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년 10월 2일 새벽, 스웨덴 스톡홀름에서 걸려온 전화를 받은 후부터 도나 스트릭랜드 교수는 전 세계 언론사 헤드라인에 올랐다. 그는 고강도 레이저 펄스 분야에 대한 기여를 인정받아 프랑스 물리학자 게라드 모루, 미국 물리학자 아서 애쉬킨과 노벨 물리학상을 공동 수상했다. 스트릭랜드 교수가 박사과정 동안 고안한 기술은 레이저 제작에 대변혁을 가져왔고, 광학과 물리학의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스트릭랜드 교수는 캐나다 맥마스터대학에서 학사를, 미국 뉴욕 로체스터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이때 지도교수가 게라드 모루 교수였다. 공식 이력 외에 스트릭랜드 교수의 삶에 대해서는 기록이 별로 없다. 노벨 물리학상을 받기 전까지 그를 다룬 위키피디아 문서도 없었다는 점은 그가 얼마나 세간의 주목에서 벗어나 있었는지를 단적으로 보여준다. 스트릭랜드 교수는 올해 60세로 캐나다 워털루대학교에서 조교수로 일하고 있다. 이러한 석학을 정교수로 임용하지 않았다고 많은 사람들이 워털루대학을 비난했지만, 그는 “그럴만한 가치를 못 느껴서 굳이 지원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 도나 스트릭랜드 교수의 노벨상 수락 연설
20년간 멈춰 있던 펄스 레이저 출력 문제 해결
레이저가 각막을 정밀하게 자르고, 두꺼운 금속을 절단하며, 다양한 목표물을 파괴할 수 있는 것은 높은 레이저 강도(Intensity) 때문이다. 폭탄은 기계적 에너지를 아주 짧은 순간에 집중시켜서 강한 폭발을 일으키는데 고강도 레이저도 마찬가지다. 가능한 한 큰 에너지로 극도로 짧은 빛 펄스를 만들어 한 펄스 동안 최대 에너지를 담아내는 게 핵심이다.
그러나 1960년대에 최초로 레이저가 발명된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과학자들이 만들 수 있는 펄스 레이저 출력은 20년 넘게 멈춰 있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강력한 빛 출력을 만들면 레이저 자체가 망가지기 때문이다.
스트릭랜드와 모루 교수는 1985년에 이 문제를 해결했고, 이때부터 레이저 분야에 멈추지 않는 경쟁이 시작됐다. 고강도 펄스 레이저의 최대 출력은 지속적으로 증가하고 있으며, 최근 나온 기록은 실로 놀랍다. 이제 우리는 태양 전체를 1㎥ 안에 압축시킨 것과 같은 강도로 1㎤를 밝힐 수 있다. 빛을 고강도 펄스로 집중시키는 데 쓰이는 기술이 CPA(Chirped Pulsed Amplication)다. 이는 간단히 말해 세 가지 단계로 이뤄진다. 첫 번째는 펄스 시간을 늘리고, 두 번째로 이를 증폭시키고, 세 번째로 다시 압축시켜 레이저 밖으로 내보낸다.
비선형 광학에 날개를 단 CPA 발명
CPA는 현대 초고속 레이저의 시금석이라고 할 수 있다. 넘치는 기술적 혁신을 가져왔고, 물리학에 끝없는 새로운 문제들과 다른 발견들을 불러왔다. CPA 기반 초단파 레이저는 오늘날 최첨단 기술에도 폭넓게 적용된다. 안과 수술, 대기 조성 분석, 번개 조종, 산업 레이저 기계, 천문 응용광학 그리고 의학 이미징이 그 예다. 특히 의학 이미징 분야에서 암 치료에 쓰이는 양성자 빔을 값싼 레이저로 생산하는 방법이 거론되고 있다. 이 역시 더 강력한 펄스 레이저 개발에 달려 있다.
초기 레이저 발명이 비선형 광학을 태동시킨 것과 같은 이유로 CPA 발명은 비선형 광학에 날개를 달았다. 또 이론과 실험 분야 양쪽으로 비속박 전자 물리학이나 상대론적 광학, 뒤이어 초상대론 광학과 같은 여러 새로운 분야를 열었다. 이는 다시 플라즈마물리학과 입자물리학의 범위를 매혹적으로 확장했다. 이 모든 것은 메가 일렉트론볼트 혹은 테라 일렉트로볼트 수준의 에너지를 새로운 레이저가 제공했기에 가능했다. 물리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은 이러한 미지의 영역이 모험가에게 활짝 열려 있음을 기억하자.
55년 만에 탄생한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
여러 개의 노벨상이 광학 관련 분야에 수여됐음에도 불구하고, 이를 받은 여성은 두 명뿐이다. 55년 전 마리아 괴페르트 메이어는 다중광자 유도 전환 개념을 도입함으로써 비선형 광학을 개척했다. 이는 비선형 광학이 현실이 되기 무려 30년 전이다. 수상 업적의 상당 부분을 연구하는 동안 무보수로 일했던 괴페르트 메이어 박사부터 “언제나 동등하게 대우받았다”고 말한 스트릭랜드 교수에 이르기까지 과학계에서 여성이 처한 노동 환경은 급변해왔다. 70년대부터 모든 과학 분야에서 여성의 숫자가 급격히 늘어났지만, 물리학에서의 젠더 불균형은 여전하다. 스트릭랜드 교수는 “이 분야에서 여성의 진전에 만족하려면 아직 멀었다”고 말한다. 여성은 북미 전체 물리학 박사의 18%에 불과하며, 노벨상 수상자는 훨씬 적다. 스트릭랜드 박사는 그가 대학원을 졸업한 1985년 이후 첫 번째 여성 노벨 물리학상 수상자이며, 그동안 84명의 남성이 이 상을 받았다.
스트릭랜드 교수의 노벨상 수상은 젊은 여성 과학자들의 자신감을 북돋우고, 과학계에 그들을 위한 자리가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이 될 수 있을 것이다. 그동안 우리 모두 예컨대 부모, 교수, 동료 그리고 사회 전체는 과학 교육과 연구의 편향된 전통과 부단히 싸워야 할 것이다.
글 프랑수아 암블라흐 생명과학부 특훈교수, 번역 최지원(IBS 첨단연성물질연구단)
프랑수아 암블라흐(François Amblard) 교수는 프랑스 에콜폴리테크닉에서 수학과 물리학으로 석사를 받고, 파리대학교에서 면역학 박사를 받았다. 1998년부터 17년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원 마리퀴리대학연구소에서 일하다 2015년에 UNIST에 부임했다. 기초과학연구원 첨단연성물질연구단에서 연구팀을 이끌며 통계광학, 통계물리학, 세포 생물물리를 연구하고 있다.
* 도나 스트릭랜드 교수의 노벨 강의 영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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