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여름 태양은 잔인하다. 아스팔트를 녹아내리게 만들 것만 같고, 이 뙤약볕 아래 조금만 걸었다가는 금세 기절할 것 같다. 원래 여름이 이렇게 더웠던가. 여름 날씨만 유난한 게 아니다. 사시사철 주의보를 날리는 미세먼지부터 지구 곳곳에서 벌어지는 물난리와 지진, 태풍이 심각한 수준이다. 지구가 아프다고 우리에게 시위하는 것이다. 이런 지구의 고통을 조금이나마 덜기 위해 노력하는 UNISTAR가 있다.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환경정화를 즐기는 ‘유니스트 그린그린(UNIST Green Green)’이다.
이제 ‘환경보호’는 환경운동가나 일부 비영리단체(NGO)뿐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던져진 주사위다. 지구촌 곳곳에서 제로 플라스틱, 제로 웨이스트 운동이 이어진다. 텔레비전 예능프로그램에서도 유명 연예인이 공공 전기와 수도, 가스를 사용하지 않는 생활을 방영하며 ‘오프 그리드(Off-Grid)’ 삶을 소개하기도 했다. 이 모든 움직임은 지구에 영향을 주지 않는 ‘노 임팩트 라이프(No Impact Life)’로 귀결된다. 언뜻 도시에선 이런 삶이 불가능한 듯 보이지만, 조금만 돌아보면 환경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활동을 할 수 있다.
쓰레기 줍는 산책으로 ‘소확행’
환경을 생각하는 기특한 동아리, 유니스트 그린그린은 대학원생이 주축을 이뤄 만들었다. 온종일 연구실을 벗어나지 않는 일상 속에서 ‘쉼’이 간절했다는 게 창단 멤버인 서인철 학생(신소재공학과 15)이 밝힌 동아리의 시작인데, 활동의 영향력은 지구 전체를 향하고 있다.
“대학원 생활은 연구실에서 하루의 시작과 끝을 맞이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같은 학과 친구가 다른 대학에서 환경정화 동아리를 해본 경험을 이야기하며 UNIST에서도 시도해보고 싶다고 하더군요. 일주일에 한 번 시간을 정해놓고, 캠퍼스 곳곳을 산책하면서 쓰레기를 줍자고요. 사실 환경보호라고 하면 거창하게 느낄 수 있지만, 쓰레기를 줍는 건 개인이 가벼운 마음으로 시작할 수 있는 캠페인이라고 생각합니다. 혼자 하는 것보단 누군가와 함께하면 시너지도 발휘할 수 있고요.”
유니스트 그린그린은 한 기업이 오랜 기간 펼쳐온 나무 심기 캠페인에서 동아리 이름을 떠올렸다. ‘유니스트 캠퍼스를 푸르게 푸르게 가꾸자’는 의미를 지녀 회원들은 동아리를 ‘유푸푸’라 줄여 부르기도 한다. 2016년부터 소모임으로 운영되다 올해 동아리로 출범, UNIST를 우리 손으로 깨끗하게 만들어보자는 마음을 가진 이들이 함께한다.
5명의 회원이 주축이 되고, 매주 활동할 때마다 UNIST 구성원이라면 누구든, 언제나 참여할 수 있는 개방형으로 운영하고 있다. 원래는 토요일 오전에 모여 한 시간 동안 캠퍼스 곳곳을 누비며 쓰레기를 주웠는데, 여름이 되면서 평일 늦은 오후로 시간을 변경했다.
“대학원생이 많아서 일과에 방해되지 않는 시간에 활동하고 있습니다. 요즘엔 해가 길어져서 늦은 오후에 쓰레기를 줍다 보면 어느새 하늘이 석양으로 물들어요. 그 아름다움을 함께 나누고 싶었어요. 한 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하루를 마무리하는 시간에 자연보호를 실천하며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다는 것! 소소하지만 확실한 행복이 아닐까요?”
기분 좋은 변화를 경험하다
동아리를 이끌고 있는 양혜윤 회장(컴퓨터공학과 17)은 유니스트 그린그린의 가장 큰 매력을 ‘단순함’이라고 소개했다.
“저희 활동은 많은 시간을 할애할 필요가 없어서 좋아요. 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은 단순노동이 필요하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어요. 제 경우 말 한마디하지 않고, 천천히 걸으면서 쓰레기를 찾다 보면 잡념이 사라져서 제대로 휴식한 기분이 든답니다. 적당히 햇볕을 받고 바깥 공기를 마셔서 그런지 피부에 생기도 느껴져 거울 속 제가 더 예뻐진 느낌도 들고요.(웃음)”
이들은 가막못과 캠퍼스에 흐르는 하천 위주로 정화 활동을 펼치는데, 올해부터는 한 달에 한 번 태화강 지류까지 나가 쓰레기를 줍고 있다. 강변으로 떠밀려온 쓰레기의 양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많다. 태화강 초입으로 나가면 50ℓ짜리 쓰레기봉투 몇 개를 채워 돌아올 정도다. 양혜윤 회장은 더 많은 UNISTAR들이 참여해주길 당부했다.
“물가에서 쓰레기를 치울 때는 동아리에서 장화를 준비하니 걱정하지 말고 오기만 하세요. 풀숲을 자유롭게 넘나들 수 있는 긴 바지, 긴 팔 차림이면 언제든 환영입니다!”
최명기 학생(신소재공학과 16)은 “유푸푸 활동 덕분에 쓰레기를 주우려노력하게 됐다”며 “일상에 생긴 기분 좋은 변화를 경험하는 것은 물론 활동할 때는 야외로 소풍 나온 기분까지 만끽할 수 있다”고 전했다. 이날도 제2공학관에서 모여 가막못 주변을 돌고, 학술정보관을 지나 학생회관까지가는 동안 담배꽁초, 빨대 등을 매의 눈으로 발견했다. 건물 계단 아래 구석구석까지 몸을 사리지 않고 쓰레기를 찾아내는 솜씨가 탐정 수준이다.
오늘이 세 번째 참여라는 김윤주 학생(자연과학부 15)은 “유푸푸와 함께 쓰레기를 줍는 일이 중독성 있다”면서 “보람과 봉사 활동 점수가 함께 쌓이는 좋은 기회”라고 전한다. 유니스트 그린그린 활동에 참여하면 리더십 프로그램 사회봉사 시간 적립이 가능하기 때문에 학기 말에는 특히 유푸푸 활동에 참여하는 학생들이 늘어난다. 동아리 회원 간에 ‘유푸푸가 UNIST 학생을 얼마나 많이 졸업시켰는지 모른다’며 농담을 주고받을 정도다.
플로깅, 개인 컵 사용 캠페인까지… “바쁘다 바빠”
쓰레기 줍는 산책에 주력하던 유니스트 그린그린은 최근 활동 범위를 넓혔다. 동아리 회원들 모두 ‘환경에 관심이 많다’는 공통점이 있어 환경 영화나 다큐멘터리를 함께 보고 이야기를 나누는 기회를 갖기로 한 것이다. 동아리 소식을 SNS에 올리고, 활동 모습을 사진으로 남기면서 환경보호 문화를 확산시키는 노력도 하고 있다.
SNS를 담당하는 정우철 동문(생명과학부 10)은 환경보호를 알리는 방식에도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고 제안한다.
“광고나 캠페인에서 쓰레기를 버리는 게 나쁘다고 강조하는데, 버리는 행동을 비난할 게 아니라 쓰레기를 줍는 행동을 권장하는 게 더 효과적이라고 생각합니다. 유니스트 그린그린의 활동은 플로깅(Plogging)과 비슷해요. 플로깅은 북유럽에서 시작된 환경운동인데, ‘줍다(Pick Up)’와 ‘조깅(Jogging)’의 합성어입니다. 야외 운동을 하며 주변의 쓰레기를 줍는 자발성이 강조되는 시민운동이죠. 산책이나 조깅을 할 때 작은 가방을 들고 나가서 페트병이나 쓰레기를 주워 집으로 가져오거나 쓰레기통에 버리면 됩니다. 유푸푸로 인해 UNIST에도 플로깅 문화가 정착되길 바랍니다.”
플로깅은 쓰레기를 잡을 때 앉았다 일어서는 자세가 웨이트 트레이닝의 일종인 ‘스쿼트’와 비슷하기 때문에 ‘1워크 (혹은 런) 1웨이스트(1walk 1waste)’라는 캐치프레이즈로 불리기도 한다. 플로거들은 운동 후 #Plogging #1run1waste 같은 해시태그를 달아 SNS에 기록을 남긴다.
유니스트 그린그린은 얼마 전부터 개인 컵 사용을 독려하는 이벤트도 진행하고 있다. 개인 컵을 사용하는 인증 사진을 유니스트 그린그린 인스타그램 DM이나 페이스북 메시지로 보내면 문화상품권이나 세척 솔을 선물한다. 생활 속에서 할 수 있는 작은 행동이 환경 보호로 이어질 수 있음을 알리고, 기분 좋은 습관을 만들 수 있도록 유도하려는 것이다.
비만 오지 않으면 일주일에 한 번 유니스트 그린그린을 통해 자연과 함께하는 시간을 가질 수 있다. 매주 ‘페이스북 잉력시장’에 공지가 올라오니, 이를 확인하는 수고만 더하면 된다. “함께하는 이들도 최고”라고 칭찬하며 활동에 참여하길 권하는 안재현 학생(기계항공 및 원자력공학부 14)의 말을 믿고, 다음 주에는 유니스트 그린그린과 함께 지구에 긍정적인 영향을 끼치는 산책을 나서보는 건 어떨까.
- 유니스트 그린그린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greengreen.unist.9
- 유니스트 그린그린 인스타그램: https://www.instagram.com/unist.greengree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