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는 것이 믿는 것이다’라는 프란시스 베이컨의 유명한 말이 있다. 어떤 현상을 증명하기 위해서는 눈으로 보는 것이 가장 확실한 방법이라는 뜻이다. 과학자들도 관찰로써 위대한 발견을 증명했다. 갈릴레오는 망원경으로 지구가 태양 주위를 돈다는 것을 확신했고, 세포가 마치 작은 방처럼 생겼다며 셀(Cell)이라는 이름이 붙은 것도 현미경 덕분이다.
2017년 노벨 화학상도 전자현미경으로 생명현상을 관찰한 이들에게 돌아갔다. UNIST에도 세상에서 가장 작은 것을 보기 위해 현미경을 연구하는 사람들이 있다. UNIST의 투과전자현미경(TEM) 연구자들은 현미경으로 무엇을 관찰하고 있을까.
우리가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현미경은 광학현미경이다. 가시광선과 볼록렌즈를 이용해 물체의 상(像)을 확대하는 현미경이다. 고해상도 광학현미경을 처음 개발한 건 17세기 영국의 과학자 로버트 훅이다. 그런데 광학현미경에는 치명적인 한계가 있다. 가시광선 파장의 절반 거리(대략 200nm) 이하의 물체를 관찰할 수 없다는 것이다. 빛의 회절 때문이다.
회절은 빛이 작은 구멍을 통과할 때 물결처럼 사방으로 퍼지는 성질을 말한다. 회절 현상 덕분에 빛은 장애물을 만나도 막히지 않고 파장을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 빛이 통과할 구멍 크기가 빛의 파장 절반보다 작으면 회절이 일어나지 않는다. 그러니까 장애물이 너무 작으면 빛이 장애물에서 맴도느라 파장을 전하지 못해 상을 키우지 못하게 된다. 이런 빛의 회절 한계는 이 현상을 처음 발견한 독일의 과학자 에른스트 아베의 이름을 따 ‘아베 한계’라고 부른다.
과학자들은 광학현미경의 대안으로 전자현미경(EM, electron microscopy)을 개발했다. 전자현미경은 가시광선보다 훨씬 파장이 짧은 전자를 쏜다. 전자현미경에는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올해 노벨 화학상을 수상한 극저온 전자현미경(Cryo-EM)은 생명현상을 관찰하는 특수한 전자현미경이다. UNIST의 연구자들이 주로 연구하는 전자현미경은 TEM이다. TEM은 나노미터보다 더 작은 산소나 탄소 원자 하나하나를 구분할 수 있을 정도로 초고분해능을 자랑한다.
TEM의 어머니
UNIST에는 총 7대의 TEM이 있다. 전자현미경마다 용도가 다르고 그에 따라 시스템도 다르다. 적게는 수억 원에서, 많게는 수십억 원이 넘는 귀한 TEM을 잘 관리하는 게 무엇보다 중요하다. 때문에 UNIST에는 TEM과 같은 고사양 장비를 관리하는 부서가 따로 있다. 연구지원본부(UCRF)다. 정후영 교수는 연구지원본부에서 TEM 관리와 유지를 담당하고 있다.
“TEM 같은 고사양 장비는 대학원생이나 교직원이 관리하기 무척 힘듭니다. 그래서 UNIST는 초창기부터 TEM 전공자들이 공동으로 사용하는 TEM을 직접 관리하고 있습니다. 단순히 고장을 수리하거나 장비를 현상 유지하는 게 아니라, 시료에 맞는 TEM을 골라 데이터를 얻고 이 데이터를 같이 분석하는 작업까지 하고 있죠.”
정 교수는 국내에서 드문 TEM 전문가다. 현미경의 기본인 광학을 전공했고, 설치와 안정화 작업에도 참여했다. UNIST의 TEM 성능을 높은 수준으로 관리하고 유지하는 어머니인 셈이다. UNIST가 자랑하는 장비로는 2011년 들여온 수차보정 TEM, ‘타이탄(TITAN)’이 있다. 이 장비의 분해능은 0.06nm에 이른다. 분해능이란 서로 떨어져 있는 두 물체를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을 말한다.
“2000년대 초반까지는 에너지가 더 세고, 파장이 더 짧은 전자를 방출하는 방식을 주로 연구했는데요. 이 방법으로는 현재 수준의 높은 분해능을 얻을 수가 없었어요. 2000년대 중반에 들어서 전자의 수차를 보정하는 방법이 개발되는데, 이를 계기로 TEM의 분해능이 급속도로 향상됐습니다. UNIST는 개교 초기부터 수차보정 TEM을 도입해 활용하고 있습니다.”
수차는 한 점에서 출발한 빛이 굴절되는 정도가 달라, 다시 한 점에 맺히지 못하고 일그러진 상을 내놓는 현상이다. 전자현미경을 예로 들면 전자빔에서 발사된 전자가 관찰하려는 대상을 통과한 뒤에는 검출 지점에서 다시 한 점으로 모여야 하는데, 현미경 내부에서 전자를 굴절시키는 자기장이 균일하지 못해 원래 출발했던 점보다 더 크게 상이 맺히는 것을 말한다. UNIST는 이런 수차를 보정하는 TEM을 운용 중이다.
TEM으로 개발하는 원자 재료
신소재공학부 이종훈 교수는 TEM을 개발하던 연구자다. 지금도 TEM을 직접 개발하고 성능을 개선하고 있지만, 요즘 그의 관심 분야는 신소재다.
“1990년대부터 지금까지는 나노 재료가 큰 관심을 받았습니다. 나노미터 수준에서 물질의 구조를 조절해서 새로운 소재를 만드는 기술이죠. 그런데 TEM 기술이 발전하면서 이제는 나노미터 이상, 그러니까 탄소 원자 하나까지 직접 관찰하고 조절할 수 있는 원자 수준의 신소재를 개발하는 게 가능해졌습니다. 이 분야에서는 제가 개척자입니다.”
이 교수는 2000년대 중반 미국 로렌스버클리국립연구소에서 차세대 수차보정 전자현미경을 개발하고 활용하는 연구를 했다. 수차보정으로 인해 현미경의 분해능이 비약적으로 증가하면서, 이 교수는 새로운 소재를 개발하는 분야로 연구를 확장했다. 그때 당시에 떠오른 물질이 그래핀으로, 탄소 원자가 육각형 벌집 모양으로 평면을 이루는 2차원 소재다.
“육각형으로 생겼다고 상상하고 예측하는 것과 실제로 육각형으로 생긴 걸 보는 것은 완전히 다른 일입니다. 특히 재료의 특성을 관찰하거나 새로운 재료를 개발할 때 원자 단위로 재료가 변하는 걸 꼼꼼히 관찰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 그래핀의 육각형 탄소의 위치가 조금 바뀌거나 탄소가 다른 원소로 치환될 수도 있습니다.”
최근에는 그래핀을 이용해 세상에서 가장 얇은 산화물 반도체를 개발했다. 그래핀 위에 산화아연을 원자 한 층 수준으로 쌓아 그래핀이 반도체처럼 작동할 수 있게 만든 것이다. 연구팀은 그래핀 위에서 산화아연 원자들이 성장하는 모습을 TEM으로 실시간 관찰하기도 했다. 산화아연 원자는 처음에 그래핀을 이루는 탄소 원자 위에 자리 잡은 뒤, 성장을 할 때는 각도를 조금씩 바꿔 그래핀 위에 나란히 올려졌다.
“새로운 소재를 개발할 때마다 그 소재에 맞춰 사용하는 TEM 시스템을 조금씩 수정합니다. 최적의 상태를 관찰하기 위해 새로운 하드웨어를 개발하기도 합니다. UNIST의 타이탄은 처음 설치된 후에도 계속 진보하고 있습니다. TEM을 이용해서 연구를 할 때 누군가의 하드웨어를 그대로 받아만 쓴다면 그것은 절름발이 연구와 마찬가지입니다.”
배터리 폭발, TEM으로 막는다
TEM이 만능은 아니다. 진공 상태에서 전자를 쏘기 때문에 단백질 같은 생체 물질은 그대로 촬영이 어렵다. 두께도 문제다. TEM은 전자가 물체를 통과해서 지나가야 하는데, 이때 물체가 너무 두꺼우면 전자가 지나가지 못해 제대로 된 이미지를 얻을 수 없다. 0.1㎛ 이하의 아주 얇은 물체만 TEM을 사용할 수 있다.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이현욱 교수는 배터리를 TEM으로 관찰하는 과학자다. 배터리 폭발 같은 문제가 생길 때 어디에 원인이 있는지를 알려면 배터리 속을 실시간으로 관찰해야 한다. 그런데 배터리는 TEM으로 관찰하기에는 너무 두껍다는 문제가 있다.
“만약 보통의 배터리를 TEM에서 관측할 수 있을 정도로 얇게 자르면 배터리 속의 전해질이 흘러나오게 됩니다. 배터리도 정상적으로 작동하지 않아서 어디서 문제가 생기는지 알 수 없죠. 그래서 배터리가 아주 얇은 상태에서도 실제처럼 잘 작동하게 만들어 TEM을 촬영해야 합니다.”
이 교수가 만드는 TEM용 배터리의 두께는 대략 0.1㎛ 수준으로 일반적인 배터리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얇다. 그러면서도 실제 배터리와 유사하게 작동하기 때문에 배터리의 문제점을 눈으로 직접 관찰할 수 있다.
“사람이 아프면 병원에 가서 엑스선 검사를 하잖아요? 배터리도 문제가 생기면 그런 과정이 필요합니다. 배터리 내부의 어느 부분이 특별히 잘 부서진다거나, 어디가 막혀 이온들이 통과하지 못하면 이를 직접 확인해야 하죠. 설계나 이론적인 추론으론 쉽게 확인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이 교수는 원래 배터리 성능 개선을 연구하던 연구자였다. 전자를 저장하고, 주고받는 음극과 양극을 새로 개발했다. 그러던 중에 그의 눈에 들어온 것이 TEM이었다.
“어떻게 남들과 차별화된 연구를 할 수 있을까 고민했어요. 그때 마침 박사과정 지도교수님이 TEM 연구를 해보면 어떻겠냐고 제안했습니다. 당시에는 배터리를 TEM으로 관찰하는 노하우가 없었기 때문에 1~2년간 고생만 하다가 실패했어요. 그러다가 박사 후 연구원 시절에 다시 한 번 TEM 연구를 할 기회가 생겼고, 박사과정 때의 경험을 살려 성공할 수 있었습니다.”
이 교수팀은 요즘 행복한 비명을 지르고 있다. 다른 배터리 개발자들이 연구한 새로운 배터리를 찍어달라고 부탁하기 때문이다. 이차전지 연구가 활발한 UNIST는 물론이고 국내외 다른 대학과 연구기관에서도 함께 연구하자는 제안이 들어오고 있다. 국내에는 아직까지 TEM으로 배터리를 연구할 수 있는 연구자가 매우 드물다.
이 교수가 특히 관심을 가지고 있는 소재는 실리콘이다. 실리콘은 배터리의 차세대 음극물질로, 현재 주로 사용하는 흑연에 비해 용량이 10배 정도 높다. 저장할 수 있는 용량이 큰 만큼 배터리 용량도 커진다. 반대로 실리콘에 한 번에 많은 리튬이 결합해 자칫하면 배터리가 부풀어 오를 수 있다. 이 교수는 TEM으로 실리콘과 리튬이 결합하는 과정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이 문제를 예방할 방법을 찾고 있다.
TEM으로 초고속 동영상 찍어볼까
자연과학부 권오훈 교수는 TEM의 또 다른 한계에 도전하는 연구자다.
권 교수의 연구 분야는 TEM 동영상. 혹자는 TEM으로 동영상을 찍는 일이 그리 대단한 것이냐고 묻기도 한다. TEM으로 여러 장의 사진을 이어붙이면 그게 동영상이 아니냐고 말이다. 실제로 배터리를 연구하는 이현욱 교수는 10분가량 배터리가 작동하는 것을 동영상으로 촬영하기도 한다. 그런데 권오훈 교수의 TEM 동영상에는 특별한 것이 있다. 바로 사진 사이의 간격이다.
우리가 보는 동영상은 보통 1초에 30~60장의 사진을 빠르게 재생시킨 것이다. 대략 0.03초에 한 번씩 사진을 찍으면 동영상을 만들 수 있다. 반면 권 교수는 피코초(1조 분의 1초) 간격으로 TEM을 찍어 동영상을 만든다. 굳이 어렵게 피코초 간격으로 사진을 찍는 이유는 무엇일까.
“물체의 변화 속도는 그 물체의 크기에 맞춰 변합니다. 학교 도서관 같은 큰 빌딩과 나노미터 크기의 구조가 같은 속도로 흔들리지는 않으니까요. 작은 물체일수록 더 빨리 움직이기 때문에 그 물체의 움직임을 정확히 관찰하려면 움직임에 맞는 시간 간격으로 관찰해야 합니다.”
TEM을 빠른 속도로 촬영하기 위해 넘어야 할 난관은 디지털 정보를 처리하는 속도다. 전자는 물체를 통과한 뒤 탐지기로 모인다. 탐지기는 전자가 가지고 온 정보를 저장하고 다른 저장 장치로 보내는 시간은 밀리초(1천 분의 1초) 정도다.
피코초 간격으로 전자를 빠르게 투과시킨다 하더라도 디지털 장치가 정보를 처리하는 시간이 그 속도를 따라가지 못한다. 때문에 현재는 특정한 반응(가역 반응)에 한정해서 시간 간격이 짧은 동영상을 찍거나 비가역 반응의 경우 정보의 시공간 변환을 이용해 나노초(10억 분의 1초) 간격으로 찍을 수 있다.
권 교수는 2017년 여름부터 세계 최고의 공간 분해능 및 감도를 지니는 시간분해 TEM 설치를 마치고 화학 물질이 반응하는 찰나의 순간이나 고체의 상변이 현상 등 형태가 변하는 순간을 TEM으로 관찰하고 있다.
우리는 TEAM이다
국내에서 UNIST처럼 다양한 TEM과 TEM 연구자들이 많이 모인 학교는 드물다. 각자 세세한 연구 방향과 목적은 다르지만, 같은 장비를 이용해 연구하는 연구자들이 함께 있어 도움이 되는 경우가 많다. 이들이 세상에서 가장 작은 세계를 탐닉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권오훈 교수는 “중요한 발견은 대개 자세한 관찰에서 시작된다”며 “연구 대상 물질의 숨겨진 성질을 탐구하기 위해서 우리 ‘눈’의 시공간 분해능을 극한으로 끌어올리는 노력이 새로운 발견에 다가가는 중요한 발걸음이 된다”고 말한다.
이들이 하는 연구는 보는 것이 전부가 아니다. 더 작은 세상을 관찰하는 것만으로는 이제 새로운 결과를 내놓을 수 없다. 이종훈 교수는 “좋은 현미경이 좋은 결과를 보장하지는 않지만 한국에서는 아직까지 좋은 장비를 샀으니 얼른 좋은 결과를 내놓으라는 기대가 크다”며 “현미경으로 남들이 해보지 않은 새로운 연구를 개척하기 위해서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UNIST에 모인 TEM 연구자들은 이제 출발할 준비를 마쳤다. 그들이 어디까지, 얼마나 멀리까지 가게 될지 지켜볼 시간이다. 그들은 최고의 팀이니까 말이다.
글 송준섭 과학칼럼니스트 UNIST 생명과학부를 졸업하고, <과학동아>에서 기자로 일했고, 현재는 EBS PD로 일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