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동아리 NEST(Never Ending STory)가 장애인 인식 개선을 위한 창작극 ‘우리 집은 아들이 둘이에요’를 무대에 올렸다. 자폐를 앓는 아들과 치매를 겪는 남편을 돌보는 ‘민호 엄마’는 작품에서 중심이 되는 인물이다. 희망을 잃지 않고, 역경을 헤쳐 나가는 엄마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낸 김희 학생을 만났다.
‘우리 집은 아들이 둘이에요’는 사회복지법인 어울림복지재단의 제안으로 시작된 연극이다. 지난 5월 16일과 17일 UNIST 캠퍼스에서, 5월 23일에는 울산 북구 호계고등학교에서 공연하며 지적장애인 가족이 마주하게 되는 어려움과 갈등을 중심으로 감동과 공감의 이야기를 선보였다. 이 작품은 특히 NEST가 시나리오 구성, 진행, 연기를 모두 준비한 창작극이라 그 의미가 남다르다. 연극단원들은 다양한 책과 영상을 찾아보며 자폐에 대해 공부하고, 장애인복지시설을 찾아 봉사하며 작품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22세 김희에서 38세 민호 엄마로
남다른 병을 지닌 아들을 둘(민호와 민호 아빠)이나 둔 ‘민호 엄마’는 이 작품에서 가장 힘든 환경에 처해 있고, 관객들에게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배역이다.
“아들 민호가 자폐 진단을 받는 순간에도 민호 엄마는 ‘우리 민호가 아픈 게 아니라서 다행이에요’라고 말해요. 그만큼 민호 엄마, 은진은 희망의 끈을 놓지 않는 자신감 넘치는 여자예요. 대본을 본 후 민호 엄마라는 역할에 매력을 느끼게 됐죠.”
김희 학생에게 대본이 주어졌을 때만 해도, 그녀는 학기 중에는 연극을 하지 않겠다고 마음먹은 터였다. 학업과 연극을 병행하는 게 어려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민호 엄마 역할을 보고 마음을 바꿨다.
“교내뿐 아니라 고등학교에서도 공연한다는 이야기에 고민 끝에 참여하게 됐어요. 이 작품이 장애인에 대한 생각을 바꾸는 한 걸음이 될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민호 엄마가 되기 위해 김희 학생은 사회복지시설을 찾아 지적장애인을 돌보는 봉사부터 시작했다. 단단히 마음먹고 갔는데도, 자폐를 앓는 이들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난감했다.
“처음에는 정형행동(반복되는 행동)을 하는 아이에게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라 가만히 있었어요. 그러다 남동생이라 생각하고 ‘괜찮아, 괜찮아’ 하며 다독여줬더니, 제게 조용히 안기더군요. 자연스럽게 대하니 어울리는 게 한결 편해지더라고요. 봉사활동에서 만난 장애아들은 또래들과 많이 닮아 있었어요. 그들도 그저 한 가족의 소중한 아이라는 걸 알았습니다.”
자폐아 부모를 만나면서 아이를 사랑하는 가족의 모습은 모두 닮을 수밖에 없다는 걸 깨닫기도 했다. 자폐아를 키우는 엄마도 김희 학생의 엄마와 다르지 않았던 것이다.
“복지시설에서의 경험을 통해 ‘내 아들은 더없이 소중하고 특별하다’라고 믿는 은진을 만들었어요. 민호는 은진과 도혁(민호 아빠)에게 소중하고 특별한 아들이었으니까요. 부부의 그런 시선이 관객에게 설득력 있게 다가가길 바라며 연기했습니다.”
그녀는 자신이 만난 자폐아동들이 성인이 됐을 때 나이에 걸맞은 행동을 하고, 사회구성원으로서 역할을 해내려면 사람들의 인식이 변해야 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느꼈다. 이 연극을 잘 해내야겠다는 책임감과 부담감도 크게 다가왔다. 그 덕분인지 무대 위에서의 그녀는 더 반짝일 수 있었고, 관객에게 공감을 끌어낸 배우로 한 뼘 더 성장할 수 있었다.
“이 작품을 통해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다시금 떠올리게 됐어요. 스물두 살의 김희를 더 소중히 여기며 스스로의 선택에 확신을 갖고 살아야겠다는 다짐도 했고요. UNIST에서 학업과 연극을 병행하며 얻은 소중한 자산인 셈이죠.”
연극과 열렬하게 연애 중인 경영학도
김희 학생은 제주도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는데, UNIST에서 꿈을 펼칠 수 있으리란 확신이 들어 울산으로 왔다. 어릴 때부터 고래를 좋아해 울산이라는 도시를 막연히 동경했는데, 결국 고래의 도시, 울산에서 살게 된 것이다.
“고래는 인간과 비슷한 동물이라 매력적이에요. ‘인류학의 발견’을 수강하는데, 기회가 닿는다면 울산의 고래에 대해 다각적으로 연구하시는 브래들리 타타르 교수님의 연구에 참여해보고 싶어요. 동물과 사람이 공존하는 세상에 관심이 많거든요.”
그녀는 동물과 사람의 공존뿐 아니라 사람 사이의 균형에도 관심이 많다. 약자와 강자, 부자와 빈자, 배우와 스태프, 부모와 자식 등 세상 수많은 관계에는 저마다의 균형이 존재한다. 그런 수많은 균형을 경험하는 통로가 그녀에겐 연극이다. 한 작품을 무대 위에 올리면서 스태프와 협업하고, 다양한 배역을 소화하는 과정 모두에 균형이 숨어 있다. 조화로운 균형이 결국 연극을 완성한다는 걸 NEST를 통해 배운다.
“연극은 사회의 대표적인 이미지를 모아 한 작품에 녹여 넣은 것이잖아요. 인물과 맥락을 이해함으로써 세상을 바라보는 시선도 풍부해지고요. 이런 경험을 통해 얻는 게 분명히 있다고 생각합니다.”
올해는 동아리 9기 회장을 맡아서 ‘NEST 노예’라는 별명을 얻을 만큼 일상의 균형이 연극에 기울어져 있다는 김희 학생. ‘가막골 으뜸 극단, NEST’의 수장으로 동분서주하는 덕분에 그녀의 어머니는 “딸을 UNIST에 보냈는데, 요즘에는 연극영화학과에 다니는 학생 같다”고 이야기할 정도다.
다음 공연 준비, NEST 동기와 함께 준비하는 연기 멘토링 프로그램, 인문학 캠프 참여까지 앞으로 NEST 회장으로서 할 일이 줄줄이 이어져 있다. 하지만 그녀는 이러한 경험이 모두 내공이 있는 사회인으로 거듭나는 데 밑거름이 되리라 믿는다. 그래서 그녀의 하루는 오늘도 열렬히 바쁘게 흘러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