크로 이어진다. 심지어 군대를 함께 가는 회원도 있다. 휴가 나올 때면 가끔 학교에 들러 축구공을 사다 주는 선배도 있다. 학부 졸업 후 대학원에 들어가면 ‘지구경로당’이라는 이름을 달고 ‘지구방위대 시즌2’로 활동한다. 후배들과 교류하면서 동아리 전통도 꾸준히 이어간다. 서상진 회장은 이런 지구방위대를 ‘가족’에 비유했다.
“축구뿐만 아니라 무엇이든 다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커서 늘 붙어 다니다 보면 가족 같다고 생각할 때가 많아요. 대학교에 입학하고 심적으로 많이 외롭고 힘들었는데, 지구방위대가 있어서 잘 적응한 것 같아요. 저도 후배들이 따뜻함을 느낄 수 있도록 물심양면으로 노력할 거예요.”
지구방위대는 교내 여러 스포츠 동아리가 참여하는 ‘합동 체육대회’와 한 달에 한 번 하는 ‘집짓기 봉사활동’, ‘음악 공연’ 등 다양한 행사도 함께한다. 이런 활동을 통해 축구로 다 채워지지 않는 팀워크와 동료애를 다지는 것이다. 동아리 활동을 통해 ‘함께’의 가치를 깨달은 이들은 공부도, 연구도 더 잘해낼 수 있는 사람으로 거듭난다. 공부도, 연구도 축구처럼 혼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함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지구방위대는 운동장에서 흘리는 굵은 땀방울을 통해 혼자가 아님을 배운다. 공부도, 연구도, 운동도 결국 얽히고설킨 사람 사는 이야기이며, 그를 통해 성장하고 있다는 걸 그들은 알고 있다.
ABOUT 지구방위대
지구방위대는 2009년 결성된 UNIST 축구 동아리다. 2010년부터 간단한 시험을 거쳐 회원을 선발하고 본격적으로 각종 축구대회에 참여하기 시작했다. 누적회원 수는 2011년에 100명을 돌파했고, 2017년에 200명을 넘어서며 UNIST 최대 규모의 축구 동아리로 자리를 잡았다. 2011년 UNIST 리그전 우승을 시작으로 매년 교내 리그전에서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 교외에서도 2012 영월동강기 전국대학동아리축구대회 16강과 2016 울산현대배 전국 비치사커 대회 3위, 2017 희망곡성군수기 전국대학동아리 축구대회 3위 등의 우수한 성적을 거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