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자에 레이저(Laser)를 쏘면 회전을 시작한다. 어떤 분자인지에 따라 회전하는 모습도 각기 다른데, 이걸 관측해 분자 구조와 질량을 모두 파악하는 멋진 기술이 있다. 2011년 토마스 슐츠 교수가 개발한 ‘상관 회전 정렬 분광학(Correlated Rotational Alignment SpectroscopY, CRASY)’이다. 독일과 UNIST에서 7년 정도 이 기술을 갈고닦은 슐츠 교수팀은 최근 더 강력한 CRASY를 만드는 데 성공했다. <편집자 주>
Q. 이 연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A. 분광학(Spectroscopy)은 분자 세계를 연구하는 기본 도구입니다. 우리가 아는 분자에 관한 지식들 대부분이 분광학 실험으로 밝혀졌죠.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분자의 새로운 특성을 발견하고 싶었던 저는 자연스레 새로운 분광학 도구 개발에 흥미가 생겼습니다.
다양한 분자의 물성을 파악하려면 별개의 실험을 통해 각 특성에 관한 정보를 얻는 게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저는 각각의 실험을 하는 번거로움을 줄이고 싶었어요. 그래서 레이저 측정 기술을 응용해 측정은 한 번만 하고, 거기서 얻은 자료에서 최대한 정보를 얻는 방법을 찾았습니다. CRASY를 활용하면 한 번의 실험으로 다양한 분광학 정보를 얻을 수 있어요.
Q. CRASY 기술이 어떻게 작동하는지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세요.
A. CRASY는 분자 회전 정렬 분광학(Molecular Rotational Alignment SpectroscopY)의 일종입니다. 이 연구는 핵자기공명(Nuclear Magnetic Resonance, NMR) 분야에서 노벨상을 수상한 측정기술, COSY(COrrelated SpectroscopY)에서 영감을 얻었습니다. NMR은 자기장 속에 놓인 원자핵이 특정 주파수의 전자기파와 공명하는 현상을 이용해 정보를 얻는데요. CRASY는 자기장 대신 레이저를 이용해 분자 속 원자를 회전시키면서 정보를 얻는 겁니다.
CRASY는 다양한 정보를 한꺼번에 얻는 다차원 분광학의 일종입니다. 다차원 분광학은 숨겨진 특성을 찾는 데 도움을 주는데요. 예를 들어, 1차원 정보는 물체의 거리만을 알려줍니다. 반면 2차원 정보는 물체를 향한 방향까지 알 수 있고, 3차원 정보는 물체가 지하에 있는지 지상에 있는지를 알려줍니다. 자연스레, 추가된 정보에서 엄청난 양의 지식을 얻을 수 있습니다. 이건 분광학 분야에도 똑같이 적용됩니다. CRASY는 물질의 구성, 구조, 변화 등에 관한 정보를 한 번에 얻을 수 있는 측정 기술입니다.
Q. 이 기술이 구현되는 원리가 궁금합니다.
A. CRASY 실험을 위해서는 두 개의 초단파 레이저 펄스가 필요합니다. 첫 번째 레이저 펄스는 분자를 차서 ‘코히렌트 회전 동작(Coherent Rotational Motion)’을 만듭니다. 쉽게 말하면 레이즈 펄스를 맞은 모든 분자들이 나란히 정렬된 뒤 같은 방향으로 돌도록 만드는 겁니다. 코히렌트(Coherent)는 파동의 공간적 퍼짐이 균일하고 위상이 규칙성을 가지고 있는 상태를 말하는데요. 그 자체는 추상적인 물리학적 개념이지만, 아주 쉽게 시각화할 수 있습니다.
두 번째 레이저 펄스는 분자를 ‘여기’시키고 ‘이온화’시킵니다. 여기는 분자가 외부 자극에 의해 고에너지 상태가 되는 걸 말하는데요. 분자가 오직 특정 방향을 가리키고 있을 때만 여기시키는 게 가능합니다. 따라서 분자 여기 상태를 보면 분자의 회전 상태를 관측할 수 있습니다. 이온화는 분자에서 전자를 떼어내는 것입니다. 따라서 질량 분석기를 통해 전하를 띤 분자의 질량을 분석할 수 있고, 방출된 전자로부터 전자 구조에 관한 정보를 얻을 수 있습니다.
결국 시간차를 두고 레이저를 두 번 쏘는 단 한 번의 실험으로 회전 구조, 전자 구조, 분자의 구성에 관한 정보들을 얻을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Q. 분자과학에 이 기술이 중요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A. 기존 분광학 기술은 오직 정제된 시료만을 사용했습니다. 일반적으로 정제되지 않은 분자 시료들에는 다양한 물질들이 섞여 있기 때문입니다. 이들은 각기 다른 화학적 구조, 즉 화학식은 같지만 구조는 다른 ‘이성질체’와 원자번호는 같지만 질량수가 다른 ‘동위원소’를 포함한 물질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기존 분광학으로는 이런 물질들을 분석해낼 수 없었죠.
하지만 CRASY는 이러한 시료들의 다양한 분자 신호를 분류해내는 능력이 있고, 이 점은 기존의 분광학 기술로 도달하지 못했던 시료의 분석을 가능케 합니다. 저희는 이 새로운 도구로 과거에는 연구할 수 없었던 시료의 다양한 분자들을 분석해 분자과학 분야에 기여할 것입니다.
Q. 향후 활용 가능성에 대해 말씀해주세요.
A. 미래에 CRASY 기술이 상용화되기를, 또 다양한 분자과학 연구실에서 CRASY가 분석 장비로 활용되기를 바랍니다. 이 기술은 개발된 지 수년 밖에 되지 않았고, 현재 세계에서 유일하게 저희 실험실에서만 이 연구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최근 이 연구로 세계 최고 수준의 분해능과 정확도를 보여줬지만, 여전히 실험하는 데 많은 노력이 필요합니다. 이 연구가 상용화될 수 있도록 더욱 개선하는 한편, 과학계에 그 우수성을 알리려고 합니다.
Q. 앞으로의 연구 계획이 궁금합니다.
A. CRASY를 활용해 오랫동안 해결되지 않았던 분자과학 연구에 도전하려고 합니다. 그중 하나로 성간구름(은하계 안에 존재하는 행성 간 물질의 집합체)에 존재하는 반응성 높은 분자들의 분광학 정보를 얻는 겁니다. 이런 분자들은 지구상에서는 불안정하기 때문에 분리해낼 수 없는데요. 그래서 현재는 몇 가지 분자들의 매우 적은 정보만을 얻을 수 있습니다. CRASY는 천체물리학에서 연구하는 분자들의 복잡하고 많은 양의 분광학 정보를 해석하는 데 도움을 줄 것입니다.
또 다른 주제는 동위원소가 포함된 이성질체들의 분석입니다. 이성질체는 분자 내 동위원소의 구성만 다르기 때문에 분석해내기 어렵습니다. 게다가 특정한 구성을 가진 분자를 합성하는 건 매우 비쌉니다. 하지만 이성질체 자체는 화학 반응 과정을 규명하는 데 아주 중요한 역할을 하므로 연구할 필요가 있습니다. CRASY는 자연에 존재하는 동위원소만으로도 동위원소가 포함된 이성질체들을 각각 규명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CRASY는 이런 분자들을 분석하는 저렴하고 효과적인 분석 방법으로 자리매김할 것입니다.
마지막으로, 생체 분자들의 광화학적 반응 메커니즘을 파악하려고 합니다. 생체분자들은 다양한 이성질체들을 가지고 있어 완벽히 분리해내는 게 불가능에 가깝습니다. CRASY는 분자 구조와 반응성에 관한 상관관계를 규명해 광화학적 반응 메커니즘을 분석하는 데 큰 도움을 줄 것입니다.
글_토마스 슐츠 자연과학부 교수·이종찬 연구원
토마스 슐츠(Thomas Schultz) 교수는 1999년 스위스 취리히 연방공과대(ETH Zurich)에서 박사 학위를 받고, 2013년 UNIST로 부임했다. 상관 회전 정렬 분광학을 주제로 연구하는 그의 실험실(CRASY Lab)의 문은 언제나 열려 있다. 궁금한 것이 있다면, 망설이지 말고 언제든 문을 두드려 보자. (schultz@unist.ac.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