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자동차에서 개발한 수소전기차, ‘넥쏘(NEXO)’가 화제다. 한 번 충전에 609㎞를 달리는 데다 충전시간은 5분 남짓이다. 아무리 달려도 배출하는 건 ‘물’뿐이라 공해 걱정도 없다. 대중들의 인기도 폭발적이라 ‘수소차 시대’는 몇 년 안에 눈앞에 펼쳐질 전망이다. 그 덕분에 ‘수소사회’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우주에서 가장 풍부하고, 오염물은 배출하지 않는 수소를 주요 에너지원으로 쓰는 세상 말이다. 그런 멋진 미래를 준비하는 UNIST의 수소 연구자들을 찾았다.
수소(水素)라는 한자어는 ‘물 수’와 ‘바탕 소’로 이뤄져 있다. 이걸 풀이하면 ‘물의 바탕’ 혹은 ‘물의 근원’이 되는데, 독일어와 영어에서도 비슷한 의미를 갖는다. 수소(H)가 산소(O)와 반응해 연소될 때 물(H₂O)이 만들어지는 현상에서 따온 이름이기 때문이다. 여기에 수소가 궁극의 미래 에너지원으로 꼽히는 이유가 있다. 지구의 풍부한 물을 분해하면 수소를 얼마든지 얻을 수 있어 ‘거의 무한한 자원’이고, 태워서 전기를 생산해도 물만 배출되는 ‘청정한 에너지’라는 점이다.
하지만 현재 수소가 쓰이는 곳은 로켓이나 제트기 연료, 자동차와 발전용 연료전지 일부에 그친다. 수소의 생산과 저장에 필요한 기술이 매우 까다롭고 비싼 데다 수소로 전기를 만들어내는 연료전지용 물질들도 아주 귀하기 때문이다. UNIST에서는 이런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새로운 도전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햇빛으로 푸르게 푸르게… ‘태양광 수소
자연에서 수소는 물뿐 아니라 탄소 등 다른 물질과 결합된 상태로도 존재한다. 질량으로 따지면 우주에서 수소가 차지하는 비율은 75% 정도. 이걸 잘 뽑아내 쓴다면 자원 고갈 걱정은 사라진다. 그렇지만 진짜 깨끗하게 수소를 얻는 건 생각처럼 쉽지 않다. 수소 생산 과정에서 다른 물질도 나오기 때문이다.
“수소는 대부분 천연가스인 메탄(CH₄)을 고온·고압에서 수증기(H₂O)로 분해해 만들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경우 수소(H₂)와 함께 이산화탄소(CO₂)가 발생하죠. 제철공장이나 석유화학공장의 공정에서도 수소를 얻을 수 있지만, 같은 이유로 친환경적이지 못해요.”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이재성 교수는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수소를 생산할 방법으로 ‘태양광 수소’에 집중하고 있다. 무한한 재생에너지인 ‘태양빛’과 수소를 품고 있는 ‘물’을 이용하면 생산 과정까지 깨끗한 수소 생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식물의 광합성 원리를 모사한 ‘인공나뭇잎(Artificial Leaf)’과 태양광 발전으로 생산한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기술을 추진 중입니다. 햇빛을 이용해 깨끗한 수소를 얻는다는 공통점이 있죠.”
식물은 태양빛을 이용해 물을 수소와 산소로 나누고, 수소를 이산화탄소와 합성해 영양분을 만든다. 이런 광합성 과정을 본떠 태양빛을 쪼여 물을 분해하도록 만든 반도체가 인공나뭇잎이다. 이 장치는 2011년 미국 하버드대 대니얼 노세라 교수가 처음 제안했는데, 최근 이재성 교수팀이 태양광 전환효율을 8%대로 끌어올리며 주목받았다. 이 기술의 상용화 기준으로 여겨지는 10% 효율을 턱밑까지 쫓아가는 중요한 이정표를 세운 것이다.
두 번째 태양광 수소 전략은 물의 전기분해다. 사실 물의 전기분해는 누구나 떠올릴 수 있는 이상적인 수소 생산법이다. 그러나 화력이나 원자력으로 생산한 전기를 사용한다면 ‘청정 수소’라 부르긴 어렵다. 그래서 UNIST 연구진은 태양광 발전으로 얻은 전기로 물을 분해하는 시스템을 구상 중이다.
이재성 교수는 “인공나뭇잎뿐 아니라 물의 전기분해를 돕는 촉매, 페로브스카이트 태양전지 등 기초 소재 분야에서 UNIST의 기술력은 세계적인 수준”이라며 “값싸고 안정적으로, 무엇보다 이산화탄소 배출 없이 깨끗하게 수소를 대량생산하는 기술로 인류에 기여하는 기술에 도전하겠다”고 전했다.
‘물’로 달리는 자동차 꿈꾼다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의 백종범 교수는 재료과학자다. 끊임없이 새로운 물질을 만들고, 그 쓸모를 찾아내는 연구가 그의 주특기다. 다양한 재료에 일가견이 있는데, 최근에는 수소를 다루는 물질을 잇따라 개발하며 주목받았다. 물을 전기분해하거나, 수소를 꽉 붙잡거나, 수소로 전기를 만들 때 쓰는 물질 3종이다.
“멀리 보면 ‘물로 달리는 자동차’를 실현시킬 재료가 될지 모릅니다. 물에서 수소를 분리하고, 그걸 저장했다가, 전기를 생산해 모터를 돌리는 거죠. 아직 상업화가 어려울지 모르지만, 원래 불가능에 도전해 가능하게 만드는 게 과학자의 일 아니겠어요?”
작년 2월 <네이처 나노테크놀로지(Nature Nanotechnology)>에 발표된 루테늄 촉매(Ru@C₂N)는 물 분해를 돕는 물질이다. 수소전환효율(TOF)이 높고, 20㎷의 낮은 전압에서도 구동된다. 또 물의 산도(pH)에 영향을 덜 받는 데다 가격도 백금의 4% 수준이라 ‘경제적인 촉매’로 주목받고 있다.
“물을 분해하는 길에는 ‘높은 산’이 있습니다. 이 산은 필요한 전기 에너지를 뜻하는데요. 그 높이를 낮추는 게 촉매입니다. 촉매 성능에 따라 물 분해 속도가 달라지는 거예요. Ru@C₂N은 산 높이를 낮추는 수준이 아니라 터널을 뚫을 정도로 빠르고 효과적입니다.”
물 분해로 만들어진 수소는 연료전지에 쓰여 전기를 생산한다. 이때 백 교수팀의 철 촉매( Fe@Aza-PON)가 활약할 수 있다. 산소가 물로 바뀌는 과정(산소환원반응)을 돕는 값비싼 백금 촉매를 대신하는 것이다. 백 교수팀은 값싼 철을 2차원 유기고분자로 꽁꽁 감싸는 방법으로 고성능 촉매를 만들었다. 원래 철은 산소와 잘 반응해 녹슬기 쉬운데, 유기고분자로 감싸서 이 문제를 해결한 것이다.
“연간 백금 생산량은 200톤 정도로 보고되는데, 수소차가 더 늘면 백금 촉매로는 수요를 감당하기 어려울 겁니다. 더 싸게 안정적으로 공급할 촉매가 필요하죠. 철은 매장량이 풍부하고, 새로운 기술을 이용하면 내구성도 높일 수 있어 잠재력이 많아요.”
백 교수팀은 촉매에 이어 수소 저장에 활용할 수 있는 3차원 유기구조체(3D-CON)도 개발했다. 매우 가볍고 영하 253℃에서 액체가 되는 수소를 효과적으로 잡아두는 물질이다. 일반 기압(1bar), 영하 196℃(77K)에서 이 물질 1g은 수소 0.026g을 저장할 수 있다. 현재 세계 최고 수준의 기록이다.
잡힐 듯 잡히지 않는 수소… 더 비싼 ‘중수소’
“수소는 생산만큼이나 저장하기도 까다롭습니다. 액체로 만들려면 영하 253℃(20K) 이하로 온도를 낮춰야 하고, 어떤 원소보다 가벼워서 일반적인 온도와 기압에서는 밀도가 너무 낮거든요. 지금으로서는 고압탱크 속에 수소를 저장하는 방법이 최선입니다.”
자연과학부의 문회리 교수는 박사학위 기간부터 미국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활동할 때까지 수소 저장 기술을 연구해왔다. 수소를 금속과 반응시켜 화합물로 만드는 ‘금속수소화물’부터 ‘탄소나노튜브(CNT)’나 ‘다공성 금속-유기 골격체(MOF)’에 수소를 잡아두는 기술 등 다양한 방법을 시도해봤다. 하지만 전 세계 연구자들이 집중해도 이렇다 할 돌파구가 나오지 않았다. 수소 고유의 특성 때문이다.
“기체 수소는 영하 196℃(77K) 정도에서 어느 정도 저장 가능했습니다. 최근 10년간 금속과 유기물을 이용해 만든 다공성 물질(MOF)에 수소를 저장하려는 시도가 많았는데요. 온도가 조금만 높아지면 압력을 높여도 수소가 쉽게 빠져나갔습니다. 수소의 끓는점이 너무 낮고 가벼워서 쉽게 잡히지 않았죠.”
그나마 마그네슘 같은 금속에 수소를 묶어두는 금속수소화물이 안정적인 저장 기술로 꼽힌다. 하지만 금속에서 수소를 다시 떼어내는 에너지가 너무 많이 필요하다는 한계가 있다. 이런 이유 때문에 현재까지 수소 저장은 고압탱크 기술의 발전에 더 무게를 두는 형편이다. 대신 문회리 교수는 수소 저장체로 연구하던 MOF를 다른 데 활용했다. 바로 수소의 동위원소인 ‘중수소(D₂)의 분리’다.
“중수소는 핵융합 발전의 핵심 원료이자 산업계에 두루 쓰이는 중요한 자원인데요. 지구 전체 수소 중 0.016%로 극히 미미합니다. 게다가 수소 혼합물에서 분리해내기도 어려워서 매우 비싸요. 그런데 MOF를 설계해 미세하게 조절하면 중수소를 쉽게 분리할 수 있어요.”
문회리 교수팀이 최근 <미국화학회지(JACS)>에 발표한 논문 두 편은 모두 중수소 분리에 쓰이는 MOF 관련 내용이다. ‘극저온 환경의 좁은 기공에서 수소(H₂)보다 중수소(D₂)가 더 빠르게 확산된다’는 이론에 기반해 중수소만 골라내는 MOF를 개발한 게 핵심. 중수소뿐 아니라 다른 동위원소에도 적용할 수 있어 앞으로 활용도가 높아질 전망이다.
문 교수는 “당장 사용처가 애매해 보이는 기술이라도 멀리 내다보고 연구의 명맥을 이어가다 보면 또 다른 길을 만날지 모른다”며 “수소 연구를 꾸준히 진행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주는 일이 수소사회를 앞당기는 데 반드시 필요할 것”이라고 말했다.
집집마다 ‘수소 발전기’… 세계 최고 SOFC!
수소사회가 본격적으로 시작되는 데는 연료전지 기술이 꼭 필요하다. ‘전지’라는 이름이 붙어 간혹 배터리와 혼동하기도 하는데, 연료전지는 전기를 저장하는 장치가 아니라 생산하는 장치다. 수소를 연료로 삼아 공기 중 산소와 반응시키면서 전기를 만들어내는 일종의 ‘발전기’인 셈이다.
김건태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연료전지 중에서도 ‘고체산화물 연료전지(SOFC)’ 분야에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연구자다. 영국 세인트엔드류대의 존 어바인 교수와 미국 조지아텍의 메일린 리우 교수와도 도움을 주고받으며 SOFC 기술을 이끌고 있다.
“SOFC는 800℃ 이상에서 수소를 연료로 사용해 전기를 만들어요. 건물에 설치해 사용하거나 대형 발전소에서 쓰이기 적합하죠. 하지만 고온에서 작동하다 보니 작동 환경을 만드는 비용이 크고, 내구성도 떨어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저는 이런 문제를 하나씩 풀고 있죠.”
김 교수팀이 2015년 <네이처 머티리얼스(Nature Materials)>에 발표한 SOFC 기술은 700℃ 이하의 중·저온에서 좋은 성능을 낸다. 이와 동시에 탄소나 황 불순물에도 연료극이 망가지지 않아 수소와 함께 탄소나 황 등을 포함한 천연가스를 바로 써도 연료전지를 작동시킬 수 있다. 수소를 싼값에 손쉽게 생산하기 어려운 현재 시점에서 연료전지를 보급하기 좋은 기술이라는 점에서 주목받았다.
“집집마다 연결된 도시가스를 이용해 바로 전기를 생산할 수 있어요. 폐열로 온수 공급도 가능해 전기세 절감은 물론 전력대란도 피할 수 있죠. 수소의 대량생산 기술이 성숙할 때까지 메탄이나 LPG 등으로 연료전지를 작동시키면서 수소사회의 기반을 닦을 수 있습니다.”
최근에는 SOFC의 반대 반응으로 작동하는 ‘고체산화물 수전해전지(SOEC)’의 성능을 높이는 기술도 개발했다. SOEC는 전기로 물을 분해해 수소를 생산하는 데, 태양광이나 풍력 등의 신재생에너지와 연결할 수 있다. 이렇게 되면 신재생 에너지로 얻은 전기를 수소로 바꿔서 저장했다가, 전기가 필요할 때 SOFC로 발전할 수 있다. 전기 공급부터 수소 생산까지 전 범위에서 오염물질 없는 시스템
을 구축하는 것이다.
“수소가 폭발적인 반응을 보인다는 건 그만큼 에너지로서 가치가 크다는 뜻입니다. 수소를 어떻게 생산하고 효율적으로 쓸지에 대한 답을 찾는 게 과학자의 일이죠. 두고 보세요. UNIST의 수소 연구가 지구를 구하게 될 겁니다.”
더 저렴한 수소차, 더 빨라질 수소사회
컨설팅회사 KPMG에서 발표한 ‘2018 세계 자동차산업 경영진 조사’에 따르면 2025년까지 자동차산업에서 가장 중요한 화두는 ‘수소차’다. 900명이 넘는 자동차회사 임원들은 순수 전기차나 자율주행차보다 수소차 시대에 더 관심을 두고 있는 것. 하지만 대중에게 수소차 가격은 아직 너무 비싸다.
“수소연료전지의 응용 분야에서 시장이 가장 큰 분야가 자동차입니다. 수소차에는 100℃ 미만의 비교적 저온에서 작동하는 ‘고분자 전해질 연료전지(PEMFC)’가 쓰이는데요. 산소환원반응을 돕는 촉매로 값비싼 백금이 쓰이고 있어요. 현실적으로 수소차 가격을 더 낮추긴 어려운 형편이죠.”
주상훈 에너지 및 화학공학부 교수는 PEMFC 분야에서 주목받는 연구자다. 기업에서 연료전지 시스템을 다뤄본 경력이 있는 데다 백금 촉매를 대체할 ‘철-질소-탄소 촉매(Fe-N/C)’도 개발해냈다.
하지만 이 기술이 실제로 쓰이려면 훨씬 긴 시간이 필요하다. 개발한 촉매의 안정성을 개선해야 하고, 실제 수소차에 장착할 시스템 수준에 적용하기 위해 넘어야 할 장벽이 많기 때문이다. 백금 촉매도 현재 수소차에 쓰이기까지 50년이나 걸렸다.
“실험실에서 고성능 촉매를 개발해도 수소차에 적용하려면 넘어야 할 산이 많습니다. 그렇다고 포기해선 안 되죠. 더 저렴한 수소차가 만들어져야 사람들이 쉽게 타고, 수소사회도 앞당겨질 테니까요. 제 은퇴가 20년 조금 더 남았는데, 그 안에 꼭 이뤄보려고요.”
주 교수는 일본 기타큐슈에 꾸려진 수소도시를 우리의 미래로 꼽았다. 수소충전소가 풍부해 수소차가 자유롭게 다니고, 건물마다 연료전지가 장착돼 필요한 전기 공급과 난방을 담당하는 도시다.
그는 “UNIST는 연료전지 촉매 기술을 비롯해 새롭게 추진 중인 태양광 수소 기술 등 수소사회의 밑거름이 될 기술에 도전하고 있다”며 “청정 수소 에너지로 인류에 기여하는 날을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