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장생활과 직무 적응에 정신이 없을 사회초년생 김명진 씨. 하지만 그의 얼굴에선 여유가 넘친다. UNIST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과정을 거치며 혹독한 훈련을 받았기 때문이다. 과연 그의 대학원 생활은 어땠을까.
올해 2월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 과정을 마친 김명진 씨는 졸업 전 현대위아의 자동차 모터 설계사로 취직, 현대자동차그룹 의왕연구소에서 근무하고 있다. 입사한 지 3개월밖에 되지 않았지만 동기들을 제치고 발군의 실력을 발휘, 선임 연구원들을 깜짝깜짝 놀라게 하고 있는 중이다.
“선배들에게 ‘이런 것도 할 수 있어?’, ‘공부하다 온 게 아니라 회사 다니다 온 거 아냐?’라는 말을 종종 듣습니다. 제작 프로세스에 대한 이해도가 높다 보니 빠르게 업무를 익힐 수 있었거든요. 덕분에 동기들보다 실무에도 빨리 투입됐습니다.”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실무 적응력의 비결은 무엇일까. 그는 단언컨대 프로젝트 중심의 대학원 수업 덕분이라고 답했다. 대학원 과정 동안 총 8편의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아이디어 구상부터 시제품 제작까지 전 공정을 반복하는 사이 실무 경험으로 탄탄히 무장하게 된 것.
게다가 수업시간에 3D 캐드 설계법을 마스터하고, 3D 프린터로 시제품을 출력·조립해보는 등 현장에서 필요로 하는 실무 기술을 두루 섭렵해 선임 연구원들에게 ‘만능 신입’으로 통한다. 특별히 취업 준비를 하지 않았음에도 졸업 전 취업에 성공할 수 있었던 것도 다수의 프로젝트 경험 덕분이었다.
“면접 때 프로젝트를 통해 배웠던 점과 다양한 경험들을 솔직하게 전하는 것만으로도 이야깃거리가 풍부하더라고요. 그래서 다른 응시자들보다 좋은 점수를 받았던 것 같습니다.”
프로젝트로 실무 경험 쌓은 2년
“아마 제가 다닌 창의디자인공학과가 학부 및 대학원을 포함한 전 학과 중에서 가장 잠을 적게 자는 학과일 거예요.”
지금 와서 생각해보면 지난 2년은 그의 경쟁력을 키우는 든든한 밑천이 됐다. 하지만 새벽 3~4시까지 밤을 새우는 날이 부지기수라 고된 나날의 연속이었다.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중도에 학업을 포기하는 동기도 더러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돌이켜보면 프로젝트에 매달려 이루지 못한 잠은 보람이라는 이름으로 모두 보상받았다. 특히 울산상공회의소에서 주관했던 중소기업과의 산학협력 과제는 그에게 큰 성취감을 안겨줬다.
당시 김명진 씨는 태권도 준비운동 동작을 응용해 체형 교정기를 제작하는 ‘애니바로’라는 중소기업과 과제를 진행했다. 당초 목표는 아이디어를 구체화시킨 시제품을 제작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그의 아이디어에서 시장 가능성을 내다본 애니바로의 대표가 ‘이대로 끝내기에는 아깝다’며 양산화를 제안했다.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일이었지만 내친 김에 졸업 작품을 겸해 양산 설계까지 추진, 상용화에 성공했다.
“원래 분야별로 전문가가 참여해야 하는데 전체 과정을 혼자 맡다 보니 처음에는 제가 과연 잘 해낼 수 있을까 걱정이 많았죠. 단계별로 고비를 하나하나 넘기며 ‘산업디자인이 이런 것이구나’라는 감을 잡게 되고, 새로운 영역에 대한 도전 의식과 자신감도 얻었습니다.”
디자인에 대한 인식 대전환의 계기
홍익대학교 기계시스템디자인공학과를 졸업한 김명진 씨에게 UNIST 진학은 일생일대의 도전이었다. 동양화과 교수인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아 그림 그리는 것을 좋아하긴 했지만 고독한 예술가의 길을 걷고 싶진 않았다. 공학에 디자인을 접목한 전공을 선택한 이유다. 하지만 공학에 치우쳤던 학부 수업은 그의 갈증을 끝내 채워주지 못했다. 그렇다고 기계공학 전공자들보다 공학적 지식이 월등한 것도 아니었다. 자신의 경쟁력에 의문을 품게 된 그에게는 UNIST밖에 다른 답이 없었다.
“학부 시절 제가 가장 두각을 나타냈던 과목이 아이디어를 제품으로 구체화시키는 수업이었습니다. 관련 공부를 더 할 수 있는 학교를 찾아보니 UNIST의 디자인-공학융합전문대학원밖에 없더군요.”
입학 전에는 미술을 따로 공부해야 하는 게 아닌지 걱정이 많았다는 김명진 씨. 하지만 이런 우려는 입학 후 얼마 되지 않아 기우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됐다. 미술보다 디자인에 대한 기초 개념부터 바로잡아야 한다는 걸 깨달은 것이다.
“디자인은 비주얼 콘셉트뿐 아니라 무형의 아이디어를 발전시켜 제품으로 실체화시키는 전 과정을 가리킵니다. 드로잉은 개념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일 뿐이에요. 그림 솜씨보다 창의적인 아이디어와 그것을 구체화시키는 능력이 더 중요합니다.”
그러니 미술에 소질이 없다고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말. 넓은 의미에서 디자인은 인간이 이룬 모든 문명의 실체를 가리킨다. 때문에 김명진 씨는 산업디자이너는 디자이너의 감각과 엔지니어의 지식을 두루 갖춘 융합형 인간이어야 한다고 강조한다.
“현대위아는 미래 먹거리 사업으로 전기자동차의 모터 설계에 도전하고 있습니다. 저는 그중 기구 설계를 맡고 있고요. 단순한 기구 설계자가 아니라 전체를 아우를 수 있는 안목을 갖추고 싶습니다. 그러려면 다양한 분야에 대해 계속 공부해야 합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가방에서 <모터 설계>라는 제목의 두꺼운 책을 보여주는 김명진 씨. 단순한 엔지니어를 넘어 디자인이 가능한 엔지니어의 소양. 그가 대학원에서 배운 모든 것이 바로 그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